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잉카의 계곡순례(4)
모라이Moray-계단식 밭의 비밀
▲태양을 본따 만든 계단식 밭 농산물재배 시험장. 계단을 내려갈수록 기온이 올라간다.
바다가 없는 쿠스코. 잉카의 빛과 소금은 어디에 있는가?
계단식 밭에 농산물을 재배하는 비법은 또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음날 우리는 이 두가지으 화두를 안고 60솔에 택시를 렌트하여 계단식 밭에 농산물 재배를 연구한다는 모라이 Moray 농업연구소와 소금을 생산한다는 살리나스Sallinas 염전을 향해 출발했다.
각하 꼭 그곳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겠어요?
찰라 여기까지 와서 잉카의 비밀을 간직한 곳을 가보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걸.
각하 그 원망을 듣지 않으려면 갈 수밖에 없군요.
찰라 아마 가보면 각하가 더 좋아할 걸.
각하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찰라 운전수에게 물어볼까? 로베르토, 모라이와 살리나스가 좋은 곳이지?
로베르토 무초, 무초! 비엥!(무지 좋다!)
백미러를 통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로베르토 운전수에게 내가 오늘 가는 곳에 대하여 물으니 그는 어설프게 내 뜻을 알아들었는지, “무초! 무초!”를 연발하며 흰 이빨을 드러내면서 씩 웃는다.
찰라 거 봐. 무초! 무초! 엄청 좋다고 하지않아.
각하 저 사람들은 무조건 뭐든지 물으면 언제나 좋다고 말하지요.
사실 그랬다. 그러나 한적한 잉카의 길을 달려 가이드북에도 나와 있지 않은 모라이와 살리나스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각하는 오히려 나보다 대 만족을 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곳이 진정으로 가 볼만한 것이라는 데는 각하도 이미 알고 있는 터.
사실 나는 ‘모라이’와 ‘살리나스’라는 지명부터가 이상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서 가보지 않고는 도저히 배겨나지 못할 것 같았다. 모라이, 또라이, 살리나스, 살판났다?
▲3000미터를 넘는 고원의 펼쳐진 잉카의 밭
황량한 고원의 들판을 지나 자동차는 먼지를 휘날리면서 털털 거리며 달려간다. 황토색 밭들이 고원 위에 펼쳐진다. 농부들이 밭을 갈고 있다. 어디선가 하얀 새들이 날아와 부리로 흙을 파 해치고 무언가를 쪼아 먹는다. 흙을 일구어 뒤집으면 벌레들이 나온다는 것을 새들은 알고 있었던 것.
황토색으로 물든 들판을 한 동안 달려가자 “Moray'라는 간판이 나온다. 시골 농로 같은 좁은 길을 한 동안 기어가자 갈대로 역어 만든 움막이 보이고 자동차는 그곳에서 멈춘다.
▲황토색 밭에서 '모라이'로 들어가는 길 이정표
각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요?
찰라 나도 안보여?
로베르토 아끼, 아끼(이쪽으로 오세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로베르토는 손짓을 하며 우리를 부른다. 그가 가르쳐 준 곳으로 가보니 놀랍게도 거대한 원형 계단식 밭이 툭 꺼진 광장 안에 거대하게 펼쳐진다. 마치 로마시대의 대형 원형경기장이 땅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각하 이건… 마치 로마의 원형경기장 같아요!
찰라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더 멋져! 검투사들은 보이지 않군.
각하 정말 천혜의 검투장 같군요. 이런 곳이 다 있다니!
찰라 그러게 내가 뭐랬소? 절대로 후회를 하지 않을 거라고.
각하 에구, 당신이 이겼어요.
▲로마의 원형경기장 같은 농산물재배 시험장
황갈색으로 돌고 돌아가는 원형의 밑바닥이 까마득하게 멀어 보인다. 돌을 지그재그로 물려 쌓아놓은 석축 계단의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계단을 내려가는 곳에는 넓적한 돌을 삐쭉삐쭉 내밀어 발을 딛도록 만들어 놓았다.
돌계단을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딛고 내려가는 데도 한참이나 걸린다. 한 계단 내려 갈수록 더 덥다. 밑바닥에 도달하니 온몸이 찜통 속에 들어간 듯 화끈거린다.
각하 여긴 찜통속이군요! 아이고 더워!
찰라 태양 속에 들어왔으니 그럴 수밖에.
각하 태양이라니요?
찰라 로베르토, 이거 해가 맞지?
로베르토 씨, 씨. 솔(맞다 태양이다).
잉카인들은 태양과 달,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농사를 지었고, 태양신과 달의 신에게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큰 원안에 작은 원을, 그 안에 다시 작은 원을 만들어 높이에 따라 각 계단에 다른 작물을 심었다. 가장 심저의 바닥에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있고, 우물터도 있다.
▲달을 모델로 만든 농산물 재배시험장. 태양을 본따 만든 곳보다 규모가 적다.
거대한 원으로 건설 된 곳은 태양을 본받아 만든 농작물 재배시험장이고, 그 옆에 또 다른 작은 원형의 재배시험장은 달을 본 떠 만든 시험장이다. 그들은 해와 달의 움직임과 계절에 따라 농사를 짓는 방법을 연구 했던 것. 달의 계단식 밭은 규모가 훨씬 작고 계단의 높이다 낮다.
잉카인들은 이곳에서 시험재배를 하여 농사의 비법을 대대손손 전수해주었다. 그런데 이 원형의 농산물재배 시험장은 가운데 밑바닥과 위쪽 가장자리 사이의 기온 차이가 대단하다. 열대식물을 제일 밑에 심은 다음 차차 위쪽으로 옮겨 가며 적을 시킨다고 한다.
쿠스코는 남위 13.5도로 적도 가까운 열대지방이다. 그러나 해발 3000미터를 전후한 고지대여서 1년 내내 최고기온은 20도 내외다. 고지대에서 재배를 할 수 있는 농작물은 당연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옥수수, 코카, 면화, 채소, 과일을 심어 산악지방으로 운반하고, 저지대의 식물을 매년 조금씩 고지대로 옮겨 심어 산악지방의 기후에 적을 하게 만들던 것.
▲계단식 밭을 일구고 보수하는 잉카의 후예들
잉카의 계단식 농사 비법이 한 꺼풀 벗겨지는 듯하다. 이 비법을 대대손손으로 전수 밭은 잉카인들은 산비탈에 석축을 쌓아 계단식 밭을 만들고 산 밑에는 마을을 형성했다. 산자락에 마을을 짓고 들판에서 밭을 일구는 평야지대와는 정 반대의 생활양식이다.
계단에는 농부들이 밭을 수리하거나 작물을 심고 있다.
찰라 로베르토, 우나 포토 플리스(사진 한 장 찍어줘요)!
로베르토 씨, 씨.
찰라 이번 검투사 폼으로!
각하 아서요, 아서.
로베르토 베리 굿!
로베르토는 촬영기사 겸 운전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식 밭을 한 참 기어 올라온 우리는 소금 생산지인 살리나스로 향했다.
바다가 없는 이 고원지대에 잉카의 소금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가?
모라이 원형 시험장 주변에는 선인장이 울타리처럼 둘러져 있고, 노란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다.
▲얼기설기 울타리처럼 붙어 있는 선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