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작은 상상력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

찰라777 2012. 6. 15. 05:07

 

점점 원시인이 되어가는 생활

 

나는 요즈음 점점 원시인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이곳 DMZ부근 연천 동이리로 이사를 온 후 생활은 매우 단조롭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에서 자유로나 의정부를 거쳐 38선을 넘어야 한다. 37번 국도를 타고 오다가 어유지리 삼거리에서 임진강 방향으로 가면 삼화교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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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유지리란 지명을 처음 보았을 때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어휴, 지명이름이 어유지리라니 이상하군요!”아내도 표지석을 보면서 의아해 했다. 나중에 마을 지명 유래를 알아보니 어유지리魚遊池里는 임진강가 용 못에 살았던 이무기를 고기에 비유하여 어유지리라하였다고 한다.

 

어유지리를 지나면 임진강을 가로 지르는 삼화교가 나온다. 삼화교를 지나 마전 3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동이리로 진입한다. 동이리는 마을 입구에 불옹성처럼 단단한 방어진지가 있고 그 우측에는 고구려 유적지인 당포성이 임진강을 굽어보고 있다.

 

 

▲고구려 유적지 당포성에서 바라본 삼화교와 인진강

 

 

당포성을 지나면 좌측에 ‘유엔군 화장장’이 나온다. 6.25 한국전쟁당시 수많은 유엔군 희생자들이 화장을 했던 이 화장장은 유엔군 참전 상황에 대한 실증적 자료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현장이다. 화장장을 지나면 이윽고 동이리 마을이 나오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마을에서도 3km 정도를 더 가야 한다.

 

이 지역은 3면이 임진강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유일한 통로는 마을입구 방어진지이다.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는 하루 종일 있어도 자동차나 사람들을 구경하기 힘들다. 금굴산에 올라가서 바라보면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는 마치 한반도의 지도처럼 생겼다. 이곳은 북위 38도선과 동경 127도선이 교차하는 합수머리는 중부원점으로 한반도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작년 12월 이곳으로 이사를 온 나는 잡초 밭에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이곳 동이리 집은 꽤 넓은 대지이다. 건물과 잔디밭을 제외하고도 족구장과 잡초가 우거진 우측 뜰을 합하면 200여 평은 족히 넘을 것이다. 우선 잡초가 우거진 우측 뜨락을 잡초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치, 부추, 감자, 고추, 오이를 심고 호박과 콩도 심었다.

 

이사를 온 후 키를 넘기는 잡초들을 베어 냈지만 봄이 오자 잡초와 쑥, 개망초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번식을 하며 돋아났다. 이 잡초들은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다시 땅을 덮고 말 것이다.

 

나는 매일 조금씩 쇠스랑과 호미로 잡초들의 뿌리를 파내어 제거하기 시작했다. 잡초들의 뿌리가 어찌나 단단하고 질기던지 손이 부르트고 허리가 아팠다. 잡초들의 뿌리는 마치 철망처럼 단단하고 견고했다.

 

 

전생에 전곡선사시대 구석기인이 아니었을까?

 

요즈음 농촌에서는 농사는 작업을 거의 트랙터 등 거의 농기계로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농사일을 하고 있다. 삽, 곡괭이, 쇠스랑, 호미 등 원시적인 농기구를 이용하여 땅을 파고 밭을 일구고 있다. 밭에서 일을 할 때는 도대체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저 땅을 파고 잡초를 제거하고 돌을 주어내며 채소와 곡식을 심을 뿐이다.

