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고 헤매였던 길
▲알펜루트는 ‘일본의 지붕’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해발 3000m가 넘는 웅대한 산맥이 이어진 곳이다. 알펜루트의 자랑거리는 단연 높이 20m를 넘나드는 웅대한 설벽이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이 장엄한 설벽은 4월 15일부터 6월 중순까지 딱 두 달 정도만 열린다.
우리가 굳이 기차를 타고 가겠다고 해도 조카는 자신의 차로 운전을 하여 다테야마까지 가겠다고 우겼다. 그래서 아내와 나, 그리고 조카 부부 이렇게 네 사람이 알펜루트 설벽으로 떠나는 여행길에 나섰다.
원래 나는 알펜루트를 기차로 가려고 계획을 세웠었다. JR패스를 이용하여 오사카에서 출발, 교토를 거쳐 다테야마-알펜루트-오오시사화-마츠모토-나고야로 돌아오는 6일짜리 여행(https://www.alpen-route.com/kr/ 참조))과 나고야에서 출발하여 다카야마-도야마-알펜루트-마쓰모토-나고야로 돌아오는 5일짜리 기차여행을 할 계획을 세웠다.
▲나고야에서 출발하여 다카야마-도야마-알펜루트-마쓰모토-나고야로 돌아오는 5일간 JR패스 기차여행
‘알페-다카야마-마쓰모토 지역 관광 티켓’(http://touristpass.jp/ko/ 참조)은 연속 5일 동안 기차에서 타고 내리며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이 코스 가격은 17,500엔으로 외국인 관광객에 한해 일본 국외에서 구입을 할 수 있는 패스다.
한국에서 이 패스를 구입하려고 조카에게 전화를 했더니 “고모부님, 복잡하게 생각하시지 말고 제가 다 알아서 안내 할 테니 그냥 비행기만 타고 오세요.” 라고 하질 않는가? 하기야 일본에서 30년을 살았으니 어련하랴 하고 우리는 그냥 조카의 말대로 비행기를 타고 몸만 갔다.
그런데 웬걸, 정작 조카는 알펜루트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동안 바빠서 여행을 자기 못한 원인도 있지만, 또한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는 성격 탓이리라. 그래서 오히려 내가 거꾸로 가이드가 되어 조카에게 알펜루트를 가는 방법과 코스를 알려주게 되었다.
알펜루트는 ‘일본의 지붕’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해발 3000m가 넘는 웅대한 산맥이 이어진 곳이다. 알펜루트의 자랑거리는 단연 높이 20m를 넘나드는 웅대한 설벽이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이 장엄한 설벽은 4월 15일부터 6월 중순까지 딱 두 달 정도만 열린다.
아내와 내가 굳이 알펜루트로 가는 것은 섬망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아내의 답답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사람은 놀라운 자연 풍경과 마주하면 상상을 할 수 없는 엔도르핀이 솟아난다. 의학계에서는 이를 다니놀핀(dynorphin)이라 부른다. 다이놀핀은 흔히 엔도르핀의 7백배 치유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다이놀핀이란 호르몬이 한번 몸 안에서 제대로 분비가 되면 모든 병의 원소가 소멸되고 병든 세포가 새롭게 회복되고 치유된다고 한다. 엔도르핀은 모르핀의 200배 진통치유효과가 있고, 다이놀핀은 엔도르핀의 700배 진통 치유효과가 있다면, 결국 다니놀핀은 모르핀의 14만 배 진통치유효과가 있는 셈이다.
다이놀핀은 놀라운 풍경, 큰 기쁨으로 큰 감동을 느낄 때 분비된다고 한다. 나는 이 다이놀핀 효과를 믿는다. 불치의 난치병에 걸린 아내는 수차례사경을 헤매면서도 여행을 통해서 놀라운 풍경을 볼 때마다 큰 감동을 받아서인지 지금까지 내 머리맡을 지키고 있다. 이번 여행도 하늘이 내린 놀라운 설경을 통해서 아내의 불면증과 섬망증이 치유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구글 지도에서 길 찾기를 해보니 오사카에서 알펜루트의 시발점인 다테야마까지는 까지는 395km로 서울에서 목포까지 가는 거리와 비슷하다. 기차를 타면 4시간 48분이 소요된다고 했는데, 승용차로 가도 시간이 비슷하게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조카가 길을 잘 못 들어 헤매다 보니 거의 6시간이 넘게 걸렸다. 조카가 몰고 다니는 승용차는 15년 된 벤츠500인데도 성능이 좋았다. 허지만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오사카 시외를 벗어나 운전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더욱이 내비게이션의 방향이 거꾸로 표시되어 길을 찾는데 매우 헷갈렸다.
