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뼈도 부활을 하는 잔인한 사월
밤새 봄비가 내렸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는 한 밤의 지붕을 두들기고, 썩은 나뭇가지와 파종을 한 종자들을 적셨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석류나무뿌리에서 새순이 돋고, 죽으라고 매년 목을 쳤던 뽕나무도 다시 새가지를 뻗어냈다. 해골처럼 피골이 상접한 그것들은 성령인 봄비로 인해 다시 가지를 뻗고, 힘줄을 뻗어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석류나무에 새 가지가 돋아나고 있다.
▲죽으라고 목을 잘랐던 뽕나무에도 새가가 돋으면 싹이 나고 있다.
극히 마른 씨로 겨우 연명을 하던 당근 씨와 쑥갓씨, 그리고 해바라기씨도 봄비라는 성령으로 적시며 굳은 땅을 뚫고 고개를 쳐들고 있다. 씨앗들은 황무지인들이자 작은 노인들이다. 그들은 과거의 추억과 회상, 그리고 기억을 되살리며 죽음과 부활의 고통을 수반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그래서 '황무지인들', 즉 '작은 노인들'에게 죽음과 부활의 고통을 수반하게 하는 봄은 가장 잔인한 것이다.
▲두꺼운 땅을 뚫고 올라오는 당근 새싹과 썩은 참나무에서 고통을 딛고 부활하는 버섯
이른 아침 나는 뜨거운 물에 커피 한 잔을 타 들고 부활의 고통을 겪고 있는 당근 씨와 쑥갓씨, 그리고 해바라기 씨를 뿌려둔 텃밭을 돌아보았다. 엘리엇이 마셨던 뮌헨의 호프가르텐 공원은 아니지만, 이곳 임진강 변 금가락지 텃밭은 황무지처럼 황폐했던 자갈땅을 삽과 쇠스랑으로 일구어 만든 나만의 작은 공원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석류나무와, 목을 자른 뽕나무, 그리고 뒤꼍에 놓아둔 썩은 참나무를 차례로 돌아보았다. 땅 속에서 해골처럼 웅크리고 있던 씨앗들은 두꺼운 대지의 표피를 뚫고 일어서고 있고, 썩은 석류나무와 목을 친 뽕나무에는 새가지를 뻗혀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그리고 썩은 참나무에서는 거북등처럼 벌어지는 부드러운 버섯들이 부활하고 있다.
▲두꺼운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여린 해바라기 씨앗
벚꽃이 핀 숲으로 가니 어젯밤 내린 비를 맞은 하얀 벚꽃이 눈처럼 우수수 휘날리며 떨어져 내린다. 나는 꽃비를 맞으면 숲을 걷는다. 식물은 꽃을 피우고 나면 떨어질때를 알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미련없이 떨어져 내린다. 벚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흰 꽃잎들이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여기저기로 휘날리며 떨어져 내린다.
▲꽃비가 휘날리는 임진강변
나는 꽃비를 맞으며 다시 엘리엇의 시 황무지를 생각해 본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2년 출간을 한 황무지(The Waste Land)는 434행 줄의 시는 난해하면서도 부조화스럽게 나타나는 풍자와 예언의 전환, 분열과 화자의 알려지지 않은 변화들, 장소와 시간, 애수적이지만, 으르는 호출 등이 리얼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시는 20세기 시 중 가장 중요한 시중의 하나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 유명한 싯구들 중에서 첫 행은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된다.
'잔인한 달'에서 '평화'로 끝나는 엘리엇의 <황무지>
“샨티 샨티 샨티(평화 평화 평화)” 과연 이 땅에 평화는 올 것인가?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죽은 자의 매장'에서 시작하여 힌두경전 <우파니샤드>를 끝맺는 만트라, 즉 진언 ‘샨티’로 끝을 낸다. 이 ‘샨띠’는 신약 <빌립보서>의 인간의 사고를 초월한 하나님의 평화에 해당된다고 한다. 평화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이다. 그리고 비둘기는 성령의 상징이다.
