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으로 리더를 교체하는 기러기들의 지혜
철새들의 천국 연천평야
아침 7시 30분경, 여명이 밝아오는 연천평야에 기러기들의 노래 소리가 끼룩끼룩 들려온다. 내가 살고 있는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연천평야에는 동이 틀 무렵이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기러기들의 "V"자 편대비행이 시작된다.
연천평야는 철새들의 통로이자 새들의 천국이다. 요즈음엔 주로 기러기 떼가 아침이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날아오고, 저녁때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날아간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기러기들이 날아올까? 기러기들은 왜 이곳 DMZ 부근 연천평야 위를 비행할까? 기러기들은 마치 비행기가 항로를 찾아 날아가듯 정확히 임진강과 연천평야 위를 날아간다.
민통선 부근이 철새들의 낙원이 된 가장 큰 사유는 60년 동안 분단된 통제구역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고 개발이 제한되어 그 만큼 자연 훼손이 덜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탓에 생태계가 고스란히 보존 되어 새들의 천국이 된 것이다.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DMZ(비무장지대)는 천혜의 자원이다. 155마일 휴전선에는 2700여종의 동식물과 멸종위기 희귀 동식물들이 번식을 하고 있어 세계적인 생태계의 보고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다. 우리는 이 자연의 보고를 고이 보존하여 세계적인 생태평화공원으로 조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폭 4km의 비무장지대에는 말 그대로 비무장을 한 동식물들의 천국이다. 인간은 군사분계선에서 남과 북이 첨단무기를 소지하고 첨예하고 대립을 하고 있지만 새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않고 자유롭게 평화적인 비행을 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겨울철새는 두루미를 비롯하여 큰기러기, 쇠기러기, 넓적부리오리, 노랑부리저어새, 독수리, 청둥오리 등 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요즈음 가장 많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철새는 단연 기러기 떼들이다.
기러기들의 "평화비행"이 시작되는 DMZ
영하 15도를 믿도는 날씨는 매우 춥고 청명하다. 동이 터 오자 기러기들의 울음소리가 끼룩끼룩 들려온다. 바야흐로 기러기들이 DMZ를 넘나들며 평화비행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연천군 동이리로 이사를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아직 새들을 제대로 찍지 못하고 있다. 오늘처럼 청명한 날씨에는 하늘을 나는 새들을 찍기에 안성맞춤이다.
철새들을 조망하기에는 우리 집보다는 윗집의 정자가 안성맞춤이다. 나는 아무도 없는 무인도 같은 동이리 임진강변을 거슬러 올라 윗집 정자로 갔다. 그러나 너무 춥다! 카메라를 잡은 손가락이 얼어붙어버릴 것만 같다. 그래도 끼룩끼룩, 기러기들의 울음소리가 추위를 녹여주고 있다. 기러기들은 어스름한 서쪽에서 아침노을이 환하게 터 오르는 동쪽으로 비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기러기들은 왜 "V"자 편대를 유지할까?
기러기들은 맨 앞 자리 중심에 지리를 잡은 리더를 중심으로 'V'자를 그리며 마치 제트기 편대처럼 비행을 한다. 아침노을을 받으며 유유히 비행을 하는 새들의 군무는 과히 장관이다.
질서정연하게 V자 편대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들은 어떻게 보면 평화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수많은 제트기가 무력시위를 하는 것처럼 보여 섬뜩하기조차 한다. 기러기들이 바로 머리 위로 날아갈 대는 쉬익 쉬익 날개 짓을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러기 떼는 왜 "V"자를 유지하며 날아갈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는 따로 떨어져 나는 경우보다 V자 편대를 지어 70%나 멀리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러기들은 서로 날개를 퍼덕이며 공기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공기저항을 감소시키며 뒤따르는 기러기가 손쉽게 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만약 한 마리라도 기러기가 대열에서 이탈을 하면 그만큼 틈이 생겨 대기의 저항력을 느끼게 된다. 때문에 앞서가는 기러기들의 추진력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기러기들은 재빨리 대열에 합류하여 다시 편대를 유지한다.
기러기들의 평화적인 리더교체와 강력한 팀워크
기러기 떼는 앞장을 선 기러기가 지치면 뒤로 물러나고 뒤에 있던 기러기가 차례로 앞으로 나서서 리더가 되어 편대를 유지 한다. 평화적으로 차례로 리더를 교체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러기들은 리더를 헐뜯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관계에서 리더를 교체를 한다. 상대방의 리더나 심지어 자기편의 리더까지 헐뜯기를 일삼는 우리 인간세계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기러기 편대의 팀워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대열 중의 기러기가 아프거나 상처를 입으면 두세 마리의 기러기들이 떨어져 나와 함께 땅으로 내려와 체력을 회복하여 다시 비행에 합류를 한다. 이처럼 기러기들은 서로 아픔 공유하고 보호하며 조직체를 유지하고 있다.
또 기러기들은 울음소리를 통해 서로를 격려한다. 이 격려의 소리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러기들에게 함께 멀리 날아 갈 수 있는 신념과 믿음을 주는 신호이다. 힘든 여정을 서로 공유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나는 새를 고물 카메라 수동카메라로 찍기는 역부족
언젠가는 성능좋은 카메라로 찍고 싶어
기러기편대는 약 1시간정도 끊임없이 비행이 지속되었다. 해가 산위에서 솟아오르자 기러기들의 군무는 점점 사라져 갔다. 망원렌즈도 없이 수동식 렌즈와 고물 카메라로 멀리 떨어져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잘 찍기에는 역부족이다.
사진기술을 배운 적도 없는 나는 그저 감성대로 기러기들을 찍어댈 뿐이다. 형편이 된다면 자동초점식 렌즈와 성능이 좋은 카메라를 장만하여 기러기들이 리더를 교체하는 장면도 찍어보고 싶다.
서로 돕고 격려하는 기러기들의 지혜를 배워야...
이렇게 추운 날 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느끼는 점이 많다. 기러기들은 더불어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준다. 기러기 리더는 가장 많이 에너지를 소모하며 악전고투를 한다. 맨 앞에서 맞바람을 가르면서 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두에 선 기러기는 쉬이 피로해져 병이 들거나 천적에 노출될 확률이 크다. 그만큼 리더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기러기들은 구성원 전체가 공동으로 번갈아가며 리더 자리를 분담하고, 선두의 뒤를 따라가는 기러기들은 끼룩끼룩 소리를 질러 구령을 붙여주고 있다.
우리인간도 기러기들처럼 리더를 서로 격려하며 평화적으로 리더를 교체하면 얼마나 좋을까? 기러기들의 지혜를 공유한다면 우리 인간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오더라도 서로 뭉쳐 해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그대여, 삶이 지칠 때는 기러기들을 바라보라!
그리고 서로 협력하며 고통을 공유하는 기러기들의 팀워크와 지혜를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