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치열했던 금굴산에서의 새해맞이
2013년 새해아침은 금굴산 해맞이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침 7시, 대문을 나서니 아직 캄캄하다. 그런데다가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린다. 춥다. 그래도 옷을 단단히 포개 입고 이장님 댁으로 발길을 옮겼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고 있다.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내며 걷는 새벽길, 짐승들이 먼저 발자국을 찍어 놓고 있다. 동이리 이장님 댁은 우리 집에서 100여 미터 거리에 있다. 그 사이에는 집이 없다. 산과 밭뿐이다. 적막강산이란 표현이 가장 걸 맞는 말이다.
▲연천군 금굴산에 올라 화이팅을 외치는 동이리 마을 사람들
마을의 안녕과 평화, 풍년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지낸 후
이장님 댁에 도착하니 이장님 형님이신 현희 할아버지가 와 계셨다. 이장님의 차를 타고 동이리 마을회관으로 갔다. 눈발이 더 거세지고 굵어졌다. 과연 산을 오를 수 있을까? 엉금엉금 기어가듯 동이리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이장님은 시산제를 지낼 제수를 챙겼다.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매년 새해 아침이면 금굴산에 올라 시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제수를 챙기는 동안 8명의 등산객이 모였다. 눈이 안 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올 텐데 눈 때에 더 이상 사람들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남자 7명, 여자 2명, 아홉 명이 눈길을 헤치며 마을회관을 출발하여 금굴산 향해 걸었다. 거기에 강아지 두 마리가 합세를 했다. 눈이 발목까지 빠진다. 아무도 밟지 않는 눈 쌓인 새벽길을 걷는 기분은 상쾌하다 못해 희열까지 느껴진다. 금굴산 주둔 부대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걷기 좋은 길이다. 장병들이 눈을 치워놓아 걷기에 편안하다. 눈삽과 빗자루를 총열처럼 가지런하게 세워놓았다.
▲동이리 마을회관
▲멍멍이도 함께 출발!
▲영하 17도의 추위에 눈을 맞으며 금굴산을 올랐다
▲금굴산 부대 장병들이 눈을 치우고 눈삽과 빗자루를 총열처럼 세워놓았다.
금굴산 고지에 올라 이장님은 눈 위에 거적을 깔고 북어포, 사과, 배, 대추 등 제수를 진설하고 막걸리를 정성스럽게 올렸다. 이장님이 먼저 절을 하고 이어서 모두 합장 배례를 하였다. 모두가 동이리 마을의 안녕과 평화, 풍년을 기원하는 덕담을 주고받았다. 또한 개별적으로 술을 올리며 새해 희망과 다짐을 염원했다.
"금굴산은 한국전쟁 당시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입니다. 만약에 이 고지를 적에게 내 주었더라면 연천군과 철원군은 북한 땅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금굴산 정상에 시산제를 정성스럽게 지내는 동이리 마을 사람들
이장님과 마을 사람들은 금굴산의 군사전략적 중요성을 한마디씩 말하며 매년 금굴산에 올라 시산제를 지내는 의미를 각인시켜 주었다. 임진강에 둘러싸인 금굴산은 연천군 미산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철의 삼각지를 고수하는 매우 중요한 산이라는 것. 그래서 금굴산 시산제는 마을을 지켜준 호국영령들에 대한 추모의 뜻도 크다고 했다. 만약 금굴산 전투에서 패했더라면 연천군과 동이리 마을은 공산치하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순시탑이 세워진 금굴산 요새
금굴산은 6.25 한국전쟁 때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휴전협정이 진행되면서 연천지역에는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금굴산은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새로 전략적인 면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하는 고지다. 이곳은 북위38도 동경 127도가 지나가는 한반도 중심 인근지역이다. 한국전쟁 당시 금굴산을 적에게 내줄 경우 연천은 전쟁 전 38선, 즉 한탄강 이남으로 휴전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였다.
▲금굴산 요새에 1976년 12월 22일 고 박정희댕통령 순시 기념으로 세운 탑
금굴산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1951년 4월 22일부터 나흘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중공군 1개 사단이 총공세를 펴왔고, 벨기에, 룩셈부르크 연합군이 이에 맞서 금굴산 방어에 나섰다. 벨룩스 연합군 3498명이 참전한 금굴산 전투에서 연합군은 101명 사망자와 349명 부상자를 내며 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였다. 이 전투에서 사망한 연합군은 동이리 <유엔군 화장장>에서 화장을 하여 유골을 본국으로 후송하였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연천군을 비롯하여 철원군일대가 김일성이 지배하는 북한 땅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장열하게 전사한 유엔군을 추모탑을 세웠으면...
그런 의미에서 연합군의 시체를 화장했던 동이리 유엔군 화장장, 금굴산 전투 보급과 지원작전을 용이하게 했던 마전리와 삼화리를 연결했던 <파카교>, 무등리와 진상리를 연결했던 <화이트교>는 6.25전쟁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전쟁유적지다. 정상 진지 입구에는 고 박정희대통령순시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1976년 12월 22일 금굴산 고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곳을 방문하여 군장병들을 위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순시탑 보다는 우리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전사를 한 연합군을 기리는 추모탑이 세워졌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유엔군 화장장, 파카교, 화트교가 있던 자리에도 전쟁 유적지를 기리는 이렇다할 기념비가 없는 것은 심히 부끄럽고 깊이 반성을 해야 할 일이다.
뱀의 지혜로 나눔정신을...
▲금굴산에서 바라본 동이리 마을 전경
▲임진강 건너편은 남계리 벌판이다.
해는 끝까지 떠오르지 않았다. 시산제를 지낸 우리는 우리는 눈발이 휘날이는 금굴산 진지에서 화이팅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각자 마음속으로 떠 오르는 해를 그리며 하산을 했다. 이장님 댁에서 준비한 떡국으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 등산 후에 만두가 곁들여진 떡국은 별미중의 별미였다. 전날 부부들이 이장님 댁에 모여 이 만두를 손수 만들었다고 했다.
지난해에 그토록 가뭄이 들었지만 그런대로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연천의 주 농산물인 율무, 고추, 콩 등이 극심한 가뭄과 태풍 속에서도 비교적 수확이 좋아 제값을 받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마을 사람들은 떡국을 먹으며 작년 한 해 동안의 농사를 회고하고 금년의 농사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서로 이야기하였다. 소를 키우는 이야기를 하고, 사료걱정을 하기도 했다.
▲멍멍이들도 함께 시산제를 지냈다
2013년도에는 모든 국민이 최소한 기초생활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자와 빈자의 양극화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한 사회는 점점 더 불안해 질 것이다. 부자가 빈자에게 좀 더 베푸는 복지사회가 이루어 져야 한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도 무조건 공짜만 바라서는 안 된다.
복지에 관대한 이야기를 하면 빨갱이로 매도하는 그런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복지는 사회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는 필수 불가결한 처방이다. 부자도 빈자도 모두가 한 인간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최소한 기본적인 생활은 사회가 보장을 해 주어야 한다. 뱀은 지혜의 상징이다. 계사년 새해에는 뱀의 지혜를 본받아 재물은 나누고, 고통을 분담하여 보다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2013년 1월 1일 연천군 미산면 금굴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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