▲벚꽃에 앉아있는 산비둘기
그렇다면 울면서 노래하는 새는 비둘기 성령이다. 모든 새들 중에서도 특히 “구구구”하고 우는 비둘기 울음소리는 신음(呻音) 소리에 가깝다. 그러나 비둘기는 성령의 신(神)이므로 비둘기의 신음(呻音)은 성령의 신음(神音 )이다. 그러므로 비둘기 울음소리는 황무지의 신을 부르는 만트라이며 기도이다. 벚꽃에 산비둘기 한쌍이 구구구 신음을 하더니 뭔가를 쪼아 먹는다. 저 소리가 황무지의 신을 부르는 만트라일까?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과/욕망을 섞으며, 봄비로/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4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생기없는 뿌리를 깨운다고 시작된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황무지>는 ‘천둥이 한 말’ '샨띠'(평화)를 외치며 막을 내린다.
4월은 추억과 욕망을 섞으면서 죽은 땅에서 첫 사랑을 상징하는 라일락꽃을 부활시킨다. ‘추억’과 욕망은 ‘생기 없는 뿌리들’을 깨우는 봄비다. 생기없는 ‘뿌리’는 무엇인가? 이 뿌리들은 구약에서 선지자 에스겔이 기록한 <에스겔서> 37장에 나오는 골짜기의 해골들이다. 골짜기에는 심히 뼈가 많고 아주 말라있었다. 이 뼈들은 땅 속에 매장되어 ‘작은 생명’을 뿌리줄기로 겨우 연명하는 ’작은 노인들‘이다. 그 작은 노인들은 황무지인(荒蕪地人)들이다. 그들은 과거의 '한'과 미래의 '공포'에 현재의 삶을 빼앗겨 산 적이 없는 죽은 해골들이다.
▲마치 해골처럼 썩은 참나무가 표고버섯으로 부활하고 있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에스겔서 37:6). 그러자 뼈가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을 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른다. 그리고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생기는 없다.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에스겔서 37:9~10).
이 생기 없는 해골 같은 뿌리들을 깨우는 것은 봄비이며, 성령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는 장독대를 적시고, 모든 마른 나뭇가지와 식물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할미꽃이 피어나는가 하면 꽃이 진 자리에는 흰머리처럼 털부숭이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장독대에 떨어지는 봄비
▲할미꽃이 피고지며 봄비를 맞고 있다.
이 땅의 충실한 개들을 조심해야 한다
아랫집 현이네 강아지가 봄비를 흠뻑 맞고 나를 쳐다본다. 강아지는 주인에 대하여는 매우 충실한 개다. 그런데 엘리엇은 모든 부활하는 생명들은 개를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런던 교를 건너 지옥 같은 허망한 도시로 출근하는 한 샐러리맨이 9시 출근시간을 알리는 조종 소리가 들리자 동료 스텟슨을 만나 소름끼치는 질문을 던진다. 자네가 작년에 자네 정원에 심었던 시체가 싹이 나기 시작했는가? 이 시체는 땅에 묻혀 덩이줄기로 연명하는 소인의 작은 삶이다. 그는 동료에게 주의를 준다. 인간의 친구인 그 Dog을 조심하게. 그렇지 않으면 그의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낼 테니!”
▲봄비를 흠뻑 맞은 아랫집 현이네 강아지
‘Dog'를 역순으로 뒤집으면 ’God'이 된다. 이 신은 역천(逆天)한 인간이 하나님 뜻을 자기 뜻으로 대치한 인간 사냥개이다. 이 개는 ‘하늘의 사냥개’와는 다른 땅의 강아지다. 하늘의 사냥개는 인간을 끝까지 쫓아다니지만, 충성스러운 사람의 친구인 땅의 강아지는 옛 주인을 쫓아다닌다. 그리고 땅 속에 묻힌 옛 주인을 구출하려고 발톱으로 파내려 한다. 그러나 파내면 옛 주인은 부활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주인공은 강아지를 경계하라고 하는 모양이다.
▲임진강 주상절리 적벽
묻힌 씨앗과 죽은 석류나무 뿌리를 파헤치면, 씨앗과 석류나무는 부활을 하지 못하고 죽고 만다. 그대로 땅 속에 묻어두어야 봄비가 생기를 불어 넣어 주어 지금처럼 부활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인간세상에는 출세와 부를 얻기 위해 이 땅의 강아지들이 너무 판을 친다.
