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154]토하고 또 토하다 - 쿠스코로 가늘 길

찰라777 2006. 11. 29. 10:23

쿠스코로 가는 길

토하고 또 토하다

 

 

▲리마에서 쿠스코로 가는 버스 길.

20시간이 넘게 걸린다

 

 

오후 2시 15분. 크루즈 델 수르Cruz del Sur 버스 터미널.

우리나라 우등고속버스 같은 대형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는 빈자리가 없이 꽉 있다. 화장실이 달려 있고 2층으로 되어 있다.

다시 오고 싶지 않은 리마여, 아디오!

 

리마를 출발한 버스는 판 아메리칸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간다. 사막과 해변의 경치가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적어도 이카 Ica와, 나스카 Nazca까지는 그랬다. 나스카는 수수께끼의 ‘지상그림’으로 유명 한 곳이다.

 

팜파 인헤니오 사막위에 수 킬로미터나 곧게 뻗어 있는 괴상한 그림들. 원, 직선은 별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동물은 별자리를 뜻한다는데… 그러나 아직까지 수수께끼는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고. 이스터 섬의 모아이상과 함께 수수께끼에 싸여있는 남미의 불가사의다.

 

“나스카의 그림을 제대로 보려면 벵기를 타야 하는데…”
“당신은 고고학자가 아니에요. 글고 저 그림은 사막위에 그림일 뿐.”
“하긴….”

 

나스카 지상그림을 보는 데 오전에 경비행기를 타고 보는 것이 최상이라고 안내서에 적혀있다. 요금은 50달러에서 100달러로 천자 만별. 그것도 날씨가 좋아야지. 바람이 불고 11시가 넘으면 흐려져 버려 헛고생만 한다는 것. 하여간 넘어가자.

 

▲수수깨끼의 나스카 지상그림- 새의 모습

 

 

버스는 나스카를 출발하여 드디어 안데스 산맥을 향해 올라간다. 날도 어두워지고 길은 점점 험해진다. 대관령 같은 길을 몇 개나 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버스 차장은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처음엔 빙고 게임 등을 하다가 모두 지쳐 나자빠지자 그녀도 지친모양이다.

 

나스카를 지나면서부터 버스 차장이 비닐봉지를 추가로 배급한다. 뭔가 심상치 않다. 버스는 마치 성난 파도처럼 흔들거린다. 이거 이러다 사람 잡겠는데…

 

“여보, 너무 어지러워요.”
“나도 그래.”

 

어지간하면 멀미를 하지 않던 아내가 드디어 토하기 시작한다. 아내뿐 아니다. 전후좌우에서 비닐봉지에 토하느라 정신들이 없다. 나도 곧 토할 것 같은 데, 가까스로 참는다. 아내는 토하고 또 토한다. 냄새와 아비규환이 버스 내에 출렁거린다. 순식간에 버스는 시궁창 냄새로 진동한다. 마치 토하는 것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난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은 인간의 속 내장이 아닐까?

냄새 또한 가장 지독하다.

그런데 또 가장 깨끗한 채 하는 것이 인간이다.

 

버스는 멈추지 않고 덜컹거리며 제 갈 길을 달려간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버스가 어느 마을에서 선다. 물어보니 아반카이Avancay란다. 아반카이에 선 버스는 움직일 줄 몇 시간 동안 모른다. 이 밤에 자동차 바퀴가 펑크가 났다는 것. 이를 수리하느라 버스는 몇 시간이나 늑장을 부린다. 덕분에 멀미를 피할 수는 있었지만.

 

  

▲안데스 산맥에 끼어 있는 아침 운해 

 

 

버스는 거의 새벽 동이 틀 무렵에 출발한다. 지옥 같은 밤이 지나고 안데스 산맥에 먼동이 터 온다. 구름위에 5000미터에서 6000미터에 이르는 산봉우리가 둥둥 떠 있다. 저게 산인가 마천루 인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에 도달한 기분이다. 그저 정신이 아찔하고 세상이 아득하기만 하다. 우리는 저 세상과 아득히 먼 그 어떤 곳에 와 있는 거야.

 

“좀 어떻소?”
“날이 밝으니 좀 나은 것 같아요.”
“하긴, 더 이상 토 할 것도 없질 않소? 속이 텅 빈 세계의 느낌은?”
“그만, 말할 기운도 없어요. 그저 모든 것이 아득하기만 해요.”
“그렇겠지….”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더 이상 토할 것도 없는 듯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멍하니 밖을 바라본다. 하기야 밤새 토했으니 남아있는 것도 없으리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피사로가 그랬듯 우리가 그랬다.

 

피사로는 황금을 찾아 이 길을 갔지만, 우리는 죽기 전에, 아니 죽어도 좋다고 떠 난 세계 일주의 길이다. 목적은 서로 다르지만 뜻하는 바는 피장파장이다. 어떤 목적이든 욕심이 지나치면 죽는 수가 있어. 그에 대한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되어 있단 말이야.

 

▲쿠스코 호스텔 비바 라틴. 죽을 고생을 하고 태극기를 보니 반가워!

 

버스는 마치 패러글라이딩을 탄 것처럼 안데스 산맥을 굽이굽이 돌아 내려 아침 9시 드디어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 도착한다.  머리는 여전히 띵~ 하고 뒷골이 당긴다. 그렇게 곡예를 하고 내려왔지만 여전히 고도는 해발 3399미터다. Hostel Viva Latine에 도착하니 태극기가 보인다.

 

아, 그래도 태극기를 보니 반갑다.

그러나 우리는 도착하자 마자 고산증세 때문에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뒷골이 땡기고 어지럽다.

으윽~ 울려고 내가 왔나?

 

 

▲리마에서 쿠스코로 가는 Cruz del sur 버스 티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