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첫 호수 - 티티카카(1)
갈대로 만든 인공 섬, 우로스
▲티티카카 호수 우로스 섬 사이를 오가는 갈대로 만든 배 "바루사 "
티티카카…
이 동양의 이방인에게는 티티카카라는 단어는 마치 무슨 신통한 주문소리처럼 들린다. '티티Titi'는 이 지방 원주민들의 아이마라어로 퓨마와 같은 고양잇과 동물을 말하며, ‘카카Caca’는 바위라는 뜻이다. 따라서 티티카카는 ‘퓨마의 바위’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옛날부터 이곳 원주민들은 퓨마와 재규어 같은 동물을 숭배한데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공중에서 바라보면 티티카카 호수는 마치 잠자고 있는 퓨마처럼 보인다고 통통배의 원주민 선장은 말한다.
▲하늘에서 내려단 본 티티카카 호수. 마치 잠자는 퓨마모형이라고 하는데...
기선을 타고 항해가 가능한 호수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는 해발 3890m에 위치하며, 면적은 우리나라 전라북도 크기로 바다 같은 거대한 호수다. 평균 수심은 281m이고 2000m에 달하는 매우 깊은 곳도 있다고 한다. 호수 중앙 부근에서 페루와 볼리비아가 국경을 이루고 있다.
호수 주변에 있는 안데스 산맥에서 눈 녹은 물이 20여개나 되는 강이 되어 흘러들어와 티티카카 호수를 이루고 다시 데사구아데로 강으로 모여 볼리비아의 우우루 호수, 포포 호수로 흘러 나간다. 그러나 데사구아데로 강으로 흘러가는 물은 고작 5%정도이고 나머지는 고원의 뜨거운 태양과 강한 바람으로 인해 증발되어 소실된다.
아이마라의 전설에 의하면 이 세상의 첫 번째 태양 빛이 티티카카에 내려왔고, 대지의 어머니인 파차마마Pachamama의 땅에 태양의 아들인 망코 카팍Manco Capac과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오끄요Mama Ocllo가 내려와 잉카제국을 건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태양의 신은 이들에게 황금 지팡이를 주어 그 지팡이가 박히는 곳에 정착하라고 게시를 내린다. 그 땅이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다. 이처럼 잉카의 전설은 티티카카 호수에서부터 시작된다.
▲티티카카호반의 항구에서 바라본 푸노 시 전경. 안데스 산맥에서 논 녹은 흘러들어온 물이
20여개의 강이 되어 거대한 티티카카 호수를 이룬다.
다음날 아침 일직 우리는 티티카카호수 투어에 나섰다. 마리아 앙골라 호텔을 탈출(?)하여 킹덤 여행사 직원이 소개해준 Argupa 호텔로 짐을 옮기고 항구로 나가니 우리를 싣고 갈 보트가 기다리고 있다. 아무래도 그들과 부딪치다가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서다. 이런 경우엔 내 여행 경험으로 보아 그저 소리 없이 잠적하는 거다.
아침 8시 푸노 항구. 여행자들이 여기저기서 배낭을 메고 어슬렁 거리며 모여든다. 거의가 유럽에서 온 배낭여행자들이다. 하늘은 맑고 흰 구름이 호수 위를 지나 안데스의 언덕으로 둥둥 떠가고 있다. 산 위까지 빼꼭하게 들어 차 있는 집들이 꼭 목포항의 유달산 뒤쪽 기슭에 옹기종기 들어찬 달동네 집들을 연상케 한다.
▲티티카카호수로 떠나는 통통배. 뒤에 뚱뚱한 사람이 우루족 선장이다. 배는 낡고
기름냄새가 진동한다. 승객들은 주로 유럽에서 온 배낭여행객들이다.
선장은 우루 족 원주민으로 몸집이 제법 크다. 우리가 탄 배는 배라고 하기보다는 모터를 단 조그만 통통 배다. 배 안에는 30여명의 승객이 탔는데 거의가 젊은 배낭여행객들이다. 배가 출발하기 전에 소년들이 올라와 안데스의 음악을 연주한다. 호수를 타고 흘러내리는 곡조는 슬프고 애잔하면서도 푸른 하늘의 떠나는 구름처럼 경쾌하다. 마치 바람의 소리 같다고 할까? 연주가 끝나자 여행객들이 팁을 소년들의 손에 건네준다. 나도 몇푼의 솔을 그들에게 전한다.
소년들이 배에서 내리고 이윽고 보트가 통통거리며 항구를 출발한다. 푸노의 시가지가 멀어질수록 갈대가 수로 양옆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낡은 배라서 기름냄새가 어찌나 독한지 아내는 숫째 코를 막고 있다. 그렇게 40여분 정도를 통통 거리며 달려 나가니 시야에 작은 섬들이 점점이 보인다. 갈대로 이루어진 우로스Uros라고 부르는 섬들이다.
