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은 임진강을 걷다
임진강을 따라 북한까지 걸어 갈 수 있다면....
임진강 주상절리에 폭설이 내렸다. 1월을 보내는 마지막 날 수운주가 영하 15도로 떨어졌다. 2월 1일 영하 17도, 내일은 영하 20도로 수은주가 떨어진다고 한다. 지속적인 한파가 임진강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있어 눈은 그대로 임진강 얼음 위에 쌓이고 또 쌓였다.
오전에는 광주에서 올라온 처제를 소요산역에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정 선생이 소요산역으로 와서 정 선생을 태우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전곡의 철물점에 들려 변기 고무 바킹과 벽걸이 못을 샀다. 2층 화장실 변기에 물이 새어 변기를 분해 해보니 고무바킹이 달아서 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변기까지 수리를 하다니 어지간한 수리는 내 손으로 다 하게 되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왕징면 귀빈각에 들려 아내와 정 선생과 함께 홍합짬뽕을 먹었다. 전선생과 아내는 홍합짬뽕을 시키고, 나는 자장면이 먹고 싶어 자장면을 시켰다. 이제 귀빈각은 우리 집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어김없이 들려가는 코스가 되었다. 사람은 홀로 살면서도 외부와 소통을 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DMZ 인근 오지에 있는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고맙기만 하다.
집에 돌아와 변기 바킹을 끼우려고 하니 사이즈가 맞지를 않는다. 저런, 헛고생을 했네. 변기 제조회사인 로얄토토에 전화를 해보니 그 부속품은 인터넷으로 판매를 하지 않고 대리점에서만 판다고 한다. 이런 오지에서는 인터넷으로 통신판매를 하면 좋을 텐데… 대리점에 전화를 해서 바킹 주문을 했다.
눈은 오후부터 2시경부터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내렸다.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는 눈이 곧 온 천지를 하얗게 덮어버렸다. 이런 날 춥다고 움츠리고 있으면 더 춥다. 나는 옷을 두껍게 몇 겹으로 끼어 입고 임진강변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실내에서도 내의를 입고 두꺼운 아웃도어를 걸치고 지낸다. 그래야 추위를 이겨낼 수가 있다.
아내는 컨디션이 좋이 않다고 집에 있겠다고 했다. 나는 정 선생과 함께 눈을 맞으며 임진강으로 내려갔다. 눈이 펑펑 내리는 임진강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주상절리 적벽에 빗금으로 그어져 내리는 눈방울은 멋진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아마 겨울에 보는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수채화일 것이다.
"와아, 여긴 마치 시베리아 벌판 같아요!"
"정 선생 저기 강위를 한 번 걸어보겠소?"
"싫어요. 얼음 속에 빠져 죽으라고요?"
"이 강물이 얼마나 두텁게 얼었는데. 자, 내가 먼저 건너 갈 테니. 언제 강물 위를 걸어 보겠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건너오세요."
임진강은 연일 계속되는 강 추이로 꽁꽁 얼어붙어 있어 절대로 깨질 염려는 없었다. 내가 눈 덮인 강물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자 겁이 많은 정 선생도 조심스럽게 강물 위로 건너왔다.
"와아, 신기해요! 강물 위를 걷다니!"
사실 나도 강물 위를 걷는 것은 이곳 임진강에 와서 처음이다. 언제 강물 위를 걸어 보겠는가. 우리는 동심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며 눈 내리는 임진강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아무리 보아도 신기한 장면이다. 조개처럼 엎어진 자갈과 눈이 하얗게 덮인 임진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눈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쏟아져 내렸다. 눈 내린 강물 위를 걷는 정 선생이 갑자기 압록강을 지나 탈출을 하는 북한 주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에 백두산에 갔을 때에 중국 단둥에서 바라본 압록강은 마치 임진강처럼 강폭이 좁았다. 겨울이면 얼어붙은 압록강 위를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려 밤에 도강을 한다고 한다.