그들은 탐, 진, 치(貪-성냄, 瞋 - 증오, 痴-이리석음) 3독과 5욕(재욕, 생욕, 음식욕, 명예욕, 수면욕)에 눈이 어두어 육근(眼ㆍ耳ㆍ鼻ㆍ舌根ㆍ身ㆍ意)으로 5경(바깥 경계. 빛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을 탐닉하며 죄를 범한다. 그러니 오욕에 눈이 어두운 충실한 인간 개를 조심해야 한다.
죽이는 것은 정화 하는 것이다
“바다 밑 조류가/ 속삭이며 그의 뼈를 추렸다. 솟구쳤다 가라앚을 때/그는 노년과 청년의 고비들을 닷 겪었다./ 소용돌이로 들어가면서."
황무지의 작은 노인은 이 바닷물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빙글빙글 돌면서 정화되어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노인이 청년으로 다시 태어난다. 주인공은 자기 눈이 4부 '익사'에서 바닷물에 씻긴 후에야 비로소 이 당의 개가 자기의 뼈에 붙은 정욕의 살을 속삭이며 뜯어먹는 하늘의 사냥개임을 깨닫는다.
▲더러운 땅에서 진주처럼 아름답게 피어난 금낭화
바다 속의 조개는 오랫동안 바닷물에 씻겨야 진주를 탄생시킨다. 죽이는 것은 정화하는 것이다. 주는 것은 자기를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천둥이 한 말은 불과 물로 심판을 하며 세례를 주는 것이다. 불세례로 죽이고 물세례로 다시 생명을 잉태시키는 것이다. 천둥소리는 자기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은 그리스도의 피가 담겼던 성배를 찾아 위험 성당에 도착한 순례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주는 것은 죽는 것이다. 내 감각과 감정과 생각과 뜻을 깊은 바다 물에 빠뜨려 죽이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즉 아심을 죽여야 무심의 경지, 니르바나에 이른다. 따라서 천둥소리는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비둘기 성령인 신의 소리이다.
그리스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예수가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겟세마네 동산의 결심을 실천에 옮긴 죽음의 행위이다.
▲임진강 주상절리 적벽에 피어난 돌단풍. 돌틈을 뚫고 부활하는 돌단풍은 위대하다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최고신의 세 제자들이며 자손들은 이 질문의 의미를 각각 <주어라-다따Datt>, <공감하라-다야드밤Dayadhvam>, <자제하라-담야떠Dayata>로 해석한다. 주고 죽는 세 가지 방식이다. 천둥에는 불과 물이 들어 있으므로 성령의 물세례와 불세례이기도 하다. 천둥소리는 인간의 기억을 되살리는 성령의 음성, 즉 신음(神音)이기도 하다.
과거의 한과 미래의 공포로 현재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인간세계
엘리엇은 "과거의 한과 미래의 공포"에 시달려 현재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인간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헤매었다. 엘리엇은 열네 살 때 오마르카얌(1048-1112, 페르시아 시인이자 천문학자)의 <루빠이얏>을 읽었다. 이 시를 읽고 소년은 시인이 되는 것을 꿈꾼다.
이 시는 술로 인생무상을 달래자는 찰나주의 철학을 담고 있다. 술은 "과거의 한과 미래의 공포를 씻어준다." 그리고 "달력에서 죽은 어제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일들을 지워버린다." 미래의 공포는 희망에서 나온다.
▲임진강변에 곱게 피어낸 현호색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희망에는 언제나 공포나 걱정이 따른다. 정신을 과거의 한에 반쯤 빼앗기고, 미래의 공포에 반쯤 빼앗기면 현재에 집중할 수 없다. 사는 것은 현재에 사는 것인데 현재에 집중할 수 없으면 삶도 없다. 그래서 인생은 무상하다.
그러나 술 또한 엘리엇에게는 사라진 현재를 찾아 줄 수 없었다. 현재는 미래에서 과거로 흘러가는 강물의 한 점이므로, 과거와 미래를 끊어버리면 현재도 사라질 것이다.
