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
오늘(10월 14일)은 많은 분들이 이곳 동이리 금가락지를 다녀갔습니다. 내 친구 응규가 지난 목요일부터 와서 함께 묵으며 아랫집 현희네 콩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도와주고 있고, 오늘 오전 10경에는 하은이 아빠가 오랜만에 방문을 했습니다.
하은이 아빠는 금가락지를 늘 오고 싶어도 워낙 일이 바빠서 오지를 못하고 있는데, 오늘은 모처럼 시간을 내서 찾아와 주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선물을 한 꾸러미 들고 온 하은이 아빠는 늘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해 보이기만 합니다.
▲주상절리에 용암처럼 붉게 흘러 내리는 담쟁이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금가락지는 컨테이너 박스에 지붕을 올리고, 그 앞에 있는 철 구조물을 연장을 넣어 놓을 수 있도록 칸막이를 하는 공사를 3일째 하고 있습니다. 컨테이너 박스가 녹스는 것을 방지하고, 농기구와 잡다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철구조물에 지붕과 벽을 만드는 작업과 금가락지 지붕에 홈통 증설, 화장실 등을 수리하는 작업을 행복하우징에서 두 분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은이 아빠랑 차 한 잔을 나누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우리는 주상절리 단풍을 함께 보기 위해 산책을 나섰습니다. 주상절리로 가는 길에 율무를 베어내고 있는 현희네 밭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율무를 베어내고 있는 풍경. 율무는 키가 수수대처럼 크다. 우리나라 율무의 80%를 연천에서 생산하고 있다.
“저기요,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세요.”
현희 할머니가 우리를 불러 세웠습니다. 율무 밭에서는 현희 할아버지와 응규, 또 한분이 율무를 베어내는 작업을 한창 하고 있었습니다. 율무는 키가 수숫대처럼 껑충 커 보입니다. 율무를 수확하는 장면은 처음 본지라 좀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연천은 우리나라에서 율무를 80%나 생산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율무는 단백질, 지방, 녹말, 섬유질, 칼슘 등이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신진대사와 이뇨효과에 좋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DMZ에 인접한 지역에 많이 생산을 하고 있으며, 겨울에는 희귀한 재두루미가 날아 와 율무이삭을 쪼아 먹곤 합니다.
▲ 마지막 피어오르고 있는 동이리 코스모스 길. 이길을 걷다가 우연히 민들레 님을 만났다.
우리는 현희 할머니가 따라준 쌀 막걸리를 한 잔 하고 주상절리 코스모스 길을 걸었습니다. 코스모스 꽃이 마지막 미소를 짓고 있는 제방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건너편 주상절리를 붉게 물든 담쟁이 단풍을 바라보며 산책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주상절리에 빨간 담쟁이 넝쿨이 붉게 물들며 임진강에 반영을 드리우며 절묘한 풍경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곳 가을풍경을 몇 차례 블로그와 뉴스에 올렸더니, 요즈음 그 기사와 사진을 보고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동이리 주상절리가 연천의 제일가는 명소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주상절리 단풍과 임진강, 코스모스가 절묘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자세히 볼수록 아름다운 절경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풍경이기에 사람들이 싫증을 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꾸미지 않는 아름다움, 임진강에 투영되는 주상절리의 수채화, 강변에 펼쳐진 정다운 몽돌, 그리고 한적한 코스모스 길이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나 봅니다. 그들은 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 탄성을 지르곤 합니다.
“아니, 찰라 선생님 아니세요?”
하은이 아빠랑 사진을 찍으며 코스모스 길을 걷고 있는데 앞에서 걸어오던 중년 부인이 나를 알아보곤 인사를 했습니다. 얼떨결에 인사를 받으며 누구시냐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혹시 어제 오신다고 했던 ‘민들레’님이 아닐까 하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내 직감은 적중을 했나 봅니다. 요즈음 제 블로그를 자주 들어오곤 하셨던 민들레님이었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맞지 않아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텐데, 이렇게 딱 마주치다니 참으로 묘한 인연입니다. 그 찰나의 순간을 비켜가지 않고 민들레님을 만난 것은 보통의 인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함께 주상절리 길을 걸었습니다. 안양에 사시는 민들레님은 내 블로그에 실린 주상절리 절경을 보기위해 남편과 함께 먼 길을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찰라의 순간에 만난 민들레님과 함께 주상절리 몽돌 강변을 걸었다.
