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댄스, 선과 악의 끝없는 싸움
"슬리마 빠기"
(안녕하세요? 인도네시아 아침 인사)
오늘은 바롱댄스에 대한 이야길 좀 하고자 합니다. 인간에게 선과 악은 어떤 의미를 갖은 것일까요?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선과 악이 끊임없이 다투며 당신에게 번뇌를 안겨주고 있지요. 발리의 바롱댄스는 선과 악의 영원한 싸움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힌두의 신을 믿고 있는 발리 사람들은 선의 상징인 바롱과 악의 상징인 랑다에게 모두 경배를 하며 제물을 바치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발리의 문화와 종교, 삶을 이해하기위해서는 꼭 바롱댄스를 한 번 보아야 한다는 군요. 그래서 발리에 도착한 다음날 바롱극의 원조라고 하는 바투불란 짐베 부다야 극장을 찾아 바롱댄스를 관람하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초자연의 힘을 가진 바롱
쿠타에서 발리의 운전사 고만이가 운전하는 렌터카를 타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바롱댄스 극장 잠베 부다야(Jambe Budaya)였다. 덴파사와 우붓 중간에 있는 이 극장은 가장 전통 있는 바롱극장이라고 고만이가 소개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바롱댄스를 보고나면 발리의 문화를 가장 잘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 먼저 바롱댄스를 올바르게 이해를 돕기 위해 그 배경을 좀 상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바롱댄스에 나오는 전설적인 악마 랑다
이슬람을 섬기는 자바 섬과는 달리 대부분 힌두의 신을 섬기는 발리 사람들은 생활 자체가 그들의 종교이며, 신에 대한 숭배를 최고의 행복으로 생각한다. 바롱(Barong)은 초자연의 힘을 가진 짐승으로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
발리의 힌두력은 1년이 210일이다. 그들은 한 달을 35일로 하고 6개월(210일, 6*35일)을 1년으로 친다. 바롱은 210일마다 찾아오는 악령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을을 누비는 전설적인 동물이다.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선의 상징 바롱
현재의 바롱댄스는 1930년대 독일인 월터 스피스Walter Spies가 외국인 관광객에 보여주기 위하여 악마를 내쫒는 주술극 챠롱나랑에 최면상태에서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끄리스 댄스를 가미하여 연출했다고 한다. 화가였던 그는 음악가, 언어학자, 무용가 등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
러시아 태생의스피스는 현재 공연되는 발리의 '께짝 댄스'와 '바롱 댄스'를 재연 연출시켰다. 그는 발리의 '가믈린 음악'을 음반으로 제작하여 발리를 세계에 널리 알렸다. 그 이후 월터 스피스의 영향을 받은 구미의 많은 예술가들이 발리의 우붓에 이주하여 살게 되었다.
▲천리향 꽃바구니를 들고 관객의 머리에 꽂아주며 축복을 내리는 무녀 ▲무녀가 나에게 선사한 천리향 꽃 한 송이
힌두교의 서사시 '마하바리타'를 소재로 한 바롱 댄스는 선의 상징인 바롱과 악의 화신인 마녀 랑다가 끝없는 싸움을 전개하는 내용이다. 바롱극은 인간의 마음에 선과 악은 항상 공존한다는 발리의 특유의 세계관을 나타내고 있다.
발리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악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여행기간 내내 화를 내거나 싸우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항상 미소 짓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해발 3142m의 아궁산. 발리사람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성산이다(사진 : Gen mayhem)
발리인들의 생활자체가 힌두 신앙
우리나라 제주도 2.8배 크기의 발리는 섬 전체가 바다로 둘러 싸여있다. 그런데 이 발리 섬에 해발 3,142m의 아궁산Agung 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아리 모양의 섬에 우뚝 솟은 아궁산은 아직도 수시로 폭발하는 활화산이다. 발리 사람들은 이 아궁산을 세계의 배꼽이라고 생각하며 성스러운 성산으로 숭배를 하고 있다.
바다에 둘러 싸여 살고 있는 발리사람들은 바다를 악령이 득실거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집을 짓든, 의식을 행하든, 바다 쪽(끄릇)과 산 쪽(까자) 두 가지가 방향감각의 기준이 된다. 이슬람이 전 지역에 침투해버린 자바 섬과는 달리 발리는 힌두 문화가 깊이 녹아 있다.
▲바롱댄스 극장 입구에 있는 동상
한 마을에 창조의 신, 보호의 신, 파괴의 신 등을 모시는 3개의 사원이 존재하고 있다. 발리에는 크고 작은 사원이 2만 개 이상 존재하고 있다. 아니 주민들은 집 자체를 사당처럼 짓고, 집집마다 탑과 힌두의 신상를 모시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발리를 '신들의 섬'이라고 부른다. 발리의 힌두교는 인도의 힌두교와 달리 다른 형태로 지구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발리 힌두교의 형태를 띠고 있다.
