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짝 짓기
선장은 여인들 한 명에 여행객을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준다. 선장이 여인들의 이름과 여행객들의 이름을 부르면 섬의 여인들은 말없이 일어나 승객의 짐을 받아들고 섬의 언덕으로 올라 각자의 집으로 인도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외딴 섬에서 이루어지는 희한한 짝짓기다. 아만타니는 해발 4300m에 이르는 고지대다.
‘마마니’라고 불리는 여인이 우리와 짝을 이루게 되었다. 마마니는 작달막한 키에 갈색의 두건을 머리에 얹었고, 꽃무늬가 그려진 흰색 저고리에 푸른색의 주름 통치마를 입고 있다. 50은 넘어 보일 듯한 그녀는 흰 이를 드러내며 살짝 웃으면서 우리들의 배낭을 두 개나 받아들고 성큼성큼 언덕을 올라간다. 그러나 우리는 맨몸으로도 그녀를 쫓아가기는커녕 숨이 차서 기절을 할 것만 같다. 그녀는 아마 우리보다 심장이 두배는 큰가 보다.
흙벽돌담 사이에 세워진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니 ‘ㄱ’자형의 흙집 안마당이 나온다. 마마니는 우리를 2층으로 안내한다. 2층은 콘크리트 벽으로 흙집 위에 최근에 늘어낸 듯하다. 고개를 수그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방문이 하나 있고, 방안에는 두개의 작은 침대와 손바닥만한 나무 탁자가 하나 놓여져 있다. 키가 천장을 닿을 듯 낮은 방에는 바다를 향해 작은 유리창 하나 나 있다. 창 너머에는 파란 호수가 눈이 시리도록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다.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은 아름다움 풍경이다.
사립문을 열고 오른쪽 고샅길로 한 참을 돌아가야만 갈대지붕을 한 움막 화장실이 나온다. 구덩 위에 널빤지 두 개를 얹어놓은 곳에 앉아 일을 보고 있노라니 옆 돌담에서 갑자기 돼지들이 꿀꿀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아만티니 섬의 화장실 풍경은 마치 우리나라 제주도의 ‘통시’를 연상케 한다. 화장실뿐만 아니라 돼지우리, 부엌, 사람들의 표정도 내가 어릴 적에 자라났던 우리네 시골풍경과 비슷하다. 아만타니 섬에는 물이 부족하다. 그렇게 많은 물이 티티카카 호수에 넘실거리고 있지만 산중턱에 자리 잡은 섬 주민들은 물을 호수에서 길러 와야 한다. 그래서 세숫물로 발을 씻고 다시 그물로 화장실 세척을 한다.
이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케추아 원주민들은 틀림없이 우리네 핏줄과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린아이의 엉덩이에는 우리들과 똑 같은 시퍼런 ‘몽고반점’이 도장을 찍은 듯 선명하게 나 있다. 몽골리안들이 베링해협을 거쳐 이곳까지 왔는지, 아니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베링해를 건너왔는지 역사가들이 증명할 일이지만, 아마 우리와 핏줄이 같은 몽골리안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갔으리라는 설이 설득력이 커 보인다.
섬은 너무나 조용하다. 전기도 없는 섬은 현대문명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마마니는 점심으로 검은색이 도는 꿩알마나 한 감자와 찐 계란, 그리고 노란 색깔이 감도는 수프를 흙빛이 도는 작은 접시 위에 담아왔다. 이들의 주식은 섬의 산비탈에 감자와 옥수수, 오카를 심고,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양을 키워 털을 뽑아 옷을 해 입고 닭을 키워 달걀과 닭고기를 먹는다.
1년에 한번 선출되는 촌장을 중심으로 독립자치국을 형성하고, ‘도둑질 하지 말 것, 거짓말 하지 말 것, 게으르지 말 것’이라는 잉카의 세 가지 덕목을 도덕규범 삼아 잉카의 전통문명을 그대로 이어나가고 있다. 선착장에서 조용히 앉아 민박차례를 기다리는 여인들의 모습이 다시 생각이 난다. 몇 명의 여인들은 손님이 없어 빈손으로 돌아가는데도 전혀 서운한 기색이 없었는데 그들은 다음 배에 오는 손님 중에 선착순으로 손님을 배정 받디 때문이다.
섬의 주요수입원은 양털로 직물을 짜는 것과 가끔가다 들리는 관광객들을 민박을 치거나 기념품을 파는 것이 전부다. 섬 주민들은 공동생산, 공동분배 원칙을 바탕으로 의식주를 100% 자급자족하고 있다.