 

 

▲전곡선사유적지 박물관  

 

일을 하다보면 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구석기 시대로 돌아간 듯 느낌이 들곤 한다. 혹시 내가 아주 먼 과거 전생에 전곡에서 살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이곳 연천까지 와서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전곡선사유적지는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돌로 만든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된 곳이다. 이곳 임진강과 한탄강 연안지역에는 신생대 제4기에 분출된 현무암이 분포하고 있다. 전곡리 현무암의 분출은 2매는 대략 50만년 전후, 그리고 상부의 현무암은 16만년 전후에 분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곡선사유적지에서 발견한 주먹도끼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는 6000여점 이상의 석기가 출토되고 있다. 석재는 주로 석영맥암과 규암을 이용한 것이나 현무암과 편마암도 소량 포함되어 있다. 가장 특징적인 석기는 아슐리안형의 주먹도끼(hand-axe)들인데 양면가공된 것과 단면가공된 것이 있다. 평면이 타원형인 것과 첨두형이 모두 있으며, 이들 일부는 몸통이 두텁고 큼직한 박편흔으로 덮여 있어서 아프리카의 상고안(Sangoan) 석기공작과 형태적인 유사성을 지닌다.

 

 

▲내가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농기구들

 

 

나는 비록 석기가 아닌 철기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작업형태는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이 농사를 지었던 방식 그대로다. 작은 도구들로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며 거두어들이는 작업은 수십만 년 동안 변함이 없는 농사 방식이다.

 

농기구로 손수 밭을 일구게 되는 운동량이 충분해진다. 헬스클럽이나 골프나 테니스, 등산 등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괭이질과 삽질을 하는 것 자체가 큰 운동이 된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농작물을 돌보고, 오이, 상치, 고추 등 밭에서 난 야채를 먹을 만큼 수확을 하는 즐거움이야 말로 가장 최상의 운동이 아닐까?

 

 

 

요즈음은 오디철이라 주변에 있는 뽕나무에서 오디를 따는 것도 즐거운 운동의 하나이다. 뽕나무 밑에 멍석을 깔아놓고 뽕나무 가지를 흔들면 오디가 후드득 떨어진다. 머리에 얼굴에, 어깨에 오디 비를 맞는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또 손으로 직접 말랑말랑한 오디를 따서 한 입 입에 넣고 움질움질 씹어 먹는 맛이야 말로 최고 보양식이다.

 

 

작은 상상력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

 

농사를 짓는 외에 하는 운동은 오직 걷는 것이다. 임진강변을 걷는 시간은 사색의 시간이다. 강변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덧 사색의 창이 열린다. 나는 이 시간에 꿈 많은 소년처럼 갖가지 상상의 나래를 편다.

 

작은 상상력 하나가 세상을 바꾸고, 남다른 아이디어 하나가 위대한 꿈으로 피어난다. 어릴 적부터 무척 많이도 걸어 다녔다. 유년시절에도 마을 뒤에 있는 오룡산을 매일 올라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3km 정도 되는 길을 6년 동안 걸어 다녔고, 중고등학교 때는 기차통학을 하며 6년 동안 14km를 걸어 다녔다.

 

 

 

 

12년 동안을 걸어 다니면서 나는 자연이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되었다. 여러 가지 상상 중에서도 시골 오지에서 태어난 나는 지구촌 곳곳을 여행을 하는 상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전 세계를 여행을 하고 말리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는데 그 상상이 잠재의식 속에 잠자고 있다가 나이 50이 다 되어 배낭을 메고 걸어서 세계일주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걸어 다니면서 품었던 또 한 가지 꿈은 작은 농장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그것도 자동차 대신 말을 타고 다니면서 말이다. 그런데 우연히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곳 동이리에서 자급자족을 꿈꾸며 농사를 짓고 있다.

 

 

 

 

걸으면서 꿈을 펼치는 작은 상상력 하나가 내 세상을 바꾸어 나간 샘이다. 이곳 동이리에 이사를 온 후 교통도 불편하고,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병원, 학교 등 편익시설도 없어 불편하지만, 좋은 점이 더 많다. 이곳은 정말 절간처럼 조용하고, 공기와 물이 좋으며, 오염이 없는 지역이다.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과 자동차 구경을 할 수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땀 흘려 텃밭에서 일하고 임진강변을 걸으며 점점 원시인이 되어가는 생활이지만 마음은 단출하고 행복하다. 나는 지금도 소년처럼 매일 내 작은 상상의 나래를 펴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상상력이 장래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나는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내 작은 상상력은 내 잠재의식 속에 잠을 자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않게 현실로 다가올 것이리라.

 

(2012.6.15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