발리 인들은 생활 그 자체가 바로 힌두의 신앙 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작은 바구니에 넣은 제물인 차낭사리을 집 안팎 도처에 놓으며 힌두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제물의 내용은 꽃, 쌀, 향, 과자 등 형형색색 화려한 색깔이다. 발리사람들은 집 안과 밖, 화장실, 골목길, 상점에도 악령과 마녀들이 득실거린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 제물은 신과 악령에게 동시에 바침으로서 가정과 개인에게 평안이 깃든다고 믿는다.
▲화장실 바닥에 놓여진 제물 차낭사리
▲가게에도 제물을 바친다.
제물을 바치는 것과 아울러 발리섬 어느 곳을 가나 가믈란(gamelan)합주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롱댄스이다. 발리사람들은 선과 악, 삶과 죽음, 빛과 어둠처럼 모든 것이 이원론적으로 생성된다고 믿고 있다.
바롱댄스(Barong Dance)는 선과 악 사이의 영원한 싸움을 연출한다. 바롱극에 나오는 '바롱(Barong)'은 선의 상징이고, 랑다(Rangda)는 악령을 의미한다.
천리향 꽃을 머리에 꽂아주는 매혹적인 소녀무희
쿠타를 출발한 렌터카는 오전 9시 30분에 바롱극을 공연하는 바투불란Batubulan에 있는 잠베 부다야(Jambe Budaya, http://www.jambebudaya.baliklik.com) 극장에 도착했다. 운전사 고만이의 말로는 이곳이 가장 유명하고 전통이 있는 바롱극장이라고 했다. 우리는 1인당 입장료 10만루피아나 된 꽤 비산 입장료를 내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집베 부드야 극장 입구에서 가믈란을 연주하며 흥을 돋구는 악사들
입구에서는 세 사람의 악사들이 가믈란을 연주하며 흥을 돋우고 있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원색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아름다운 무희가 접시에 천리향을 가득 담아들고 입장객들의 머리에 꽃아 주며 축복을 내려주고 있었다. 무희는 꽃을 꽂아주며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무희가 내 머리에 천리향 한 송이를 꽂아 주었다.
▲천리향을 선물하는 무희의 요염한 미소
▲짐베 보드야 야외극장을 방불케 하는 바롱댄스 공연장
바롱극장은 인도네시아 전통지붕으로 만든 천장만 있고, 사방이 터져있어 야외극장이나 다름없다. 객석에는 벌써 많은 외국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대왼쪽에는 가믈란 합주단이 특유의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라롱극은 모두 5장면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장면별로 설명과 사진을 부언해 본다( 설명은 Jambe Budaya홈페이지에 있는 영문내용을 번역한 것으로 번역상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으니 http://www.jambebudaya.baliklik.com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서막-신들린 듯한 가믈란 연주
지하의 정령들을 불러내기 위해 고음의 가믈란 음악이 신비스럽게 울려퍼져나가는 가운데 선의 상징인 바롱이 무대에 나와서 춤을 춘다. 가믈란Gamelan 합주에 사용되는 타악기는 대, 중, 소로 만들어진 공과 목제 또는 금속제로 만들어진 건반악기 강사, 껀당(북), 슬링(대나무 피리) 등으로 구성된다.
북소리를 신호로 미묘한 울림이 증폭되면서 장대한 합주가 시작된다. 바롱에 뒤이어 원숭이가 익살을 부리며 나타난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먹으면서 바롱을 놀리기도 한다.
▲신들린듯 가믈란을 연주하는 가믈란 합주단
▲바롱과 원숭이가 춤을 추고 있다.
제1막-현란한 무희의 춤동작
랑다의 시녀로 분장한 두 명의 무희가 등장하여 그들의 수상을 만나러 오는 데위 쿤티 여왕Dewi Kunti(왕자의 어머니)의 시녀들을 찾는다. 현란한 손짓과 눈동자의 굴림, 그리고 가슴과 허리 엉덩이를 교묘하게 나선형으로 휘며 춤을 추는 몸짓이 신이 들린 듯 하면서도 묘한 성적 감흥을 느끼기도 한다.
▲무희들의 현란한 레공 춤. 그 중에 한 명은 천리향 꽃을 나누어 주던 무희다.
제2막-
데위 쿤티 여왕의 시녀들이 나타난다. 랑다의 시녀 중 하나가 마녀로 변하여 데위 쿤티왕 시녀들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성난 모습으로 만들어 버린 채 수상을 만난 후 데위 쿤티를 만나러 떠난다. 땅딸막하고 눈섭이 짙은 수상의 인상이 매우 강열하게 풍겨온다.
▲수상의 연기
제3막-마법에 걸린 사데와 왕자
데위 쿤티의 아들 사데와Sadewa가 나타난다. 데위 쿤티는 아들 사데와를 제물로 바칠 것을 약속한다. 한 명의 마녀가 나타나 데위 쿤티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마녀는 수상에게도 마버을 걸어 사데와 왕자를 숲속으로 데려 갈 것을 명령한다. 수상도 마녀가 몸속으로 들어가 있으므로 사데와에 대하여 연민을 가지지 못한다. 숲속으로 끌려간 사데와는 나무에 묶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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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에 걸린 데위 쿤티 여왕
▲나무에 묶여버린 사데와 왕자
제4막 - 천국으로 들어가는 마녀 랑다
시바 신God Siwa이 나타나 랑다 모르게 사데와에게 불사신을 몸에 넣어주고 간다. 랑다와 사데와를 죽일 준비를 하고 나와서 랑다는 그를 잡아먹으나, 시바 신으로부터 불사신의 생명력을 받은 사데와는 죽지않고 살아난다.
