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눈만 뜨면 속 터지는 뉴스만 들려오네요.
가슴이 답답하여
콧바람도 쌜 겸 가족들과 함께
용문사 은행나무를 찾아갔습니다.
미사리를 지나니 한강이 시원스럽게 뻗어있고
양수리에 도착하니 남한강과 북한강이 서로 다정하게
입맞춤을 하며 반겨주네요.
역시 자연은 언제나 변함없이 길손을 반겨줍니다.
남한강 줄기를 따라 시원스럽게 달리다보니
어느 듯 용문산 품에 안겨 듭니다.
원래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제 맛인데
아내가 감기에 걸려 찬바람 쏘이며 걷다간 큰 일 날 것 같습니다.
하여 용문사 문지기 님 한 테 90도 고개를 수그리고 정중히 인사를 하고
“저어, 아내가 심장 장애인인데요. 잠시 절에 가서 기도를 하고 싶어 합니다만…”
“아, 그래요. 들어가세요.”
흔쾌히 윤허를 해주신 문지기님께 다시 90도로 큰 절을 하고
승용차를 살살 몰고 계곡 길을 기어갔습니다.
마침 추운 겨울인지라 인적도 드물어서 좀 덜 미안하군요.
거기, 입구에 여의주를 머금은 용머리가 달린 기둥 두 개 위에
맞배지붕 이은 일주문이 허허로이 길손을 보듬어 줍니다.
할! 세상 사람들이 일주문처럼 훤히 열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오죽 좋을까?
대문 없는 일주문을 지나니
용문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이
용틀임을 하듯 굽이치며 졸졸졸 흐르고 있습니다.
흐음~ 필시 거대한 용이 승천을 하렷다!
계곡 끝자락에 가대한 은행나무 한그루가 서 있습니다.
그 뒤로 천년 고찰 용문사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세운 절입니다.
이 은행나무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에 가다가 심었다는 은행나무라고 합니다.
천년 신라가 935년에 쿨~하게 망하자
신라의 마지막 자존심 마의태자는 무리를 이끌고
신라의 재건을 꿈꾸며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연대는 나무의 나이와 비슷합니다.
혹자는 7세기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났다고 하는데
이는 나무의 나이나 과학적인 근거로 보아도 전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이 추운 겨울, 옷을 훌훌 벗어 버리고
벌거벗은 채 천년 세월 동안
하늘을 찌르며 떡 버티고 있는 은행나무가
하늘 땅, 우주의 기를 받고 꿋꿋하게 서 있습니다.
비바람, 눈비를 견뎌내고
천둥번개도 이겨내고
거기 한자리에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나이 1,100살
높이 42미터,
뿌리부분 둘레 15.2m,
가슴높이 줄기 둘레 14m,
나무줄기는 동서로 28m, 남북으로 28m
참으로 거대하게 뻗혀 있는 거목입니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세종대왕으로부터 오늘날 차관급에 해당하는
당산직첩(정3품) 이란 벼슬을 하사 받기도 한 귀한 천연기념물입니다.
은행나무 밑동에는 마치 종유석처럼 생긴 거대한 혹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유주(乳柱)라고 부르는 이 혹은
오랫동안 가지세포에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생긴 기근(氣根)의 일종입니다.
여인의 유방처럼 밑으로 늘어져 달려있는 이 은행나무 혹에
아이를 낳아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출산부가
치성을 들리면 젖을 잘 나오게 해준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또한 용문사 은행나무는 매우 신령한 기운이 감돌고 있어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옛날 이 나무를 베고자 톱을 대니
그 자리에 피가 나오고 하늘이 흐려지면서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가 쳐 중단했다고 합니다.
▲2005.11.05촬영
왜놈이 방화로 절문을 지키던 사천왕전이 불타 없어졌지만
불타지 않았던 은행나무가 천왕목으로 지정되어 절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또 왜정 때 왜군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용을 쓰다가
벼락을 맞아 줄행랑을 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걸 증명하듯 그 당시의 도끼 자국이 아직까지 아련히 남아 있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2005.11.05
나라가 강해야 그런 치욕을 당하지 않지요.
요즈음 아베가 우리나라를 깔보며
위안부 소녀상 철거하라고 윽박지르는 걸 보면 참으로 가관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돌아가는 나라꼴을 바라보노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자괴감이 듭니다.
또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 이변이 생길 때마다 큰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고종이 승하했을 때는 커다란 가지가 하나 부러졌고,
8.15 해방과 6.25전쟁, 4.19혁명, 5.16쿠데타 때에도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중생들은 아둔해서
은행나무가 소리를 내도 듣지 못하는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ㅎㅎ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전설은 언제나 그럴 듯하게 우리 가슴을 흥미롭게 파고듭니다.
은행나무 옆에는 높은 철탑이 하나 서 있습니다.
웬 철탑일까 하고 궁금했는데
이는 벼락으로부터 은행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이랍니다.
일종의 피뢰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2008.11.05
지구상에 오직 살아 있는 화석인 은행나무는
병충해가 없고 가을 샛노란 단풍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하면 용문사 은행나무를 찾아 가곤 했습니다.
그때 마다 은행나무는 변함없이
묵언정진하며 나를 진솔하게 받아 주었습니다.
은행나무에 합장을 하면 마음이 저절로 경건해 집니다.
이런 말 저런 말 궁시렁 궁시렁 속삭여도
은행나무는 침묵하며 두 팔 벌리고 받아줍니다.
그리고 언제나 은행나무는 내 마음 속 저 바닥까지 꿰뚫어 봅니다.
은행나무 앞에 서면 답답하던 마음이 시원하게 뻥~ 뚫려 집니다.
이 세상의 진실은 오직 하나
그것은 사람의 양심입니다.
양심이 곧 진실입니다.
저 은행나무는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다 속여도 양심은 속이지 못합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은행나무가 알고 있는 그 양심을
사람들은 끝까지 속일 수는 없습니다.
가슴이 답답하면
천년을 넘게 살아온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를 찾아가세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사
1,100년이나 된 은행나무는
늘 소리를 낸다. 조선 말기 고종 황제가 승하했을 때
큰 가지를 부러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8.15 해방이 찾아왔을 때
6.25 난리가 벌어졌을 때
4.19 혁명이 일어났을 때
5.16 쿠데타가 터졌을 때 용문사 은행나무는
어김없이 큰 소리를 내었다.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
소리를 지르는 용문사 은행나무 제 한 몸, 제 가족밖에 모르는
인간보다 낫다.
소시민보다 낫다. 나라 걱정 없고
지역감정만 가득 찬
한국 사람보다 백 배 천 배 낫다.”
-박지극, 용문사 은행나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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