▲수로에는 토토라라고 불리는 갈대가 무성하다. 갈대로 만든 배들이 섬 사이를 오가고 있다.
갈대 중간의 수로에는 이상하게 생긴 동물 모양을 한 보트들이 건너다닌다. 모두가 갈대로 만든 배란다. 갈대로 만든 배에 갈대로 이루어진 섬. 우로스 섬은 토토라Totora라고 부르는 갈대를 겹쳐 쌓아 만든 것으로 티티카카 호수에는 크고 작은 갈대 섬들이 40여개가 흩어져 있다.
“어? 푹신푹신하군요!”
“거대한 양탄자 같기도 하네!”
▲토토라로 만들어진 인공 갈대섬 우로스. 바닥이 푹신푹신하다
인공 갈대 섬에 오르니 바닥이 푹신푹신하다. 우로스 섬은 토토라를 베어 3m 정도 쌓아서 만든다. 물에 잠긴 부분이 썩으면 다시 해마다 새로운 토토라를 잘라 쌓으면 섬은 유지된다. 섬의 크기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300여명 정도가 생활하는 섬까지 다양하다. 갈대 섬 안에는 학교와 우체국, 교회, 박물관도 있다. 모두가 갈대로 만들어져 있다.
이 섬에서 사는 사람들은 주로 우루 족으로 티티카카 호수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나 물새를 잡고, 갈대밭에서 감자 등을 재배하여 생활하고 있다. 우루족은 티티카카 호반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잉카 시대에 천민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코파카바나에서 생활을 하다가 스페인 군에 쫓겨서 이곳에서 섬을 만들어 살게 되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그들은 몇 백년에 걸쳐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원시 생활형태를 유지하면서 대를 이어 갈대섬에서 살아오고 있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잡아올린 물고기 톱미노. 최근에는 송어도 잡힌다고 한다.
우로스 섬에 사는 사람들은 토토라가 가장 중요한 생활수단이 된다. 생활 터전인 섬을 만들고, 집, 불씨, 가축의 먹이는 물론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배도 토토라로 만든다.
“자, 이 갈대를 한번 맛보시지요.”
“그걸 먹어도 되나요?”
“그럼요.”
선장이 꺾어서 잘라준 토토라 속을 씹어보니 달달하다. 마치 수수 대를 씹는 맛이랄까?
“화장실은 어디에 있지요?”
“저기 세워진 전망대 같은 곳이 화장실입니다.”
“에게게, 무슨 화실이 저렇게 생겼지?”
“큰 응가를 하기에는 좀 곤란하겠는데.”
▲ 갈대배로 고기를 잡는 원주민(상) 갈대로 만든 배와 화장실(하)
우로스 섬 주민들의 모든 생활이 갈대와 연결된다
화장실이 마치 과수원에 세워둔 움막처럼 생겼다. 우로스 섬의 아이들이 통치마를 입고 뒤뚱거리며 다가온다. 그 모습이 너무나 순진하다. 순진유구란 말은 이 아이들을 두고 생겨난 말이 아닐까?. 아이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니 매우 수줍음을 탄다. 햇볕에 그을려 검붉게 탄 얼굴, 까만 눈동자, 얼크러진 머리칼… 아이들은 싱싱한 야생의 모습 그대로다.
▲야생에서 싱싱하게 살아가는 원주민 아이들의 순진한 모습. 부끄럼을 탄다.
아이들의 엄마는 호수에서 잡아 올린 고기를 검은 옹기에 넣고 끓이고 있다. 화덕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거의 윤곽을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아마 몇 백 년 동안을 이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화덕에서 원주민들의 삶으 무게와 세월을 느낀다. 호수에서 잡히는 고기는 주로 메기나 검은 줄무늬가 있는 톱미노Orestias 2가지가 주종인데 최근에는 무지개 송어Rainbow Trout도 잡힌다고 한다.
▲오래된 화덕이 우로스 섬 원주민들의 삶과 세월의 무게를 엿볼 수 있다.
▲푹신한 갈대섬에 누워있으니 자연 그대로가 요가되고 이불이 된다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은 숫째 웃통을 벗어 제치고 물렁한 갈대 바닥에 누워 선 텐을 한다. “자, 우리도 이 천혜의 침실에 한 번 누워 보자고.” 푹신거리는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본다. 바닥에 까는 요와 이불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자연 그대로가 매트리스요 이불이 된다. 파란 하늘엔 흰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떠간다. 세상의 모든 복잡한 일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가도 행복하지 않은가? 아등바등 죽을 판 살판 하지 않아도 하루 세끼를 먹으며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 않는가? 텔레비젼도, 자동차도, 전화도 없는 이 섬! 갈대 바닥에 누워있으니 문명의 이기는 편안하기는 하지만 복잡한 스트레스를 주는 산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섬에 한동안 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실제로는 몇일도 살지 못하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렇다!
