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아다니는 밀교승이 세웠다는 엔체이 곰파
허공엔 타르쵸가 만장처럼 휘날리고...
▲만장처럼 휘날리는 타르쵸에는 티베트 불경이 새겨저 있다.
히말라야의 난 향기를 온 몸에 뒤집어 쓴 우리는 꽃 전시장을 나와 엔체이 곰파Enchey Gompa로 향했다. 엔체이 곰파로 오르는 길은 하늘을 찌르는 침엽수들이 도열해 있다. 오색찬란한 룽다가 휘날리는 가파른 언덕에 집들이 곡예를 하듯 들어서 있다. 펄럭이는 타르쵸를 뚫고 지나가노라니 마치 공중을 나는 기분이 든다.
엔체이 곰파는 MG광장에서 3km 떨어진 북쪽 가파른 언덕에 세워져 있다. 곰파 입구로 들어가는 길에 휘날리는 오색 룽다는 마치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깃발처럼 보인다. 룽다의 물결을 지나 언덕 정수리에 오르니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마니차가 길게 늘어 서 있다.
엔체이 곰파는 19세기 중반 하늘을 날아 다녔다는 밀교승 둥둡 까르포Dundup Karpo가 세운 사원이다. 그는 이 가파른 언덕을 과연 날아서 올라갔을까? 그러나 모든 전설이 그러하듯 스님이 하늘을 날아 다녔다는 표현은 좀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 다만 그 만큼 날렵하고 걸음걸이가 나는 듯 빨랐을 것임에는 틀림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내와 나는 마니차를 하나하나 돌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티베트인들은 올라갈 때는 오른편의 마니차를, 내려 올 때는 왼편 마니차를 돌린다. 항상 시계방향으로 오른손을 사용해서 돌린다. 고도가 높아 빨리 걸을 수도 없다. 천천히, 천천히…… 마니차를 돌리다 보니 마치 세월을 느리게 돌리는 느낌이 든다. 바다님도 청정남 님도 마니차를 정성스럽게 돌리며 걸어갔다. 다만 크리스천인 무한도전님만 그냥 묵묵히 걸어갔다.
나는 성당에 들어가면 성수를 이마에 찍으며 성호를 긋고, 교회에 들어가면 묵념을 한다. 회교사원에 들어갈 때에는 맨발로 들어가 엎디어 절하고, 절에 들어갈 때는 합장을, 티베트 곰파에 들어갈 때는 오늘처럼 마니차를 돌리며 들어간다. 종교의식은 모두가 성스러운 것이다. 특히 여행을 갈 때는 그 지방 종교의식에 맞는 행동을 취해야 그곳의 문화와 종교를 맛볼 수 있고, 현지인하고도 금방 친해질 수 있다.
마니차 양 옆에는 쭉쭉 벋은 삼나무가 도열해 있고, 타르초가 겹겹이 휘날리고 있다. 우리의 기도를 하늘로 쭉쭉 뻗어 올려주려는 듯… 불경을 새긴 타르쵸의 깃발이 햇살에 부서지며 눈을 부시게 한다. 오,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는 휘날리는 타르쵸에서 세월의 강물이 출렁임을 바라본다.
사원 안으로 들어서니 벽에 부탄의 탁상사원 사진이 걸려있는 게 아닌가! 탁상사원은 이번여행의 하이라이트를 바라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며칠 후면 우리는 저 깎아지른 절벽에 도달할 것이다.
사원 오른 쪽에는 간결하고 작은 티베트 전통 법당이 들어서 있다. 티베트 사원은 어디를 가나 라싸의 포탈라 궁처럼 아래 1층 벽은 하얀 색깔, 위층은 붉은 벽돌색이다. 1층은 중생이 머무는 세계이고 2층은 피안의 종교세계를 뜻한다고 했던가?
나는 다시 사원을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갔다. 티베트에서는 사원을 돌아가는 것을 ‘코라’라고 부른다. 코라는 신의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신성한 순례 의식이다. 티베트인들은 누구나 사원에 오면 ‘옴 마니 반메훔’을 지극성성으로 염송하며 코라를 돈다. 손에는 대부분 작은 휴대용 마니차를 돌리거나 염주를 세며 기도 삼매에 젖은 듯 코라를 돈다.
이곳 엔체이 곰파에서도 시킴인 들이 ‘옴 마니 반메훔’을 지극정성으로 염송하며 코라를 돌고 있다. 옴 마니 반메훔, 옴 마니 반메훔, 옴 마니 반메훔… 삼매경에 젖어있는 모습은 평온하게만 보인다. 저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뒷담 모퉁이를 돌아서니 노스님 한 분이 양지바른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은 채로 티베트 경전을 독송하고 있다. 스님은 사람이 지나가도, 사진을 찍어도 반응이 없고 오직 경전 독송에만 열중하고 있다. 허름한 슬리퍼에 돋보기를 쓴 스님의 자세가 매우 편하게 전달되어 온다. 평온하다. 내 마음까지… 스님의 법력이 내 이 나그네의 마음속에도 전달된 탓일까? 진정한 행복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을 텐데,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나는 무엇을 찾고자 함일까? 그래서 중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겠지.
사원을 한 바퀴 돌고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동자승들이 단정히 앉아 경전을 읽고 있고, 주지스님 인 듯한 스님이 법상에 앉아 기도를 하는 신도들에게 하얀 천으로 된 까딱을 목에 걸어주며 축복을 내려주고 있다. 나도 스님 앞으로 가서 합장을 불전 함에 100루피를 넣었더니 스님이 내 목에 까딱을 걸어주고 축복을 내려준다. 순간의 종교의식은 성스럽다. 나는 스님의 체취를 느끼며 동시에 티베트의 정신세계로 몰입을 하는 짧은 찰나의 순간을 느낀다.
동자승들이 천진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맑은 눈동자 속에서 마음을 평온이 깃들어 있다. 엔체이 곰파에는 약 50여명의 동자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다. 그 어떤 풍경보다도 스님들의 맑은 눈동자와 티 없는 모습이 가장 눈길을 끈다. 역시 사람이야. 사람이 꽃보다 소중하고 아름답다!
엔체이 곰파를 나오면서 나는 다시 왼쪽 방향으로 마니차를 돌리며 걸어나왔다. 그리고 이 곰파를 세웠다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밀교스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정말 평생을 맑은 마음으로 도를 닦는다면 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다르질링에서는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만 같은 설사가 갱톡에 도착하여 거짓말처럼 멈추다니....
이것 하나만 보아도 내 인체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도인이 나에게 축복을 내려준 것일까? 만장처럼 펄럭이는 타르쵸를 바라보니 그 밀교승의 영혼이 경전이 되여 나부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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