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과 시간이 빚어낸 동이리 주상절리 적벽
타임머신을 타고 30만 년 전 태곳적 길을 가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그림자가 길어지면 가을 석양이 불타오른다. 불타오르는 석양빛을 받아 활활 타오르듯 붉게 물들어가는 동이리 주상절리 적벽! 적벽에는 담쟁이덩굴 단풍이 검붉은 용암처럼 흘러내린다.
동이리 주상절리는 직선거리 1.5km, 높이 40m에 이르는 적벽으로 도끼로 내려치듯 깎아지른 암벽이다. 30년만년 전 용암 덩어리가 풍화와 침식을 거치면서 형성된 주상절리 대다. 과연 보기 드문 숨은 비경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주상절리 대에는 검붉은 담쟁이덩굴 단풍이 마치 용암처럼 지글지글 끓으며 흘러내린다. 그리고 임진강에 그대로 드리워진다. 명경처럼 맑은 임진강은 주상절리 비경을 그대로 담아 비추인다. 순간 강폭에는 이 세상 최고의 산수화가 펼쳐진다. 오직 자연만이 그려낼 수 있는 명화다.
강변에는 수십만 년 동안 굴러다니며 민들 민들 해진 몽돌이 세월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 적벽 위로 기러기들이 ‘V'자를 그리며 끼룩끼룩 노래를 부르면서 날아간다. 30만 년 전에도 기러기는 이 적벽을 날아갔으리라.
적벽을 따라 강변을 내려가면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에 이른다. 이 곳은 북위 38도, 동경 127도 지점으로 한반도의 중심이 되는 ‘중부원점’이다. 두 강이 합류된 임진강은 파주를 지나 한강 하류로 흘러내려 간다. 그 인근에 개통을 앞둔 <동이1교>가 남북을 가로 질러 임진강 적벽에 놓여 있다. 사장교를 잇는 줄은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서로 악수를 하듯 손을 내밀고 있다.
중부원점에서 한탄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전곡리 선사유적지와 만난다. 30만 년 전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대륙을 횡단하던 호모 에렉투스는 이곳 한탄강 근처 전곡리에 터전을 잡았다. 호모 에렉투스는 불을 사용한 최초의 인류로 한탄강변에 굴러다니는 강돌을 다듬어 주먹도끼를 만들었다. 그 도끼로 짐승을 사냥하여 가죽을 벗기고 땅을 파서 나무뿌리를 캤다.
1978년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미군병사 보웬은 그 한탄강변을 거닐다가 우연히 주먹도끼를 발견했다. 손에 쥐기 좋도록 좌우대칭을 이룬 주먹도끼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제외한 세계 어떤 지역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는 아슐리안형 도끼였다. 보웬의 우연한 주먹도끼 발견은 고고학계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연천군 전곡리를 세계적인 구석기 유적지로 지정하게 하였다.
동이리 주상절리는 한탄강을 흐르던 용암이 임진강을 만나 병목현상을 일으키면서 상류로 역류하여 형성된 희귀한 적벽이다. ‘U'자 형으로 급류를 이룬 강물이 성벽처럼 생긴 적벽을 휘감아돌며 천혜의 요새를 이룬다.
동이리 주상절리 길을 걷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둥글둥글한 몽돌이 시간을 이야기하고,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꼭대기에는 적벽에 뿌리를 내린 단풍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붉게 물든 담쟁이덩굴이 울퉁불퉁한 주상절리 표면을 뒤덮으며 용암처럼 흘러내린다. 그 절벽 너머에는 남계리 너른 황금들판이 풍년을 예고하고 있다. 남계리 들판은 항공사진으로 촬영을 하면 한반도 지형을 닮은 꼴로 나타난다.
하얀 물억새꽃이 가을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춘다. 억새의 물결은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가 임진교를 지나고 군남홍수조절지까지 이어진다. 동이리 주상절리는 한국의 리틀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러도 손색을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답다.
<동이리 주상절리 갤러리>
'국내여행 > 임진강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발 늦은 월동준비 (0) | 2015.11.02 |
---|---|
심봤다!-모래밭에서 고구마를 캐다 (0) | 2015.10.21 |
시월의 텃밭 풍경-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는 계절 (0) | 2015.10.16 |
비온 뒤의 동이리 코스모스길 (0) | 2015.10.02 |
기러기들이 'V'자형 편대를 하는 이유 (0) | 2015.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