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으로 가는 기차
오후 5시 47분. 베를린에서 드레스덴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
스르르 레일 위를 미끄러져 출발한 기차는 옛 동독의 땅을 쏜살같이 내달린다.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려다가 기수를 반대방향으로 돌리기로 했던 것.
금 새 정들었던 베꼽 민박집의 젊은 주인아주머니의 서운한 표정이 클로즈업되어 차창에 꽂힌다. 베를린은 나에게 특별한 무엇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베를린 장벽, 브란덴부르크의 문, 카이저 빌헬름 교회, 체크포인트 찰리… 동과 서를 가로막던 냉전의 벽들이 차창 밖으로 사라져
간다. 마음의 벽을 허물면, 봄볕에 얼음이 녹듯이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들 터인데 … 아직도 남북의 창을 가로막는 차가운 벽은 무엇일까?
갑자기 설봉호를 타고 금강산을 갔던 북한의 풍경이 답답하게
창밖에서 밀려온다. 정해진 숙소, 길, 관광지, 밀랍 인형처럼 철조망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어린 북한병사… 같은 언어, 풍습, 단일민족의
정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분단된 조국의 모습을 세상 밖에서 바라보는 심정은 참담하다. 6인석으로 된 좌석에 앉아 구동독의 밤풍경을 바라보며
드레스덴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그런 상념에 젖어든다.
우리가 드레스덴으로 가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그것은 라파엘로의 그림 한 점을 보기위해서다.
-베를린시 오스찬호프 역에서 열리는 가면무도회
드레스덴은 베를린에서 기차로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엘베강변에
자리 잡은 옛 작센왕국의 영화가 피어났던 인구 50여 만 명의 드레스덴은 예술과 문화의 도시다. 우리나라 경주에 해당하는 유서 깊은 도시랄까?
18세기 전성기를 구가했던 아우구스트 대왕시절 호화롭고 웅장한 건축물이 다투어 지어졌던 왕궁과 교회는 1945년 2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어버렸던 회색의 도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