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너구리야, 이 정도로 협상 하는 것이 어때?

찰라777 2012. 9. 1. 10:24

1차전은 너구리에게 판정패, 2차전에 돌입

 

 

 

가래침을 뱉어 내듯 켁켁거리는 고라니의 울음소리에 그만 잠이 깼다. 창밖이 훤하다. 벌써 날이 밝았을까? 그러나 벽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 4시를 가르치고 있었다.

 

들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니 둥근달이 휘영청 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8월 31일)이 백중 보름 전야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보름달이 으스름한 구름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으스스한 달빛 아래서 고라니는 가끔씩 "으헤엑, 으헤엑~" 가래 끓는 소리로 울어댔다. 어쩐지 괴괴한 달밤이다. 혹시 너구리 녀석이 출현한 것은 아닐까? 녀석은 비가 온 날 저녁에 슬금슬금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오늘 같은 날이 너구리가 작업을 하기에 적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달빛도 으스름하고, 땅도 비에 젖어 촉촉하고. 땅콩을 파서 까먹기에 최적의 날씨다.

 

어쩐지 땅콩밭이 염려가 되었다. 날이 새자 바로 땅콩 밭으로 달려가 살펴보았다. 맙소사! 녀석은 어디로 들어 왔는지 땅콩을 몇 포기나 파헤쳐 먹어치웠다. 일전에 땅콩밭에 너구리 방어용 망사를 쳐 놓았었다

 

녀석은 며칠 동안 망사 밑 땅을 파헤치기는 했지만 어제까지는 방어망을 뚫지는 못하고 있었다. 망사를 뛰어 넘어갔을가? 그러나 작은 너구리가 망사를 뛰어넘기에는 너무 높다.

 

 

저런! 땅콩밭을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보니 망사 밑 한구석에 작은 개구멍이 나있질 않은가! 아마 너구리가 이빨로 물어뜯어 망사를 찢어내고 구멍을 만든 모양이다. 튼튼한 망사를 믿었었는데 너구리한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너구리는 망사를 비웃듯 유유자적하며 내가 잠들고 있는 바로 코앞에서 땅콩을 배불리 까먹고는 날이 밝기 전에 사라진 것이다. 녀석은 오늘밤에도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곤 다시 땅콩을 몰래 파먹을 것이다. 

 

 

아직 땅콩을 수확하려면 한 달가량이나 남았다. 녀석이 밤마다 나타나 땅콩을 야금야금 까먹다 보면 남아 돌아가는 것이 없을 것 같다. 여름철엔 다른 먹을 거리도 많을 텐데 하필이면 이 작은 땅콩밭으로 올까? 아마 땅콩이 너구리 입맛에 가장 맛는지도 모른다. 너구리도 먹고 살아야 하니 적당히 먹는 것은 좋은데 몽땅 다 먹어치우게 할 수는 없다.

 

토끼인형과 장화도 동원 

 

배가 부른 녀석은 어느 토굴에서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녀석이 어느 시각에 나타날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밤을 새며 녀석을 지킬 수도 없다. 하지만 수수방관하고 당할 수만은 없는 일.

 

 

인터넷을 뒤져 보니 너구리를 퇴치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나와 있다. 빈 개집 놓아두기, 사람 냄새나는 헌장화나 신발 걸어 놓기, 흰 비닐봉지를 개모양으로 만들어 걸어놓기, 잉크냄새가 나는 헌 신문지를 땅바닥에 펴 놓기 등.

 

아내는 현관에 있는 토끼 석고인형도 세워두자고 했다. 마침  토끼인형 색깔이 흰색이어서 너구리가 컴컴한 밤에 보고 놀랄것이 아니냐는 것. 참 좋은 생각이다. 나는 토끼인형도 땅콩 밭 앞에 세워 두었다.

 

 

 

철물점에서는 그런 재래식 방법은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하며 전기선 울타리를 설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너구리에게도 너무 가혹하기도 하고, 마치 '벼룩 한 마리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포기를 했다.

 

 

 

일단 망사를 이중으로 한 번 더 둘러쳤다. 그리고 말뚝을 더 촘촘히 박아 비닐봉지, 장화를 걸어 놓고, 잉크 냄새나는 신문지도 땅바닥에 깔아 놓았다. 너구리가 싫어하는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보는 것이다.

 

"신문지에다 에프킬러를 좀 뿌려 두지요. 그럼 그 냄새를 맡고 너구리가 놀랄것 같아요."

"굿 아이디어!"

 

나는 아내의 말대로 땅바닥에 깔아 놓은 신문지에다 에프킬러도 뿌려 두었다. 이쯤 해두면 너구리 녀석도 겁을 먹을 법도 한데 어떨지 모르겠다.

 

밤에만 잠수를 타는 너구리 녀석을 한 번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다. 해서 오늘 밤에는 나도 한번 잠수를 타 볼 작정이다. 정말 너구리인지, 아니면 오소리인지 녀석의 낯짝은 어떻게 생겼는지, 땅콩은 어떤식으로 까먹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도 낮에는 너구리처럼 늘어지게 한잠을 자 두고, 밤에 땅콩 밭을 단단히 지켜 보기로 했다.

 

 

너구리는 보통 엉큼하고 사나운 녀석이 아니다. 너구리에게 물리면 광견병에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1라운드는 너구리에게 완전히 판정패를 당하고, 오늘부터 너구리와 2라운드전에 돌입한 셈이다. 

 

오늘 저녁 녀석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또 다시 내가 설치해 놓은 장비들을 또 비웃음거리로 만들지나 않을까? 너구리야, 쥔장도 아직 땅콩 한알도 먹지 못했는데, 이 정도에서 협상을 하면 어떠냐?

 

※너구리를 퇴치하는 좋은 방법이 있으면 댓글로 좀 알려 주세요. 그 방법으로 너구를 퇴치하면 땅콩을 수확해서 1되 보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