▲푸른 이끼 사이로 흘러내리는 약수
그래서 이 청년 구도자는 다시 대학원 석사 과정에 다니던 중 다른 스승 베르그송(1859-1941, 프랑스의 철학자)을 찾아 이역만리 파리 소르본느 대학으로 떠난다. 새 스승은 무의식적인 순수 기억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준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시인은 한때 그의 철학에 심취하여 "일시적으로 귀의한다."
▲임진강 억새밭
그러나 베르그송의 영향을 받아 지은 「바람 부는 밤의 광상곡(Rhapsody)」에서 달빛이 풀어놓은 베르그송의 무의식적 기억은 아름다운 현재가 아니라 여전히 비뚤어진 영상만이 출몰하는 살벌한 황무지 풍경이다. 영원한 기억의 바닷물에 정화되지 못한 과거의 더러운 무의식적 기억의 강물이 현재와 미래를 오염시킨 것이다.
세상이 변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세상을 보는 눈이 변해야...
그는 다시 세 번째 스승 브래들리(1846-1924. F. H. Bradley, 영국의 철학자)를 찾아 영국으로 건너가 그의 철학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까지 쓴다. 브래들리는 『현상과 실재』에서 "세상과 열반은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가르친 나가르쥬나(龍樹-용수)의 영향을 받아, 현상이 실재가 된다고 설파하고 있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비실재적인 모든 현상적 시간계열들은 실재인 절대자 속에서 '변화되어' 조화와 통일을 이룬다. 나가르쥬나는 대승불교의 사상적 기반을 확립한 제2의 불타(부처)다. 엘리엇은 대학원에서 대승불교를 공부했다.
▲땅속을 뚫고 나온 괭이눈이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소승불교에서는 이 세상이 변하여 열반이 된다고 생각했으나, 나가르쥬나는 이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을 보는 내 눈이 변해야 이 무상한 세상이 열반적정이 된다고 했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그러나 브래들리 선생은 '허망한' '현상'의 시간들이 실재인 절대자에서 '어떻게' 통일되는지 보여주지 못했다.
구도자는 마지막으로 다시 신앙과 예술을 찾아 1927년에 영국 국교로 개종하고 예술에 귀의한다. 『황무지』는 개종하기 전에 쓴 것이나 이미 믿음의 씨앗이 그의 마음속에서 싹트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강가에 피어난 애기똥풀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옛 사람이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신비적 근본 경험과, 개인적 감정들이 예술 감정으로 변하는 과정을 비슷한 것으로 생각했다. 절대자는 맑고 밝은 거룩한 생명수 소용돌이 속이며 빛의 핵심이다. 이 생명의 원천은 원의 중심과 같다. 이 영원한 생명의 바닷물과 빛의 핵심에 들어가는 것이 '집중(集中)'이다.
그러나 바다의 소용돌이 속에 몸을 던지려면 믿음, 즉 '믿음의 순종'이 있어야 한다. 순종은 귀를 기울이는 것이며, 귀를 기울이는 것은 정신을 "수동적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아직 피어나기전의 애기똥풀 꽃망울
그래서 기도하거나 명상할 때 눈을 감는다. 집중하면 욕망과 교만으로 흐려졌던 내 눈이 맑고 밝은 눈으로 변한다. 이것은 병든 조가비가 깊은 바닷물에 '정화(淨化)'되어 진주로 변하는 것과 같다. 주인공의 기억에 자꾸 떠오르는 "저것은 내 눈이었던 진주야!"라는 공기 요정의 노래는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예술 창작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내 감정들(emotions)이 느낌들(feelings)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수동적으로 집중·통일·정화되어 예술 감정으로 변화된다. 이것이 '탈개성'이다. 이 예술 감정을 형상화한 것이 '객관적 상관물'이다.
믿음과 예술로 귀의하여 해답을 발견
엘리엇은 처음 만난 오마르 캬얌의 술로도, 베르그송의 순수 기억으로도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찾아간 브래들리 선생에게서 이 현상 세계의 거짓되고 추악한 현상이 절대자 안에서 진선미로 변한다는 구원의 메지지를 듣는다. 그러면 이 슬픔 많은 세상이 천국으로 화할 것이다. 현상이 실재가 되며, 세간이 열반이 될 것이다. 현실과 이상이 일치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변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아 믿음과 예술로 귀의하여 그 해답을 발견한다. 그것은 자아의 욕망을 정화해야 옛 사람이 새 사람으로 태어나며, 개인적인 감정들이 예술 감정으로 변화한다는 진리였다.
