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나는 치트완 정글을 떠나면서 다시 어제 정글에서 보았던 코끼리를 생각해 봅니다. 한 코끼리는 풀을 뜯으며 멈추어 있다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조련사에게 호되게 매를 맞았습니다. 매를 맞은 코끼리는 코를 하늘로 말아 올리며 울부짖습니다. 이는 분명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증거입니다. 아래 비디오를 잘 보시면 여러분께서도 화난 코끼리의 심정을 잘 이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코끼리는 조련사로부터 매를 맞고 돌아서서 길을 가기는 했지만 마음까지 굴복을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매를 힘껏 내려치는 조련사의 얼굴은 매우 성난 표정으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매 맞는 코끼리 등에 탄 사람들도 마음이 편할 리가 없습니다. 모두가 매 맞는 코끼리를 안타까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성난코끼리와 웃고 있는 코끼리(치트완정글)
사실 코끼리 조련사는 코끼리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조련사의 마음에는 말 잘 듣는 코끼리를 생각하고 있는데 실제상의 코끼리는 말을 듣지 않으니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코끼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코끼리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서는 괜히 그 화풀이를 엉뚱한 코끼리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뒤에 따라오는 코끼리와 조련사를 유심히 살펴보십시오. 코끼리 등에 앉은 조련사는 벌써 웃고 있습니다. 조련사를 등에 태운 코끼리도 웃는 표정입니다. 코끼리는 조련사가 시키는 대로 척척 알아듣고 재롱을 피웁니다. 모자를 떨어뜨리면 모자를 주어주고, 돈을 떨어뜨리면 돈을 코로 주어서 조련사에게 바칩니다. 그 코끼리에 탄 사람들도 신이 나서 웃습니다. 그리고 멋지게 재롱을 피우는 코끼리에게 저마다 팁으로 달러 지폐를 던집니다. 코끼리는 그 때마다 코를 유연하게 놀리며 달러 지폐를 주어서 조련사에게 바칩니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출처: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조련사가 코끼리 등에서 내리려고 하자 이내 코끼리는 알아채고 코를 앞으로 내밀면서 받침대가 되어줍니다. 그가 일을 보고 코끼리 등에 타려고 하자 코끼리는 다시 코를 낮게 내밀어 조련사가 오르기 쉽게 다리를 놓아 줍니다. 조련사와 코끼리는 하나가 되어 척척 움직입니다. 그 코끼리 등에 탄 사람들도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조련사와 코끼리에게 갈채를 보냅니다. 모두가 신나게 유쾌하게 웃으며 코끼리의 재롱을 칭찬합니다. 어떤 웃는 코끼리는 강물에서도 재롱을 피웁니다. 코로 물을 빨아들여 동심원을 그리며 재주를 피웁니다. 사각의 링도 없는 코끼리에 탄 남녀는 신기한듯 코끼리의 재롱을 바라봅니다. 조련사는 코끼리 등에 그냥 서 있습니다. 너무나 유쾌한 장면입니다.
▲코로 물을 뿌리며 재롱을 피우는 코끼리(치트완 정글)
한 여행자가 갠지스 강가에 앉아 큰 코끼리 한 마리가 강에서 목욕을 마치고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갈고리가 달린 막대기를 든 남자가 코끼리에게 다가와 다리를 앞으로 내밀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러자 코끼리는 온순하게 다리를 앞으로 내밀었고, 남자는 코끼리의 무릎을 밟고 코끼리 등으로 올라가 앉았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여행자는 야생의 코끼리가 인간에 의해 그토록 온순하게 길들여질 수 있음을 보고 크게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그길로 숲으로 돌아가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바로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를 쓴 영국 캠브리지 대학 출신인 아잔 브라흐마입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108마리의 코끼리 이야기를 깊은 통찰력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나는 치트완 정글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해 봅니다. 코끼리를 화나게 하는 조련사와 코끼리를 웃게 하는 조련사. 나는 도대체 어느 쪽에 속할까?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아직도 여전히 코끼리를 화나게 하는 조련사에 속합니다. 치트완 정글을 떠나면서 이 두 마리의 코끼리가 영 잊히지 않고 머릿속에 영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리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명상을 해보고, 마음을 달래보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108마리의 성난 코끼리들이 울부짖고 있습니다. 나는 이직 이 코끼리들을 웃길 자신이 없습니다. 나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술 취한 108 마리의 코끼리들은 품고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