임진강은 북한 땅 함경남도 덕원군 두류산에서 발원하여 멀고먼 길을 휘돌아 이곳 연천까지 흘러 한탄강과 한강으로 합류를 하여 서해로 흘러 내려간다. 254km의 강에는 북한 동포의 애환과 사연이 서려 있는 강이다.
꽁꽁 언 임진강이 <평화누리길>이라면...
인간은 철책으로 경계선을 치고 있지만 물은 경계를 허물고 한반도를 관통하여 흘러내리고 있다. 철판처럼 단단하게 얼어 있는 강물 속에는 전쟁의 아픈 역사와 굶주린 북한 동포의 피와 땀이 섞여있다. 군사분계선만 없다면 이 강물을 따라 북한 땅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정 선생, 이 강물위로 계속 걸어가면 북녘 땅에 닿을 수 있어요. 기분이 어떤가요?"
"정말 그렇겠네요! 기분이 묘해요. 꼭 별천지에 온 것만 같아요."
겨울이 오면 임진강은 자연이 만든 <평화누리길>로 변하지 않겠는가? 사실 경기도에서 만들어 놓은 강화에서 신탄리까지의 <평화누리길>은 너무나 인위적인 곳이 많다. 이곳 주상절리만 보더라도 평화누리길을 만든답시고 자연을 상당히 훼손시켜놓고 있다. 자연은 한번 훼손되면 두고두고 복구를 하기가 어렵다.
둘레길 개발은 신중을 기해야...
길을 내거나 개발을 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엉뚱한 발상일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자연그대로 두고 요즈음처럼 강물이 꽁꽁 얼 때에 일정기간 동안 임진강을 <평화누리길>로 공포하여 강물 위를 걷는 것이 어떨까?
요즈음 올레길, 둘레길, 누리길…… 등등으로 국토의 곳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당국에서는 길을 내느라 자연이 훼손되고, 또 길을 걷는 사람들이 쓰레기와 고성방가로 자연과 주민들을 괴롭게 만들고 있다.
하여간… 지금 자연이 만들어준 눈 내리는 임진강 평화누리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한다. 더구나 주상절리 적벽에 쏟아져 내리는 눈발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강물 속에서는 쩡쩡~ 하고 여울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 동이리 임진강은 강폭이 좁다. 그래서 꽁꽁 얼어붙은 강물 속에서 여울이 흘러가는 소리가 가끔 쩡쩡 하고 울려온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다.
정 선생이 여울 소리를 듣더니 무서워서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고 하며 나가자고 했다. 우리는 강물에서 나와 임진강변 평화누리길을 걸었다. 이곳 동이리 평화누리길은 주상절리를 바라보며 걷게 되어있다. 아마 평화누리길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이 길을 내느라 강변의 자연이 여기저기 훼손되어 있다. 적벽을 허물고 언덕에 자란 뽕나무를 비롯해서 참나무 등 나무들이 무참히 베어져 나가 있다. 어떤 곳은 다소 위험하게 보일정도이다. 자연은 훼손을 하면 한 만큼 인간에게 해를 입히게 되어 있다. 우리는 지난해 우면산 산사태에서 이를 톡톡히 보아왔지 않은가.
동이리 평화누리길을 걷다보면 도중에 지하수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 있다. 적벽에서 솟아나오는 지하수가 그대로 사계절 흘러내리고 있다. 동네사름들 말이 의하면 이 물은 매우 깨끗하고 약수처럼 물맛이 좋다고 한다.
약수를 한바가지 퍼서 마셔보니 차갑지 않고 미지근하다. 물맛이 미지근한 것은 지하수라는 증거이다. 약수를 마시고 우리는 다시 길을 되돌아 왔다. 눈은 발목이 빠질 정도로 계속 내리고 있다. 이렇게 추운 날도 눈 속을 걷다보니 온몸에 땀이 베인다.
