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에서 고구마를 캐는 느낌은 마치 모래 골짜기에서 사금을 캐내는 것 같은 풍요로움을 줍니다. 이곳 금가락지 모래 당에 고구마 농사를 지은 지 벌써 세 번째입니다. 이렇게 푸실푸실한 건조한 땅에서 주렁주렁 열려주는 고구마를 보면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단지 고구마 순을 모래 땅속에 푹푹 찔러 두었을 뿐인데 이처럼 주렁주렁 열려주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고구마를 보면 어쩐지 고향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푸근해 집니다.
오늘(10월 17일) 고구마를 캐는 것을 거들어 주기 위해 고향친구 응규가 왔습니다. 그리고 큰 아이 영이도 전철을 타고 왔습니다. 고구마는 서리가 내리기 전에 캐내야 합니다. 서리를 맞으면 상하기 쉽고 보관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함께 고구마를 캐다 보니 아득한 옛날 추억으로 되돌아갑니다. 그 시절 고구마를 캐서 방 윗목에 우리를 만들어 가득 채워 넣고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밤에 화롯불에 고구마를 구어 먹던 생각이 납니다.
창문 밖에는 흰 눈이 시그락 사그락 내리고, 문풍지 사이로 바람이 윙윙 들어왔었지요. 그러나 화롯불에 둘러 앉아 고구마를 묻어 놓고 옛날이야기를 들려 주시던 어머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온 몸이 훈훈해지곤 합니다. 고구마가 다 익을 때가 되면 인두로 화롯불을 뒤적거려 재 묻은 고구마를 건져내어 뜨거운 고구마를 손으로 호호 불어 가며 먹던 때가 그리워집니다.
뜨거운 고구마를 입에 넣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먹다 보면 입천장이 데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맛이 어찌나 좋던지 자꾸만 먹고 싶어집니다. 고무마로 온 몸을 데운 겨울밤에는 추운 줄도 모르고 잠속으로 빠져 들어가곤 했지요.
“심봤다!”
“금봤다!”
호미로 살살 모래땅을 헤집다가 팔뚝처럼 큰 고무마를 캐낼 때에는 고구마 뭉치를 높이 쳐들고 한마디씩 외칩니다. 너무나 뿌듯하고 즐거운 시간입니다. 수확의 기쁨이란 이처럼 너무나 큽니다.
모래밭에서 캐낸 고구마를 마루에 옮겨다 놓고 아내는 고구마를 골라내기 시작했습니다. 자연농사를 짓다보니 굼벵이들이 고구마를 상당히 많이 갉아 먹었기 때문입니다. 50여 평에서 캐낸 고구마를 박스(15kg)에 담아 보니 8박스 정도가 나오는 군요.
해마다 고구마를 주변의 지인들과 나누어 먹습니다. 금년에도 박스에 담은 고구마를 나누어 먹기로 했습니다. 먼저 농사를 함께 지은 응규에게 1박스, 집주인인 병용 아우에게 1박스, 광주의 큰처남과 처제, 그리고 목포의 막내처남에게 각각 1박스를 보냈습니다. 나머지는 우리가 먹지만 금가락지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상당부분 나누어 주곤 합니다.
마침 다음날 병용 아우가 친구 가족과 함께 금가락지를 방문하여 아우에게 1박스를 실어 주고, 함께 온 친구에게도 한 봉지를 담아 주었습니다. 농사를 지어 나누어 먹는 즐거움은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곤 합니다.
우리 집은 아침 식단에는 거의 고구마가 올라옵니다. 고구마는 섬유질이 많아 변비에 좋고, 카로틴이나 칼륨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야맹증과 고혈압에도 좋다고 합니다. 생고구마를 자르면 그 자리에서 하얀 점액이 나오는데, 이것이 변비를 막아줍니다. 섬유질이 배변을 촉진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정장 작용과 피로회복, 식용증진에도 한목을 하고 있지요.
고구마를 박스 양족에 구멍을 내어 신문지를 깔아가면서 층층이 담아놓고 거실에 놓아두면 고구마가 상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 예날 방안 윗목에 보관하듯 거실의 차가운곳에 놓아두고 이 겨울 하나씩 꺼내어 굽거나 삶아서 먹을 생각을 하니 저절로 마음이 행복해 지는군요.
"여보, 내일 아침에는 햇고구마를 먹겠네요?"
"그래야지요. 가뭄속에 큰 고구마가 아주 맛있어 보여요."
다음날 아침 식탁에는 어제 캔 고구마가 올라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보니 저절로 군침이 흘러내렸다. 고구마를 한숫가락 떠서 김치에 말아 한 입 넣으니 맛이 그만이다.
"바로 이맛이야!"
"정말 밤처럼 맛이 있네요."
고구마를 한 입씩 넣고 아내와 나는 마주 보며 씩 웃었다.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