“고모부, 조카는 저런 내비게이션으로 10년 넘게 운전을 하고 있답니다.”
“하하, 그래도 나는 다 알아본답니다.”
“저런, 조카만 알아보면 어떡하나? 운전을 하는 모두가 알아야지.”
“그래, 빨리 고쳐야겠네.”
조카는 눈감고 아는 길만 다니다 보니 내비게이션이 별로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처럼 시외로 빠져 나와 안 가던 길을 가니 조카도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일본 서쪽 동해바다와 인접해 있는 고속도로를 달려 가나자와에서 다테야마로 가는 길로 빠져 나갔다. 가나자와에 도착하자 해발 3000m의 준봉들이 눈에 덮여 줄줄이 나타났다.
그런데 다테야마로 가는 길은 아주 좁은 시골 신작로 변했다. 더구나 거꾸로 표시되는 내비게이션 때문에 좁은 골목길을 몇 번이나 왔다리갔다리하며 헤맸다.
“내가 못살아요, 고모부님 조카는 내비를 고치지 않고 늘 저런 식으로 헤맨답니다.”
“허허, 그러네. 이번 여행을 다녀오면 꼭 내비게이션을 고치게나.”
“하하, 고무부님, 알겠습니다. 허지만 염려 마십시오. 아무 문제없어요.”
질부는 걱정이 태산 같은데 막상 운전을 하는 조카는 무사태평이다. 조카는 현실에 안주하는 아주 낙천적인 성격이다. 그런데 질부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는 탐구적인 성격이다. 그래도 성격이 반대인 부부도 이렇게 서로 보완을 하며 살아가는 모양이다.
조카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서 여러 차례 휴식을 취했다. 자동차로 장거리 여행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피곤해 하는 조카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휴게소에서 쉴 때마다 기차로 자유롭게 여행을 할 걸 하는 후회가 자꾸만 생각되었다. 조카는 바닷가와 인접한 이시카와(石川縣) 휴게소에는 아예 잠을 좀 자야겠다며 의자를 뒤로 젖히고 길게 눕고 말았다.
다행히 이시카와 휴게소에는 해변으로 뻗어난 산책로가 있었다. 조카가 잠을 자는 동안 아내와 나는 해변을 산책을 했다. 우리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아들고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일본의 자판기 커피는 거의 원두커피 수준이다.
한잔에 200엔(2,000원) 정도하는 자판기 커피는 코인을 넣으면 약 1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원두커피를 분쇄해서 뜨거운 물에 섞어 내려오는 시간이 이 정도 걸리는데 우리나라 자판기 커피와는 차원이 다르다.
동해에 부는 생명의 봄바람이
커피 향을 더욱 짙게 흩뿌리며 커피 맛을 돋우네
솔향기 그늘아래 앉아 커피를 마시는 여유로움이여!
해변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 썩 좋았다. 현해탄에서 불어오는 생명의 봄바람이 커피 향을 휘날리며 더욱 커피 맛을 돋우어 주었다. 우리가 ‘동해’라고 부르는 이 바다를 일본인들은 ‘일본해’라고 부른다. 독도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그들이 아닌가? 참으로 괘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기회만 있으면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 그들은 아직도 임진왜란 같은 침략 근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공원에는 소화 42년에 일본 황태자가 행차를 했다는 기념비까지 세워놓았다. 천황폐하와 황태자를 숭배하는 일본인들의 근성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집단주의 근성일까? 죽창 지팡이를 든 소녀상도 특이하다.
20여분 정도를 산책을 하고 자동차로 갔더니 조카는 그때까지 잠을 자고 있었다. 우리를 본 질부가 조카를 흔들어 깨워서야 조카는 눈을 부스스 뜨고 일어났다.
