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프라하1] 프라하로 가는 기차

찰라777 2006. 1. 5. 11:04

□ 프라하로 가는 기차

 

늦가을 프라하로 가는 드레스덴 역.
기차역에 들어서면  막연하지만  어디론가 훌쩍 떠나간다는 설래 임과 흥분이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하고 즐겁게 한다.

10월 23일, 오후 5시 55분. 동유럽의 낮은 짧다. 벌써 어두워지며 전등이 켜지는 드레스덴 역에서 프라하로 가는 기차를 탄다.

원래 5일짜리 동유럽 플랙시 패스를 구입하였지만 짧은 구간에서 패스를 사용하기는 아깝다. 그래서 우린 베를린에서 드레스덴을 거쳐 프라하로 가는 유로시티(Eurocity)․인터시티(Intercity) 겸용 티켓을 구입했다. 유효기간은 2개월, 부부가 함께 타는 커플 티켓으로 요금은 78.4유로(좌석예약비 5.2유로 포함)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기차를 타면 어쩐지 로맨틱한 기류가 흐른다. 더욱이 오늘은 프라하로 가는 기차가 아닌가. 사비나의 기차여행 장면이 창가에 스치고 지나간다.


프라하!
프라하 하면 제일먼저 ‘프라하의 봄’을 떠오르게  하는 도시다. 그리고 뒤를 이어 곧 연상되는 것은 외과의사 토마스와 사비나, 테레사로 이어지는 묘한 삼각관계, 사랑과 우정을 그린 ‘밀란 쿤데라’의 소설과 이를 영화화 한 ‘프라하의 봄’이  떠오른다.


내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이란 소설을 읽은 지는 무척 오래전의 일이다. 쿤데라 특유의 들쭉날쭉 하는 생각의 편린들이 횡설수설하는 식으로 난해하게 이어져 가는 소설의 줄거리 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피카소의 추상화처럼 기억 속에 잡힐 듯 말 듯 아롱거릴 뿐 기억 속에 잡히는 것은 별로 없다.

 

가물가물하게 사라져 가버린 소설의 줄거리 대신, ‘프라하의 봄’이란 영화에서 본 주인공들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깡마르고 호리호리 하지만 여자를 홀리기에는 충분한 섹시남처럼 생긴 외과의사 토마스(Daniel Day-Lewis), 금방 익은  딸기처럼 싱싱하게 다가오는 테레사(Juliette Binoche)의 순진한 표정.

그리고 모든 남성들을 포근하게 감싸 줄 수 있는 듯하면서도 배반의 장미 같은 사비나(Lena Olin)의 푸근한 인상이 그것이다.


사비나. 나는 '배반의 장미'처럼 강열하면서도  프리마돈나처럼 따스하게 다가오는 사비나가 좋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부인할 수 없는 생각이다. 그녀는 언제나 홀로 자유를 추구하는 자유여성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뜻을 배반하고, 공산주의를 배반하며 형편없는 건달 배우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남편도 버리고 토마스, 프란츠와 같은 유부남과 불륜의 사랑을 맺어 그들로 하여금 자기 부인을 배반하게 하고, 그들의 부인들이 남편들을 배반하게 만든다. 사비나에게 배반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는  해방적 기능이다.

 

▲ "여기 더 있고 싶지 않아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요

영화 '프라하의 봄' 카를교 밑에 선 토마스와 테레사

 

작가 밀란 쿤데라는 말한다. 오늘날 인간은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소위 사랑한다고 함은 자신을 속이거나 , 아니면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는 것.

 

 이러한 이율 배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배반이거나 아니면 실제에 대한 배반이라고 작가는 본다. 그래서 인간은 오히려 배반에 충실해야 한다는 배반 옹호론을 편다.

 

횡설수설 하는 내용 속에서도 나는 쿤데라의 솔직 담백함을 사랑한다. 그 이유는 토마스를 죽도록 사랑하면서도 테레사에게 따뜻한 우정을 보내는 사비나의 무한한 인간애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늘밤 프라하로 가는 열차에서 나는 반쯤은 테레사를 닮고, 반쯤은 사비나를 닮은 여인을 바로 앞자리에 바라보고 가게 되었으니….

 

세상의 남자들이여!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노라면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파도치듯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남자의 마음을  그 누가 억제 할 수 있단 말이요.

 

오오, 나의 테레사!  나는 지금 사비나의 유혹의 모자를 뿌리 치지 못하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으로 녹아 빠져 들어가고 있다오. 그러나 나를 제발 욕하지 말하다오. 오늘 밤 나는 다만 나 자신을 속이며 배반하는 이율배반의 남자가 되고 t싶지 않을 따름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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