감자로 점심을 먹고 마마니의 딸 린다를 따라 마을 뒤편에 있는 유적지 탐방에 나선다. 린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앞장을 서 걸어가는데 우린 역시 한발자국 걸을 때마다 숨이 턱까지 타오른다. 바람처럼 걸어가는 린다, 거북이처럼 느린 우리들. 린다는 지그재그로 걸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몇 번을 쉬고 또 쉬며 힘겹게 언덕을 오른다. 동네 아리들이 마치 지친 우리를 격려하듯 샴뽀냐와 께냐를 연주하며 뒤를 따른다. 소년은 ‘엘 콘도 파사’를 길게, 느리게 번갈아 연주한다. 길가에는 역시 같은 복장을 한 원주민 여인이 물과 기념품을 팔며 뜨개질을 하고 앉아있다.
마법 피리 소리에 힘입어 우리는 산 정상에 가까이에 다가간다. 아치형의 돌문이 수수께끼의 문처럼 연달아 서 있다. 아치 사이로 석양빛이 황홀하게 호수를 물들이고 있다. 황홀하다. 정상에 오르니 바다 같은 호수가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바다처럼 수평선만 보인다.
유적지는 허물어진 돌 벽들이 아무렇게 널려져 있다. 프레 잉카시대의 유적지라고 하는데 가꾸지 않는 모습이 더 고풍스럽게 보인다. 티티카카 호수를 조망하기에는 최고의 위치다. 어디선가 구름이 모려와 하늘을 덮더니 붉은 천처럼 분홍의 노을을 드리운다. 아름다운 노을이다!
▲아만타니 섬 정상 유적지에서 바라본 티티카카 호수의 황홀한 일몰
사방이 점점 어두워지자 아래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연기가 피어오른다. 옛날 우리네 시골처럼 집집마다 흙집 화덕에 가마솥을 걸고 저녁을 짓고 있는 것이다. 부엌의 화덕도, 가마솥도 꼭 우리네 것을 닮았다.
우리가 마마니의 집으로 내려오자 마마니는 우리들 방안에 성냔을 그어 촛불을 켜고 어둠을 밝혔다. 촛불 하나가 온 세상을 밝히듯 그윽하게 방안을 훤하게 비추인다. 마음이 저절로 모아진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참지 못하게끔…
마마니는 노란 수프와 풀풀 날아갈 듯한 쌀밥, 감자를 튀긴 칩, 그리고 박하향이 짓게 나는 무냐Muna 차를 들고 와 나무 식탁에 내려놓는다. 아름다운 만찬이다. 없는 것이 너무도 많았지만 부족한 게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멋진 저녁 만찬이다.
▲아만타니 섬에서 바라보는 티티카카 호수의 수평선. 멀리 안데스의 만년설이 보인다.
섬에 머무는 동안 세상의 모든 것이 귀하게 여겨진다. 사람도 귀하고 물자도 귀하다. 그러나 귀하지만 무언가 마음을 풍부하게 따뜻하게 느껴지게 한다. 그 풍부함은 마마니와 린다의 미소 속에 보석처럼 모두 담겨져 있다.
밤에 화장실을 가려면 손전등을 들고, 사립문을 열고 어두운 골목을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마음은 풍요롭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 잡힐 듯이 빛나고 있고 초생 달이 아름다운 여인의 눈썹처럼 걸려있다.
접시에 세워놓은 몽땅 촛불이 바닥까지 타 버리자 불이 꺼지고, 이윽고 칠흑 같은 어둠이 적막 속에 휘장을 두른다. 바람마저 잠을 자는지 세상은 태초의 고요, 그대로다.
티티카카의 아침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하늘 아래 첫 호수, 티티카카의 밤 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이 하나둘 사라져 간다. 멀리 안데스의 만년설 너머로 밝은 햇살이 비쳐온다. 5시가 채 안되었는데도 마마니의 오두막 문창살에는 환한 햇살이 넘쳐 흐른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맞이하는 티티카카 호수의 아침은 이렇게 밝아온다.
▲아만타니 섬의 민박집 마마니 가족과 함께
이젠 마마니 가족과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쉬운 이별이다. 흙벽돌집을 나서기 전에 마마니 가족과 기념촬영을 한다. 하루 밤에 만리장성을 쌓았던 마마니의 오두막 집. 똑딱선을 타고 멀어져만 가는 마마니의 사립문. 아이들이 손짓을 하는 모습이 멀리서 보인다.
티티카카 티티카카
아만타니 아만타니
마마니 마마니....
아, 하늘 아래 첫 호수
티티카카 마마니 집에서
세월을 잊다!
(하늘아래 첫 호수 티티카카 아만타니 섬에서 글/사진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