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독일3]기억하라! 기억하라!

찰라777 2005. 10. 31. 09:42

 

기억하라! 기억하라!





“기억하라! 기억하라! 1989년 11월 9일을…”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서 있는 나는 그날의 함성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장벽이 무너지던 날, 텔레비전엔 동과 서를 가로막던 브란덴부르크 문에 사람들이 미어터질 듯 이어지며 통일의 기쁨을 절규하고 있었다.

철의 장벽대신 인간의 장벽이 들어 선 듯한 그 때의 장면이 생생히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베를린을 동서로 가르는 기준점이 되었던 브란덴부르크문엔 장벽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아무리 튼튼한 장벽도 사람의 마음을 막을 수는 없는 것. 그러나 이 문을 중심으로 아직 사람들의 마음의 벽은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서독 쪽은 윤기가 흐르는데 동독 쪽은 아직도 황량하고 여기 저기 건설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다.

아테네 신전의 문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프러시아시대의 개선문이었던 브란덴부르크 문 위엔 승리의 4두마차가 여전히 앞으로 진군을 하고 있건만 골이 깊어진 인간의 마음과 경제적인 부의 차이, 문화, 습관… 이런 것들이 아직은 세월을 필요로 하고 있나 보다.

그래도 독일인들은 우리에 비하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상에 단 하나 남아있는 남과 북의 장벽! 그리고 같은 민족끼리, 아니 생이별을 한 친족끼리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슬픈 세월을 보내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더욱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 같다.

어수갑을 아는가?

그래서일까? 베를린은 아직도 나에게 있어서 어둠의 도시다. 정치적인 문제로 숱한 간첩사건을 배출했던 베를린은 어린시절부터 ‘어둠의 자식들’이나 넘나들던 도시로 기억케 했던 것. 솔직하지 못한 위정자들의 정치적인 역사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여러분은 ‘임수경’이란 인물은 기억해도 ‘어수갑’이란 사람은 기억하기 어려우리라. 어수갑! 그는 임수경이 북한으로 가는 길에 다리를 놓아 주었다는 사실하나로 간첩으로 몰려 18년 동안 고국의 땅을 밟아보지 못했던 인물이다.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베를린에 도착한 임수경을 맞은 어수갑은 그녀에게 밥을 차려 주고 배웅을 해주며 함께 네 시간을 보냈다. 그 네 시간으로 인해 그는 '임수경 방북사건'의 배후조종자가 되었고, 정부는 그에게 간첩이라는 멍에를 씌어 18년 동안이나 그를 이국 땅에 유배를 시켜 버렸다.

1981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1999년 귀국을 하여 국정원의 조사를 받고 비로소 망명객의 신세를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50세가 넘은 그는  ‘베를린에서-18년 동안 부치지 못했던 편지’란 에세이집을 발간하여 그때의 암울했던 시절을 담담히 이야기 하고 있다.

 

"래디칼(radical)하게, 하지만 익스트림(extreme)하지 않게."


내가 해야할 일은 철저하게,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집단 이기주에 가려  비합리적인, 극단적인 주장만을 목소리 높여 외치기만 하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 사회라는 것.  어떤 일을 하던 그 뿌리를, 근본을 놓치지 않고 철저히 보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래디칼하게 임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오늘날 집단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우리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평화를 향한 곰돌이들의 합창

 


 

 

베를린은 이렇게 암울한 사건만 기억나게 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사회주의 이론의 창시자인 마르크스가 있고, 철학자 헤겔이 있으며, 원자폭탄을 발견한 아이슈타인이 있고,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던 손기정 옹의 정신도 숨쉬고 있다.

 

그러나 장벽은 허물어 졌지만, 사상의 얼음은 무너진 장벽 뒤에 여전히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가까운 운터 덴 린덴(Under den Linden:보리수 나무아래라는 뜻)의 정원엔 때마침 평화를 기원하는 곰돌이들의 이벤트가 열리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출품한 곰돌이 인형이 국가의 특색을 새기어 가을 하늘을 향해 지구촌의 평화를 기원하는 행사라는 것.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르며 평화를 외치는 곰돌이 사이를 아내와 나는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끼어 다니며 철없는 아이가 되어 본다. 이렇게 곰돌이 사이를 끼어 돌아 다니듯 장벽이 없는 자유와 평화, 철책선이 없는 대한민국은 언제나 오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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