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김장배추 뽑아내기
이주일간이나 집을 비웠더니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텃밭에 심어 놓은 배추와 무였습니다. 이곳 연천은 11월이 되면 벌써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리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월 2일 갑자기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습니다.
꽃이 지지 않는 섬나라 인도네시아에서 보름간 눈이 시리도록 적도상에 펼쳐진 푸른 밀림과 숲을 바라보다가, 동이리 집으로 돌아오니 스산한 늦가을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앞에는 주상절리가 뒤에는 금굴산이 벌거벗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하고는 너무나 대조적인풍경입니다. 30도를 웃도는 열도의 섬에서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쏟아져 내리는 물 폭탄을 맞으며 지내다가 갑자기 추운 지역으로 돌아오니 건조한 풍경과 함께 온 몸을 휘어잡는 추위는 저절로 몸을 움츠러들게 합니다.
동이리로 돌아온 아내와 나는 여독을 풀 사이도 없이 먼저 무와 배추를 뽑아내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오후부터는 늦가을비가 내리고 내일부터는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다는 일기예보는 김장배추와 무를 거둬내는 작업을 서두르게 했습니다. 다행히 오전에는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아 배추와 무를 뽑아내는 작업을 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김장배추라고 해 보아야 텃밭에 심은 100포기 정도의 배추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아주 귀한 배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배추 포기가 제법 크게 결구가 되어 있습니다. 겉잎은 거의 벌레들이 포식을 하고 속 배추만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절반은 배추애벌레들이 먹고 절반은 수확을 하여 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배추애벌레가 공존을 하게 되는 샘이지요.
그래도 배추를 뽑아내는 마음은 즐겁고 행복합니다. 지난 8월 23일 심은 배추를 그동안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키워왔는지, 녀석들이 마치 자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처음에 심기 전에 퇴비만 한번 뿌려주고 비료도 일체 주지 않고 농약도 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포기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매일 배추애벌레를 잡아내느라 무진 애를 먹기도 했지요. 처음에는 나무젓가락으로 잡아내다가 나중에는 핀셋으로 잡아서 배추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녀석들을 방생(?)을 하여주었습니다. 매일 배추애벌레를 잡아서 방생을 하여 주었지만 배추의 절반은 녀석들이 먹어치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농약과 비료를 주지 않고 채소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배추애벌레가 먹지 못하는 채소는 인간도 먹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시중에 나오는 잎이 반질반질하고 온전한 채소는 모두가 농약을 살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즈음은 유기농 농약을 쓴다고는 하지만 농약을 살포해서 연약한 배추애벌레가 살지 못하는 생태계는 인간에게도 해를 끼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초제를 쓰지 않고 풀을 손으로 뽑아냈습니다. 잡초를 뽑아서 밭이랑에 그대로 거름이 되도록 놓아두었습니다. 사실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러나 잡초도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이로운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잡초는 토양의 수호자이다'란 책을 쓴 미국의 식물학자 조셉 코캐너에 따르면, 해롭고 성가신 것으로만 여기고 있는 잡초들이 토양 깊숙한 곳으로부터 미네랄을 끌어다 황폐해진 표토 쪽으로 옮겨다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즉 잡초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영양소들을 농작물 뿌리 쪽으로 끌어다 준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움직임을 '만물의 공존 법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식물들 간의 공존과 유대관계를 통해서 서로를 살리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현대문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먼 동화속의 이야기로만 들리는 소리지요. 그러나 원시시대에 우리의 선조들은 제초제도, 비료도, 농기계도 없었으니 잡초와 함께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쇠스랑으로 밭을 일구어서 가꾸어 나가고 있는 저희 집 텃밭은 거의 원시적인 농사를 짓고 있는 샘입니다. 내손으로 쇠스랑과 괭이로 이랑을 만들고, 호미로 풀을 뽑아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그러나 이런 농사는 어찌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과학이 극도로 발전하여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기계와 화학비료, 농약을 써서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대에 원시시대 농법을 고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먹을 적은 양의 채소는 원시농법으로 지을 수는 있겠지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벌레가 살지 못하는 생태계는 인간도 온전히 생존 할 수 없다는 것을 생생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배추를 뽑아내고 나서 무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무를 부직포로 덮어 두었기 때문에 다행히 얼지는 않았습니다. 모래밭에 심은 무도 비료를 주지 않아서인지 밑이 잘게 들어있습니다. 알타리무를 뽑아내는 데 녀석이 어찌나 귀엽게 보이던지…
밑으로 쳐져있는 부분이 마치 개불알처럼 보이기도 하여 그만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알타리무를 총각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무 밑동 끝에는 강아지꼬리처럼 꼬리가 달려있군요.
무곁에 당근을 심었는데 당근뿌리도 그런대로 밑이 꽤 들어 있군요. 붉은 색 당근 뿌리를 뽑아내어 바라보니 왠지 군침이 나옵니다. 당근은 분명 우리의 식탁에 맛을 돋구어주는 고마운 채소입니다. 내친김에 파도 뽑아냈습니다. 배추와 무, 당근과 파까지 뽑아내고 나니 김장준비를 거의 다 한 느낌이 듭니다.
작업을 거의 다 끝나갈 무렵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을 제촉하는 비라서인지 빗방울이 무척 차갑게 느껴집니다. 비를 맞으며
배추와 무를 우선 거실로 옮겨놓았습니다. 밖에 두면 얼어버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잎이 푸른 배추와 무를 거실로 옮겨 놓으니 집안이 어쩐지 건강해 보입니다. 금년에 텃밭에 마지막으로 보는 푸른 채소들입니다.
내일은 배추 겉은 벗겨내어 시래기를 만들고, 속 배추만 김장을 담기로 했습니다. 무도 잎은 따내서 시래기를 만들고 알타리무로는 총각김치를 담고, 무는 깍두기를 담기로 했습니다. 거실로 옮겨놓은 배추와 무를 바라보자니 할 일은 태산 같지만 마음은 부자가 된 것 같군요. 내 손으로 땀을 흘려가며 직접 기른 배추와 무로 김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