▲대를 이어온듯한 화덕에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와 순진하기만 아이들의 표정이 평화롭다
섬의 한쪽에서는 부자로 보이는 두 남자가 토토라로 배를 만들고 있다. 마치 짚으로 엮어서 만드는 배처럼 보이는데 물에 잘 뜨는 성분이 있어서 가라앉지 않는다고 한다. 말린 토토라를 이리저리 꼬아서 배를 만드는 모습이 매우 진지하다. 한아름 정도의 토토라를 끈으로 묶어서 다발로 배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배는 아주 단단하여 물이 새지 않고 어른들 수명이 타도 가라앉지 안고 떠간다니 그저 이방인에게는 신기하게만 보일따름이다.
▲토토라로 갈대 배 '바루사'를 만들고 있는 우루족 부자. 순전히 갈대로만 만든다
“저 배를 한번 타보고 싶어요.”
“실은 나도 타보고 싶어…”
선장에게 물으니 희망자는 타도 좋다고 한다. 선장이 배 주인에게 뭐라고 말을 한다. 아마 다른 섬으로 가면 나중에 그곳으로 오겠다는 말인 것 같다. 우리는 금방 가라앉을 것만 같은 갈대배에 올랐다.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우루족의 아주머니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노를 젓는다. 노를 젓는 솜씨가 유연하고 여유롭다. 갈대배는 푸른 물결을 헤치며 다른 섬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갈대배 바루사를 타고 다른 갈대섬으로... 선장은 통치마를 입은 우루족의 미인(?) 아줌마
‘바루사Balsa’라고 부르는 배는 마치 고대 이집트의 배처럼 신비하게 보인다. 보통 4.5m의 길이로 중앙이 넓고 양끝이 좁아지며 뱃머리에는 퓨마를 상징하는 모양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갈대배에 탄 우리는 마치 먼 과거의 잉카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든다.
▲바루사는 뱃머리가 퓨마 모형을 하고 있다. 티티카카에서 갈대배를 타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20여분이 지나 건너편 섬에 도착을 하니 그곳에는 우체국, 학교, 전망대가 있고 시장도 있다. 맷돌 비슷한 돌로 우루족의 노파가 말없이 앉아서 곡식을 빻고 있다. 모든 생활이 원시적이다. 전망대에 올라 티티카카 호수를 바라보니 정말 바다처럼 보인다. 하늘과 호수가 끝없이 맞닿아 있다. 가난하지만 평화롭게 살아가는 갈대섬의 사람들이다. 근심이라곤 도대체 없어 보인다.
"아이들에게 엽서 한장 보내야지요. 이 섬에서..."
"그거 좋은 생각이네. 갈대 우체국에서 보내는 편지라...."
엽서를 몇 장 사서 아내와 나는 편지를 쓴다. 나는 큰아이 영이에게, 아내는 둘째 경이에게....
"애들아, 이곳은 페루 안데스 산맥에 들러 싸여 있는 4000미터 고지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에 있는 갈대 섬 우로스라는 곳이란다. 이곳에는 모든 것을 토토라라고 하는 갈대로 만들어져 있는데, 집, 화장실, 학교, 배는 물론 우체국도 갈대로 만들어져 있단다. 오늘은 특별히 갈대우체국에서 이 편지를 부친다. 갈대섬은 마치 융단처럼 푹신푹신해서 안방에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언젠가 너희들과 함께 이곳에 오고 싶구나...중략...."
▲갈대로 만들어진 우체국에서 엽서를 부치는 아내의 표정. 빨간 우체통이 갈대 움막에 놓여있고. 입구에는 엽서가 진열되어 있다. 이 섬에서 엽서를 부치는 경험은 특별한 느낌이 든다.
▲반달같은 멧돌로 곡식을 빻고 있는 원주민 아주머니의 표정이 평화롭다
▲갈대로 만들어진 전망대. 이곳에 올라보면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한눈에.
시간이 꿈결처럼 지나 간다. 우리는 우로스 섬을 출발하여 아만타니 섬으로 향했다. 아만타니 섬 민가에서 오늘밤을 묵기로 되어 있다. 긴 토토라 통로를 빠져 나오니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분다. 파도가 일렁이는 호수는 정말로 바다로 변하고 만다. 큰 파도에 흔들거리는 작은 보트는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반면에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어떤 전율과 스릴을 느낀다.
하늘은 맑고 푸르다.
물은 깨끗하고 투명하다.
호수 속 깊은 심연에서
문득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티티카카 호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티티카카, 어머니, 평화…
아아, 티티카카여!
어머니의 호수여!
▲갈대 수로를 따라 바다처럼 넓은 곳으로 나가면 파도가 심하여 멀미를 하게 된다.
함께간 일행들(상). 배멀미로 선실에 누워있는 동양의 이방인은 무엇을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