▲꽃이 진 디 스스로 머리를 풀어헤친 할미꽃
내 마음이 변해야 세상이 천국이 된다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전환이었다. 이제까지는 세상이 변해야 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죄를 애통해하는 가난하고 겸허한 태도로 마음을 비워야 마음이 청결해져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천국을 소유하고 또 볼 수 있다. "천국은 네 마음속에 있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이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화엄경』의 가르침을 깨달은 것이다.
황무지의 마지막 희망은 내 마음의 질서를 찾는 것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기까지는 이 정화의 불에 뛰어 들어 계속 내 눈을 씻어야 한다. "난 적어도 내 땅에서만이라도 질서를 부여할 수 있을까?" 라는 이 시의 마지막 물음은 수사학적 질문이다. 왜냐하면 천둥소리로 나는 나 자신과 성배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적어도 나만이라도 영원한 현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화하여 욕망으로 혼란한 내 마음에 질서를 부여하여, 앓던 내 심안(心眼)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내 마음이 질서를 되찾으면 고통의 불 속에 천국의 장미가 필 것이다. 이것이 황무지인의 마지막 희망이다.
▲꽃은 피고 지면서 스스로 마음의 질서를 찾는다.
엘리엇은 스위스 르망 호변에 자리 잡은 요양소에서 휴양하면서 『황무지』 5부를 쓰는 가운데 친 형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자기의 문제를 술회했다. "내가 배우려고 하는 가장 큰 것은 어떻게 내 힘을 낭비 없이 사용할 수 있을까, 걱정해도 소용이 없을 때 어떻게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을까, 애쓰지 않고 어떻게 정신을 집중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 편지는 죽을 때까지 그가 품고 다녔던 화두이다.
▲피어날 때를 놓치지 않고 온 마음을 집중하여 파어나는 제비꽃
그래도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인가? 4.19혁명, 4.16의 세월호 사건, 4.8의 성완종 리스트, 지중해에 표류하다 죽어가는 아프리카인들… 어쩐지 사월은 으스스하고 잔인하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위험하게만 느껴진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엘리엇의 <황무지>와 구약 <에스겔서>을 읽으면 뜬 눈으로 밤을 샜다. 황무지는 1차 세계전쟁이 끝난 직후인 1922년도에 발표한 시다. 이 전쟁으로 인류는 900만명이 죽어갔고, 2,200만명의 부상자가 고통을 받았다.
▲6.25한국전쟁 당시 피로 물들었던 임진강
이곳 임진강도 한국전쟁의 격전지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는 6.25전쟁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100만 명(사망 24만, 학살 13만, 부상 23만, 납치 행불 40만명)이나 발생했고, 국군 14만 여명이 숨지고, 유엔군이 6만 여명이나 전사를 했다.
남북으로 분단된 세계유일의 휴전국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날마다 포성 소리가 들리는 이곳 휴전선 인근은 살벌하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 정신을 집중하여 국력을 키우고 정의가 바다를 이루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집단이기주의,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부가 양극화 되는 사회가 되지않아야 한다.
▲임진강 주상절리에 진달래가 6.25전쟁 당시 흘린 전사자가 부활하듯 피어나고 있다.
밤새 내리는 봄비는 대지의 생명들에게 성령을 불어 넣어 생기를 되찾게 하고 있다. 죽은 뼈들과 웅크린 구근들이 봄비를 맞고 부활을 하고 있다. 말랐던 뼈들이 움직이며 새 뿌리를 뻗히고 새살을 붙이며 살아나고 있다.
홈통에 돌돌돌 구르는 빗방울이 비둘기의 신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성령의 신음(神音)처럼 들리기도 한다. 꿀벌은 슬퍼할 겨울이 없으며,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한다. 잔인한 4월에 죄없이 죽어간 자들이 모두 부활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참고자료: 황무지 [The Waste Land] - 황무지에 장미꽃이 피기까지는 (황무지에 대한 해설은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이명섭의 황무지에 대한 해설을 대부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