“좀 더 잘걸 그랬지?”
“아니요, 고모부와 고모님을 만나 너무 기분이 좋아서 어제 술을 좀 많이 마셨나 봅니다.”
“어디 어제 분인가요? 늘 그렇답니다.”
“허허, 술은 기분 좋으라고 마시는 거 아닌가? 건강을 생각해서 너무 많이 마시지 말게나.”
“저 술 별루 많이 마시지 않아요. 마셔도 아주 도수가 약한 츄하이만 조금 마셔요.”
“하하, 그래? 그런데 어제 밤에 마신 그 달크작작한 술은 많이 마시게 되던데? 어제 나도 두 캔이나 마셨더니 오래도록 취하더군.”
결국,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오후 3시경에 다테야마에 도착을 했다. 오사카에서 8시 반에 출발하여 6시간 30분이나 걸린 셈이다. 일단 안내센터로 가서 알펜루트로 가는 티켓과 호텔을 문의를 했다.
▲다테야마 역
“지금 올라갈 수는 있는데요, 알펜루트지역에 호텔이 만원인데다 너무 늦어 돌아올 수 없어요.”
“그럼 내일 표를 미리 살 수는 없나요?”
“네, 내일 표는 당일 아침 5시 30분부터 판매를 합니다. 저기 보이는 티켓박스에 줄을 서서 차례로 표를 사야만 합니다. 아침에 일찍 서둘러야만 표를 살 수 있고 또 당일치기 왕복이 가능하지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구로베까지 왕복 티켓 값은 얼마지요?”
“1인당 10,790엔입니다.”
더구나 4월 15일부터 30일까지는 시즌이라 알펜루트는 여행객으로 초만원을 이룬다고 했다. 알펜루트 무로도(해발 2500m)에 있는 호텔은 1인당 2만 엔(20만원) 정도 하는 그 비싼 호텔인데도 방이 없다고 했다. 또 여행자들은 대부분 당일치기로 코스를 도는데 아마 내일 아침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 근처에 있는 거의 만원이라 방을 구하기가 어려우니 빨리 호텔을 구한 다음 내일 아침 일찍 오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우리는 일단 다테야마 역 인근에 묵기로 하고 먼저 호텔을 찾아 나섰다. 과연 안내원의 말처럼 인근 호텔과 모텔, 여관은 만원사례였다. 우리는 역 앞에 있는 ‘천수장’이라는 민박집 2층에 작은 다다미 방 두개를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이 방도 조금만 늦었으면 놓칠 뻔했다. 민박집 주인은 딱 두 개 남아있는 방이라고 말했다. 공용화장실과 공용 샤워를 사용하는 작은 민박집이었다. 그런데도 1인당 6천 엔(약 6만원)을 받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천수장에 여장을 풀고 우리는 다테야마 역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잠시 산책을 했다. 다테야마 역은 도마야에서 협궤열차가 운행하는 막다른 역이다. 도마야에서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열차에서는 여행자들이 계속애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스위스 알프스를 연상케 하는 이곳은 맑은 물이 철철 흘러내리고 이제야 벚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대가 높은 지원역이라 이제야 벗꽃이 한창이다. 원숭이들이 버들강아지 가지에 매달리며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우리는 역 근처 식당에서 가락국수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곧 날이 어두워졌다. 역사 근처 나무에는 반짝거리는 조명등이 별처럼 수없이 켜져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케 했다.
하루 종일 운전을 한 조카는 피곤하다며 나가 떨어졌다. 아내와 나, 그리고 질부는 공용욕실에서 목욕을 하기로 했다. 남탕과 여탕으로 나누어진 욕실은 사람이 겨우 한두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욕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물은 매끄러웠고 좋았다. 하기야 일본은 땅만 파면 모두가 온천물이 솟아나온다고 했다.
뜨거운 물에 목욕일 하고 나니 곧 졸음이 왔다. 내일은 새벽같이 일어나야 한다. 알람시계를 새벽 4시 반에 맞추어 놓고, 유카타 일본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다다미방에 길게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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