우리는 주상절리를 바라보며 임진강변의 몽돌 길을 걷다가 함께 금가락지로 왔습니다. 굳이 신세를 져서는 안 된다며 오지 않겠다는 민들레님을 이렇게 만나기도 어려운데 그냥 가시면 되겠느냐며 집에 가서 차라도 한 잔 하자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마침 아내가 점심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행복하우징에 일을 하러 오신 두 분, 하은이 아빠, 그리고 민들레님 부부와 함께 있는 그대로 반찬에 밥만 한 공기씩 더 떠와서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마침 하은이 아빠가 ‘누룽지 막걸리’를 세병이나 사와서 고소한 막걸리로 만남의 인연을 축하하는 축배를 들었습니다.
"참, 이렇게 만나기도 어려운데 우리 축배를 들어야지요."
"정말이에요. 거기다가 금가락지에서 찰라님과 점심까지 함께 하다니 넘 영광인데요?"
누룽지 막걸리 맛이 고소했습니다. 뜬금없이 만난 인연도 누룽지막걸리처럼 고소했습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나서, 임진강 쑥으로 내가 손수 덖어 만든 쑥차를 끓여 마시며 한참 동안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어머니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온 아들
하은이 아빠와 민들레님 부부가 돌아간 후 전화 한 통화가 왔습니다.
“여기 파주 탄현 자유로 인데요. 주상절리를 가려면 어떻게 가야되지요?”
“37번 도로를 타고 오시다가 어유지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삼화교를 지나 바로 우회전을 하시면 ‘코스모스 길’이란 표지판이 보입니다. 그 표지판을 따라 죽 오시면 됩니다.”
전화를 하신 분들이 얼마 되지 않아 금가락지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 분들은 찰라가 ‘가족 아카데미아’에서 ‘여행의 창을 통하여 삶의 지혜를 얻다’란 제목으로 여행 강의를 할 때에 들으러 오셨던 분들이었습니다. 그 때 강의를 한 내용이 너무나 좋았고, 주상절리 풍경도 구경할 겸 갑자기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는 금가락지 가을 풍경
두 분은 승용차를 몰고 오셨고, 그 분들이 오시다가 도중에 ‘하리케인’이란 닉네임을 가진 카페 회원을 만나 함께 금가가락지를 방문하였습니다. 하리케인님은 오토바이를 탄 다른 두 분을 만나 함께 오셨는데, 아들이 어머님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왔습니다. 아들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타고오신 그의 어머님이 유난히도 젊어 보여 오누이 인줄로만 알았습니다. 모자간에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하는 모습은 또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갑자기 오게 되어서 미안합니다. 주변에 가게도 없어서 그냥 빈손으로 왔네요."
"아, 네. 그냥 오시는 것이 좋습니다. 금가락지는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요."
"금가락지 집도 주상절리 풍경도 너무나 아름다워요! 서울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답고 고즈넉한 곳이 있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정자에서 풍경을 둘러보고 다섯 분이 자리를 함께 하며 차 한 잔을 나누며 한 참을 이야기를 하다가 금가락지를 떠났습니다. 그 일행은 서울 가까운 곳에 이렇게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명소가 있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스쳐지나가는 인연을 맺지말라고 하는데...
금가락지는 다시 고요해지고, 이제 우리 두 부부만 남았습니다. 금가락지는 좋은 인연을 맺어가는 아름다운 터인 것 같습니다. 아침에는 임진강에 물안개가 자욱이 끼며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줍니다. 석양에는 금굴산으로 지는 해가 주상절리 적벽을 붉게 물들이며 절묘한 풍경을 보여 줍니다. 금가락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름도 좋고 집터도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극구 칭찬을 하곤 합니다. 이런 명당 터에서 사는 나는 참 행운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안개가 주상절리에 기기묘묘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참으로 묘한 인연으로 살고 있는 금가락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정감이 가고 애착이 가는 곳입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인연’에 대해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수행자는 집착은 내려놓고 인연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서의 저의 삶은 수행자의 생활이나 다름없습니다. 새벽 4시경이면 일어나 명상기도를 하고, 날이 밝으면 텃밭에 나가 일을 합니다. 하루을 거의 텃밭에서 보내고 밤이오면 9시 이전에는 저절로 잠이 듭니다. 이곳 금가락지에 머물며 자연스럽게 정해진 하루의 일가입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인연이 저의 생활을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나 봅니다.
