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연주대는 서울의 근교산에서 가장 풍경이 빼어난 절경이다. 기암괴석 위에 묘하게 세워져 있는 연주대는 사람의 넋을 뺄만한 비경이다. 서울에 너무 가가이 있어서 사람들은 연주대를 그렇게 아름답게 생각하지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산하 어디를 가도 이만큼 빼어난 기암괴석위에 세워진 절경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관악산의 정상인 연주봉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연주대(戀主臺)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수행을 하기 위해 의상대를 세웠다가 후에 이성계가 무악대사의 권유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다 암자를 지어 이름을 바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주대는 관악산정 연주봉의 죽순처럼 솟아있는 바위틈에 30m의 축대를 쌓고 나한전(응진전:應眞殿)을 지어 놓았다. 관악산연주암지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17년(677) 의상조사가 한강남쪽에 유화(遊化)하다가 관악산의 명미수려함을 수하여 산정에 의상대를 창건하는 동시에 관악사(冠岳寺)를 개산하다 고 기록되어 있다.
의상대(義湘臺)가 연주대로 바뀐데 대하여 고려가 멸망하자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오빠 강득용(康得龍:묘가 과천시청 뒤에 있음)이 서견,남을진 등과 같이 두문동72인의 행 적을 본따 불사이조(不思二朝)의 뜻을 품고, 관악산 의상대에 올라 송경(개성)을 향해 통곡을 하며 전조(고려)를 연모한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16나한에게 기도하고 효험을 얻는 다고 하여 기도사찰이라고 하는 응진전에는 철종때 김완송스님이 16나한을 봉안하여 나한전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나폴레옹 모자처럼 생겼네`
약사여래보살
기도하는 마음
나한상
법당내에는 근세작으로 보이는 석가 3존상이 모셔져 있고 2폭의 나한탱화에 각각 여덟분의 나한을 그렸는데 색감이 화사하고 사실적이다. 응진전입구에는 우진각지붕형식의 마애감실에 중생의 질병을 구제하고 법약을 준다는 약사여래가 입상으로 봉안되어 있는데 왼손에 약병을 들고, 오른손에 시무외(施無畏)의 인(印)을 들고 있다. 제작연대는 고려시대(나한전법당중수기에 의하면 효령대군이 조성)로 추정하고 감실의 조각수법 등으로 가치가 높은 문화재로 평가되고 있다.
철조망을 걷우어내면 안될까?
기상대에서 바라본 연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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