국내여행/임진강일기

전설 속으로 사라진 화이트교

찰라777 2012. 1. 6. 10:16

소요산역을 출발한 나는 전곡 읍내 철물점에 가서 집 수리에 필요한 볼트와 몰딩, 전기코드, 전구와 형광등 필요한 물건을 샀다. 동이리에서 쇼핑을 하려면 전곡까지 나와야만 한다. 그러니 전곡에 나올 때에는 살 물건을 미리 메모를 해 놓았다가 챙겨야 한다. 그래야 잊어버리지 않는다.

 

 

▲꽁꽁 얼어 붙은 임진강(화이트교-구 임진교에서 바라본 임진강)

 

 

군남면 진상리와 왕징면 무등리를 연결해주는 임진교를 지나는데 임진강이 꽁꽁 얼어 있다. 나는 다리 중간에 잠시 멈춰 서서 스마트 폰으로 임진강을 찍었다. 얼어붙은 저 임진강에는 얼마나 많은 애환이 서려 있을까?

 

 

임진교를 건너면 왕징면 삼거리가 나온다. 나는 삼거리에 있는 왕징 슈퍼에 잠깐 들렸다. 어제 영이를 데려다 주고 오다가 주스를 한 병 샀는데 돈이 모자라 500원을 외상을 달아 놓고 왔기 때문이다. 눈도 잘 보이지 할아버지가 알아보고 싱긋 웃었다.

 

 

▲ 500원을 외상으로 주스를 샀던 왕징슈퍼

 

 

"500원 외상값 갚으러 왔어요."

"허허, 그 때문에 일부러 왔어?"

"그건 아니고요.  전곡에 들렀다가 오는 길입니다."

 

 

아직도 시골 인심은 푹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외상을 다 주고. <왕징>이란 의미는 또 무엇일까? 뭔가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이름이다. 왕이 징벌을 했다는 뜻일까? 이 지역에는 지명은 특이한 곳이 많다. 어유지리, 왕징, 배울교, 썩은 소, 무등실, 가마소, 농바위, 황두개 황두께……. 이런 지역을 답사를 하며 지명의 유래도 캐보면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왕징면은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전 지역이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 후인 1954년 행정권이 수복되면서 일부 지역에 민간인 입주가 허용되었다고 한다. 왕징면은 16km의 휴전선과 연접하여 전 지역이 군사 보호구역으로 4개리는 주민이 거주하고 3개리는 민통선 출입영농지역으로 군통제에 의한 영농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이다.

 

 

 

▲한국전쟁당시 화이트교를 건립한 소령의 이름을 딴 화이트 다방

 

 

삼거리에 화이트 다방이라는 간판이 유독 눈에 띤다. 군남면 진상리와 왕징면을 연결해주는 임진교는 원래 화이트교였다. 한국전쟁 당시 개성 방향으로 진격하던 국군과 유엔군이 이곳 임진강에 당도해 보니 인력과 장비가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없어 당시 미군 공병대대에 있던 화이트(White) 소령이 급조한 나무다리를 놓아 '화이트교'라 칭하게 되었다는 것.

 

 

길이 205m, 너비 5.4m 통나무 교각에 나무판자를 깔았던 화이트교는 1970년 잠수교 형태로 개축하였다가, 2003년도 지금의 임진교로 다시 건립되었다. 53년간의 애환을 담은 화이트교는 그렇게 역사속으로 사라져 간 것이다.

 

 

물론 화이트다방도 화이트교의 명칭을 따서 지었으리라. 어떻게 보면 화이트교와 화이트 다방은 전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이트교는 전설 속으로 사라졌지만 화이트 다방은 그 전설을 안고 아직 건재하고  있다. 다음에 저 다방에 들어가 차를 한잔 꼭 마셔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 전설속으로 사라진 화이트교)

 

 

그런데 또 왕징면은 미국에 살고 계시는 오영희 선생님이 젊은 날에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를 했던 곳이라고 했다. 내가 미산면으로 이사를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그 옆 동네인 왕징면에서 교사생활을 했다고 하며 그녀는 반색을 했다.

 

 

오영희 선생님 하고는 전생에 진한 인연이 있어나 보다. 내가 섬진강으로 이사를 갔을 때에는 하동이 고향이라며 뛸 듯이 기뻐했다. 나는 섬진강과 지리산 풍경을 오영희 선생님이 운영하고 있는 '하동송림' 카페에 꼬박꼬박 올려 주었다.

 

 

▲왕징정육점

 

 

미국 메릴랜드 엘리콧시티에 살고 있는 오 선생님은 내가 올려주는 고향 소식만 기다린다고 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니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떻게 만날지 누가 장담을 하겠는가!

 

 

왕징 슈퍼를 떠나 동이리로 오는 길에서 한 떼의 기러기 무리를 만났다. 기러기들이 논에서 이삭을 쪼아 먹고 있었다. 이곳 임진강에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유명하다. 수십 년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고 오염이 되지 않은 DMZ 생태계의 보고다. 녀석들은 정신없이 이삭을 쪼아 먹고 있었다.

 

 

(20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