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151]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찰라777 2006. 11. 17. 00:14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

대낮에 배낭을 도둑 맞다

 

 

 ▲ 대통령궁.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방문하여 사열식을 하고 있다. 

 

 

세계의 끝, 페루의 외딴 바닷가로 새들이 날아와 죽는다. 때가 되면 새들은 죽기 위해 먼 길을 날아와 모래 위로 떨어진다. 세계의, 삶의, 절망의 끝…… 새들은 왜 먼 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못했다.

 

새들에게는 이곳이 믿는 이들이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 새들은 진짜 비상을 위해 이곳으로 와서 자신들의 몸뚱이를 던져버리는 것일까. 피가 식기 시작해 이곳까지 날아올 힘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차갑고 헐벗은 바위뿐인 조분석 섬을 떠나 부드럽고 따뜻한 모래가 있는 이곳을 향해 곧장 날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의 단편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홀로 그것을 바라보는 외로운 사내의 시선으로… 리마의 아르마스 광장에 서 있는 내 심정이 바로 그랬다.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까지 이미 다녀온 우리가 왜 이렇게 먼 남미의 외로운 땅 끝까지 와서 참담하게 새처럼 힘없이 주저 않는가. 죽기위해 페루로 날아오는 새들처럼 먼 길을 날아와 리마 해변의 모래사장에 힘없이 주저앉아야만 한단 말인가. 우리는 정말 피가 식기전에 힘없이 날아온 새들이었다.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미라가 있는 대성당. 이 때까지만 해도 생생했는데..

 

 

그것도 대낮에, 아르마스 광장의 한 가운데 있는 레스토랑에서 아내의 약이 든 작은 배낭을 통째로 도둑을 맞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미라가 있는 대성당을 돌아보고, 대통령 궁 앞에서 코스타리카 대통령 환영 사열식을 구경하는 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 한 쌍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너무나 반가워! 이런데서 한국인은 만나다니… 우리는 서로가 한국말에 배가 고픈 여행자들이었다. 특히 영어에 서투른 아내가 더욱 그랬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찍혀주고… 통성명을 하고 보니 그는 신혼여행으로 일 년 동안이나 세계일주 여행을 다니고 있는 간 큰 부부였다. 젊은 영혼을 가진 이영기 씨 부부가 경이롭게만 보였다. 그들의 용기와 실천력! 한 참 일할 나이, 미래를 걱정할 시기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무려 일 년 동안이나 전 세계를 여행을 하다니… 우리보다 30살이나 적어보이는데 그들은 우리보다  30년을 앞서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대통령 궁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리마의 경찰. 남미에서는 경찰도 믿을 수 없어...

 

 

마침 점심때가 되어 우리는 그가 가 본적이 있다는 싸고 맛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페루 전통 음식점이었다. 우리는 레스토랑 한 가운데로 들어가 이영기 씨 부부와 마주 보며 자리를 잡았다. 어제 밤 민박집 주인의 말이 생각나서 나는 내 배낭끈을 다리로 감아서 양 다리 앞에 끼고 앉았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배낭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는데, 아내는 인슐린도 맞아야 하고 물도 마셔야 하므로 자기 자리와 붙어 있는 바로 옆 의자위에 배낭을 올려놓겠다고 했다. 

 

음식은 정말 값도 싸고 맛이 있었다. 네 사람은 싸고 맛있는 음식과 고픈 한국말로 여행담을 주고받으며 주린 배와 객지에서 스며드는 어쩔 수 없는 외로운 마음들을 서로 달랬다. 구은 감자에다 페루의 특이한 소스를 넣어서 만든 음식이 맛있다고 아내는 일인분씩 더 시키자고 했다. 해서, 내가 음식을 시키는 찰나에 아내가 갑자기 “어머나, 내 배낭!”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배낭에서 물을 꺼내 마시려고 하는데 금방까지 있었던 배낭이 없어지고 말았다는 것.

 

아무리 눈을 비비고 주위를 찾아보아도 배낭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레스토랑 주인의 말로는 우리 바로 뒤에 앉아있던 손님이 우리가 음식을 먹느라 잠시 정신을 판 사이에 뒤에서 배낭을 밑으로 끌어내려 훔쳐갔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배낭을 찾을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 한번 도난을 당한 배낭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 레스토랑 주인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듯 태연했다. 이거야 정말... 우린 정말 큰 일인데....

 

아내의 배낭 속에는 돈 보다도 더 중요한 아내의 약들이 몽땅 들어 있었다. 3개월분의 인슐린, 백 개의 주사바늘, 고혈압, 갑상선 약 등. 약은 아내의 생명과도 같았다. 신용카드나 현금카드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히 여권과 항공권은 복대에 메고 있었으므로 도난을 막을 수가 있었던 것이 천만 다행이었지만.... 

 

 

     ▲대통령궁 앞에서 사열식을 관람하고 있는 관광객들. 한국인 이영기 씨 부부를 만난자리

 

 

리마에서 약을 구하지 못하면 우리는 꼼짝없이 귀국을 해야 할 판이었다. 더욱이 매일 네 번씩이나 맞는 인슐린이 시급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로맹가리의 소설처럼 영락없이 페루로 날아와 힘없이 날개가 부러져 힘없이 주저앉을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세계의 끝에서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나는 거의 넋을 잃고 절망에 빠진 아내를 측은하고 외운 시선으로 어이없이 한동안 바라보아야 했다.

 

그러나 일단 침착하자. 마음을 진정하고 쿨 해져야 해. 우리보다 이영기씨 부부가 더 안절부절 하며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가 가자고 해서 찾아 온 레스토랑에서 도난을 맞았으니 말이다. 우리는 일단 페루의 관광 경찰을 찾아가기로 했다. 이영기씨 부부가 동행을 했다. 이제부터는 관광이 아니라 도난당한 배낭을 찾거나, 약을 구하거나, 그도 아니면 귀국을 해야 한다. 운명은 하늘이 주고, 선택은 우리가 해야할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다니......

 

“지옥과 저주라네… 이 일이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군. 그녀와 함께 세계일주를 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세. 세상엔 정말이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어쨌든 이곳은 세상의 끝이니…… 불행은 순식간에 닥치는 법이니까……”

 

다시 로맹가리의 소설이 생각났다. 세계일주를 하던 중 로저의 부인이 사육제 날에 리마의 거리에서 세 명의 불한당들에게 납치되어 새들이 죽어간 모래사장에서 차례로 강간을 당하고 자살을 시도하려다가 그녀는 가까스로 카페의 주인 남자에게 구조 된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갈등에  빠진 여자는 자신을 구해준 카페의 남자의 품에 잠시 안기고 있는 사이  그녀의 남편이 카페로 찾아와 참담한 심정으로 말한다. “이 새들이 모두 이렇게 죽어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요.” 소설은 이렇게 로저의 마지막 말로 끝을 맺는다.

 

내가 왜 자꾸의 로맹 가리의 소설을 주절거리는가? 불행은 정말로 순식간에 찾아왔다. 솔직히 이때만큼은 나도 세계일주 여행이 지겨웠고, 주의를 게을리하여 배낭을 잃어버린 아내가 원망스러기도 했다. 우리가 이곳까지 와서 도둑을 맞아야 하는 어떤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엘도라도(황금마을)를 찾아 이곳 리마까지 와서 잉카제국을 정복하고, 페루의 황금을 탈취하는 이유라도 있었지만… 허나 그도 욕심이 지나쳐 부하가 꽂은 비수에 생명을 잃고 말았다. 아이고, 내 신세야, 이유야 어떻든 경찰에 신고를 하고 배낭을 한 번 찾아보기라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