이 세상은 어쩌면 인연 따라 만들어지고, 인연을 따라 소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이 바로 인연의 과보에 따른 연기의 법칙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므로 인연은 내 의지대로 거스를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혹 내가 인연을 거스르고 싶다고 해도 마음대로 거슬러 질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해가 뜨면 안개가 자연스럽게 걷히듯이 말입니다.
▲해가 뜨면 안개가 걷히듯이 만나고 해어지는 인연도 거스를 수가 없다.
내 앞에 나타나는 그 어떤 인연도 그것은 내 스스로가 만든 것이며, 또 스스로 받을 뿐입니다. “태어날 적부터 부자로 태어났으면...”, “더 멋진 미남이나 미녀로 태어났으면...”하고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미 내가 과거 생에 지은 인연대로 태어난 것을 후회나 원망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보다는 그 인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실을 직시하며 선근을 심어 복을 짓는 자세가 더 바람직하겠지요. 하늘에서 휘날리는 눈송이도,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조차도 자신이 인연지어 떨어져야 할 땅에 정확히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인연을 거스를 수가 있겠습니까? 저 앞 임진강을 바벨탑처럼 가로지르는 교각 탑이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다 인연따라 지어지는 것이라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임진강 주상절리를 가로 질러 건설하고 있는 사장교각 탑이 바벨탑처럼 안개 속에 둥둥 떠 있다.
법정스님 말씀에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지나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버려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인연은 피해갈 수 없는 과보라고 하는데, 어찌버면 인연의 법칙과는 잘 맞지 않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될 수도 있겠지요. 허나 이 말씀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감에 있어서 <진실>한 <영혼>이 실린 관계를 맺으라는 말씀으로 이해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 가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기억에 남는 사람은 몇몇 사람에 불과하지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남을 이용하기 위해 인연을 맺어가는 거짓 인연도 허다합니다. 특히 대선정국이 뒤숭숭한 요즈음의 현실을 보면 진실을 담지않는 거짓 인연을 만들어 가며 이합집산을 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참으로 한심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에 자연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보여줍니다. 자연은 꾸밈없이 진실과 영혼을 담은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요즈음 자연이 보여주는 주상절리 절경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주상절리 적벽에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담쟁이 단풍. 자연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진실을 보여준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진실은 진실 된 사람에게만 투자를 해야 한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지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인연을 맺어가면서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남에게 결코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인연이라고 해서 그 인연에 너무 집착을 해서도 아니 되겠지요. 인연은 실체가 없이 오고가기 때문입니다. 죽도록 좋아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해어지기 마련인데 좋은 인연이라고 해서 집착을 하면 돌이킬 수없이 후회를 하게 되는 과보를 지게 되겠지요. 인연법에 따라 존재하는 일체 법은 실체가 없는 공의 세계가 없는 것이니 좋은 인연이라고 해서 집착을 하지 말고 떠날 때가 되면 홀연히 놓아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삶이 끈적거리면 미련 없이 떠나라?
지리산자락에 살 때에 어떤 스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삶이 끈적거리면 빨리 떠나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 말씀은 좋은 인연도 나쁜 인연도 인연이 다 하면 미련 없이 놓아 버리라는 것이겠지요. 어떤 인연에 집착을 하면 어리석은 업을 짓게 된다는 것이 스님의 말씀입니다.
“삶이 끈적거리면 미련 없이 떠나라!”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이 말씀을 하신 지리산의 스님을 떠 올려 봅니다. 어쩌면 나는 지리산자락 섬진강에서 삶의 인연이 다하여 미련없이 떠났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미련없이 섬진강을 떠나고 보니, 다시 이곳 임진강에 새로운 인연을 맺어 살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주상절리 아름다운 풍경도, 금가락지와 맺은 아름다운 인연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황홀한 일몰 속에 주상절리의 담쟁이 단풍이 붉게 타오르고 있군요. 저 아름다운 단풍도 인연이 다하면 임진강 물속으로 떨어지고 말겠지요. “인연이 다하면 미련 없이 떠나라!” 주상절리에 매달린 담쟁이 단풍은 이렇게 속삭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몸은 사바세계에 살아가는 중생이기에 아름다운 인연은 고이 간직하고 싶은 집착을 쉽게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저 아름다운 주상절리 단풍도, 금가락지도, 그리고 오늘 금가락지를 찾아주신 분들과도 아름다운 인연을 계속 맺고 싶은 것이 저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2012.10.14 금가락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