랑다는 죽지않는 사데와 왕자를 잡아먹는 것을 포기하고 오히려 사데와에게 그녀를 구원해 줄 것을 요청한다. 사데와는 이를 승낙하고 랑다를 죽인다. 사데와에게 죽임을 당한 랑다는 천국으로 들어간다.
▲악의화신 랑다가 사데와 왕자를 잡아먹기위하여 등장한다.
▲마녀 랑다
▲사데와 왕자가 마녀 링다를 죽이는 장면
제5막 - 바롱과 랑다의 끝없는 싸움
랑다의 하녀 칼리카Kalika가 사데와 앞에 나타나 그녀 역시 구원을 해줄 것을 청하자 사데와는 거절한다. 칼리카는 화를 내며 멧돼지로 둔갑하여 사데와와 싸운다. 왕자의 원군에게 사로잡혀 죽은 칼리카는 새로 둔갑하여 사데와 왕자와 싸우지만 역시 패하고 만다.
칼리카가 마지막으로 자신을 랑다로 둔갑시키자 사데와는 그녀를 죽이지 못한다. 그러자 사데와는 자신을 바롱으로 둔갑하여 링다와 싸운다. 바롱의 부하들이 나타나 그를 도와 랑다를 물리치지만 랑다의 마법에 걸린 부하들은 단검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며 집단으로 자살한다. 바롱과 랑다의 끝없는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제사장이 나타나 왕자의 원군에게 정화수를 뿌려주면서 랑다의 마법을 풀어준다.
▲마녀 링다의 시녀 칼리카가 멧돼지로 변신하여 사데와 왕자와 싸운다. ▲사데와 왕자의 원군이 멧돼지로 변신한 랑다의 시녀 칼리카의 배를 가르고 있다. ▲멧돼지의 꼬리를 거시기로 오해하여 연출하는 익살스런 장면 ▲칼리카가 마녀 랑다 변하여 다시 싸움을 벌이는 장면 ▲왕자의 원군과 랑다는 치열한 싸움을 벌려 랑다는 원군을 거의 죽이고, 마지막 남은 원군의 칼르 맛아 죽는다. ▲랑다의 머리에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원군 ▲랑다의 마법에 걸린 왕자의 원군들이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며 끄리 댄스를 추면서 집단으로 자살한다. ▲ 제사장이 나타나 왕자의 원군들에게 정화수를 뿌리며 마법을 풀어주자 원군들이 되살아 난다. ▲바롱극의 마지막 장면
바롱극은 단순한 연극이 아닌 생사를 오가는 관극
바롱극은 성수 바롱과 마녀 랑다의 싸움은 끝나지 않고 영겁에 이르도록 계속됨을 나타낸다. 바롱과 링다 즉, 선과 악의 싸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염병을 내쫒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바롱극은 단순한 오락이나 예술의 범주를 벗어나 발리 사람들에게는 생사를 건 관극이 되기도 한다는 것.
실제로 랑다의 주술에 걸린 무용수들은 신이 내린 상태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기도 하고, 관중인 마을 사람들 중에는 바롱극을 관람하다가 실신하거나 쓰러지는 경우도 속출한다고 한다.
▲관객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바롱댄스 극단 단원들
우리에게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 속에는 악이 때로는 선으로 바뀌기도 하고, 선이 악으로 바뀌기도 한다는 것이 발리 사람들의 믿음이다. 그래서 발리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힌두 신은 물론 악의 상징 랑다에게도 제물을 바친다고 한다.
나는 마치 랑다의 마법에 걸려 신들린 듯 무대에서 연출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화려한 가면과 원색의 색상, 그리고 극이 진행되는 내내 가믈란의 미묘한 합주가 마음을 흔들어 댔다. 바롱는 사자, 호랑이, 소 등 짐승들의 혼합체이다. 발리에서 나는 나뭇잎에서 추출한 섬유, 까마귀 깃털, 가죽 등으로 만든 화려한 가면은 마음을 매우 현란하게 만든다.
▲마치 내 자신이 마녀 랑다의 주술에 걸려 접시속의 무희와 함께 있는 듯...
극이 끝나고 무대에서 바롱과 무희들과 함께 추억의 기년사진을 찍었다. 주술에 걸린 듯 흔들리는 마음을 안고 출구로 나오는데 입장을 할 때 천리향 꽃을 꽂아주며 미소를 짓던 무희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이 둥근 접시에 걸려 있다.
아, 내 모습도 마법에 걸린 듯 둥근 접시 속에 박제되어 벽에 걸려 있다. 옷깃만 스쳐도 몇 겁의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 무희와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참고자료:JAMBE BUDAYA 홈페이지(http://www.jambebudaya.balikl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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