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멋진 포즈를 취해주는 귀여운 새끼고라니야!
18일 아침, 안개 낀 임진강변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고라니 새끼 한 마리와 마주쳤다. 보통 고라니는 매우 예민하여 사람을 만나거나 인기척을 느끼면 부리나케 튀어나가는데 이 녀석은 뒤돌아서서 순진한 눈동자를 말똥말똥 굴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고라니는 감각이 매우 예민하여 주변의 환경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데, 녀석은 너무 순진하여 아직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뜨거운 맛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녀석은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촬영을 해도 그대로 있다.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보인다. 검은 눈동자에 작은 검은 입, 융단처럼 부드러운 갈색 털이 토실토실하게 나있다. 녀석과 나는 전생에 이렇게 만날 운명을 가졌을까?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순진하게 보이던지 그저 한 번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야생고라니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동이리 주상절리 앞을 산책을 하다보면 고라니를 자주 만난다. 요즈음 강변 밭에는 고구마순, 콩, 땅콩 등 고라니 먹거리가 풍부하다. 녀석들은 금굴산에서 출정을 하여 식사를 하러 임진강변으로 내려오곤 한다. 고라니는 연한 잎을 좋아하여 콩, 야채, 나뭇잎의 연한 끝부분만 귀신같이 뜯어 먹는다. 들깨와 참깨 등 향기가 있는 식물은 먹지않는다.
철책선과 펜스를 넘어가는 고라니야! 제발...
▲철망을 뚫고 고라니가 고구마순과 열무를 다 뜯어먹어버린 윗집 장씨네 텃밭
윗집 장 씨네 텃밭에도 요즈음 고라니가 출몰하여 고구마 순과 열무를 모두 뜯어먹어버렸다고 울상이다. 고라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이중으로 철망을 해 놓았는데도 그 방어철책을 뚫고 들어온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철망을 워낙 튼튼하게 쳐 놓아 도저히 들어오지 못할 것 같은데 녀석들은 잘도 뚫고 들어오는 모양이다.
▲펜스를 넘어가 고구마순을 뜯어 먹어치운 아랫집 김씨네 텃밭
뿐만 아니라 아랫집 김 씨네 텃밭은 망사로 펜스를 촘촘히 쳐 놓았는데도 고라니가 들어와 고구마 순을 다 뜯어 먹어치웠다고 울상이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들어 갈 수 없는 상태인데도 녀석들은 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몰래 야채를 뜯어 먹는다. 하기야 녀석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어떻게 보면 나무랄 수도 없는 자연 현상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에 아직 고라니가 손을 타지 않는 것은 기적이다. 물론 우리 집에도 펜스를 처 놓았다. 그러나 펜스가 없는 곳도 있다. 오른 쪽 이장님 콩밭과 금굴산으로 통하는 일부 통로는 펜스가 없다. 그런데도 아직 녀석들이 우리 집 텃밭을 손대지 않는 것은 하나의 작은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집 텃밭에 자라고 있는 고구마, 땅콩 등 야채는 아직 온전하다. 그러나 절대로 안전지대는 아니다. 언제 녀석들이 쳐들어올지 모를 일이다.
지구상에서 멸종위기의 고라니야!
고라니는 사슴과 고라니속에 속하는 동물로 구릉, 초지, 습지 등 저지대에 서식한다. 암수 모두 뿔이 없어 사슴과 구별된다. 고라니는 보통 겨울 12~1월에 교미하여 160~180일간의 임신기간을 거쳐 6~7월경에 평균 서너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이곳 연천 동이리 임진강변은 습지가 발달하여 고라니가 서식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때문에 강변을 산책 할 때마다 한두 마리의 고라니를 만나곤 한다.
고라니는 전 세계에서 중국 일부지역과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종으로 생물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야생동물이다. 중국에서는 고라니의 개체수가 급감하여 멸종위기동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나라에선 고라니를 수렵 동물로 지정하여 사냥이 허용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고라니가 멸종될 확률이 높은 종으로 간주하여 취약 종으로 고시하고 있다고 한다.
고라니가 서식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연천 임진강변
고라니는 개들과 잘 어울리기도 하고, 자신을 돌보아 주는 사람들과 매우 친숙하게 지내기도 한다는 뉴스를 가끔 접하게 된다. 고라니는 농작물을 뜯어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다. 특히 물을 좋아하는 고라니는 저지대 습지에 서식을 하고 있어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그러나 최근 멧돼지와 함께 고라니는 밀렵꾼들의 사냥 대상으로 천대를 받고 있다. 멧돼지는 포악하여 인간을 해치기도 하지만 고라니는 너무나 선하여 사람을 보면 도망을 치기 바쁘다. 사슴처럼 선한 자생동물인 고라니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예를 들면 고라니를 생포를 해서 농작물 피해가 없는 지역에 놓아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단풍돼지풀 숲에 고라니는 오래도록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나는 고라니를 전혀 해칠 의사가 없다. 오히려 녀석과 놀아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 녀석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풀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먹 거리를 찾고 있다. 그 모습이 정말 토끼처럼 순해보인다. 아, 귀여운 고라니야! 안녕!
(2012.8.18 동이리 임진강변에서 고라니새끼와 마주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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