춥다고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
춥다고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 추울수록 운동을 하여야 한다. 러시아를 여행 할 때에 러시아 사람들은 영하 40도의 날씨에도 주기적으로 밖에 나가 운동을 한다고 했다. 어린이들도 두꺼운 털옷을 입혀 밖을 걷게 한다. 겨울철 실내공기는 너무나 밀폐되어 그만큼 탁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눈이 계속 내리면 꽤나 쌓일 것 같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정 선생이 오늘 꼭 서울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서울에 가서 할 일이 있다는 것. 아무리 만류를 했지만 소용없다. 10cm 가량 내린 눈 속을 차를 몰고 가기에는 무리다.
더구나 우리 집 대문 밖은 언덕이 져서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엔 차가 오르내리기가 어렵다. 체인을 미쳐 서울에서 가져오지 못해 더욱 난감하다. 그러나 차가 못가면 걸어서라도 가겠다는 정 선생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
할 수없이 빗자루와 눈삽으로 대문 밖의 눈을 쓸고 밀어냈다. 겨울에는 눈을 밀어내는 제설도구가 꼭 필요할 것 같다. 다음에 읍내에 나가면 제설도구를 사와야겠다. 정 선생을 버스가 다니는 큰 길까지 바래다주기로 했다.
차를 조심스럽게 몰고 나갔다. 눈이 쌓인 좁은 길을 운전하기란 쉽지가 않다. 기어를 1단에 넣고 가는데 눈발이 어찌나 심하게 내리는지 앞이 보이질 않는다. 이장님 집을 지나 어가정 앞을 지나는데 누군가가 제설차로 눈을 제거하고 있었다.
"어, 누구지? 이런 오지에도 제설작을 하다니...."
가까이 가보니 눈이 내려 잘 보이지가 않는다. 하여간 고맙다. 마을 입구 큰 길로 나가나 그곳에도 제설차가 한 대 눈을 밀어 내고 있었다. 한국은 참으로 좋은 나라이다. 이런 오지에도 제설차를 작동하여 눈을 제거해 주니 말이다.
이 폭설에 서울로 가겠다니...
우리는 슬슬 기어가다시피 하여 마전리 삼거리에 겨우 도착을 했다. 마침 안흥찐빵 아주머니가 나와 있어 물어보니 7시경에 버스가 있다고 한다.
"아니, 그런데 체인도 없이 이런 길을 운전하다니 조금 있으면 땅이 얼 텐데. 조심하셔야 해요."
안흥찐빵 아주머니는 얼기 전에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그리고 전방에서는 체인이 필수이므로 다음에는 꼭 체인을 감고 차를 운전하라고 충고를 해주었다. 체인 없이는 큰 차들이 다니며 바퀴에 눌린 눈이 녹아 언 큰 길은 더 위험하다고 한다.
"정 선생, 그냥 다시 집으로 가면 안 될까?"
"버스를 기다려 보고요. 버스가 안 오면 다시 전화 드릴게요."
7시까지는 1시간정도나 남았다. 정 선생을 안흥찐빵 집에 내려주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홀로 안흥찐집에 정 선생을 두고 오자니 영 마음이 걸린다. 눈은 그치지를 않고 계속 내렸다. 집에까지는 잘 도착했는데 대문 밖 10m의 언덕길이 그동안 내린 눈으로 금세 덮여있다.
1단으로 슬슬 올라갔지만 바퀴가 옆으로 삐지며 차가 제자리걸음을 한다. 수차례 뒷걸음질과 전진을 반복하며 겨우 그 짧은 언덕을 올라왔다.
"휴~ 이거야 절말... 마지막 10m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모래를 뿌리든지 체인을 감던지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겠어."
마당에 차를 거우 주차 시키고 나는 다시 언덕의 눈을 쓸었다. 눈이 내려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오지에서의 삶이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지냈을까?
눈이 내리면 오고 감을 정지시키고 칩거했으리라. 차라리 그럴 때가 사고도 없고 더 평온 했지 않았을까?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는 편리함도 있지만 그만큼 대형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는가?
눈은 펑펑 내리고 점점 어둠이 내리는 적막강산!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더 이상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갈 일이 없는 우리는 칩거생활에 에 들어갔다.
(2012.1.31 폭설 내리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