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카를교 스케치
인생은 스케치와
같다?!
카를 교는 낭만의 다리다. 아마 프라하에 온
모든 사람들은 아름다운 이 다리를 걷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볼타바 강을 가로 질러 구 시가지와 프라하 성을 연결하는 카를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 석조다리다. 다리의 난간을 따라 도열해 있는 30여개의 동상은 하나하나가 멋진 예술품이다.
“다리 위를 거니는 당신이
오늘따라 더 아름답게 보이네.” “에고, 쉰 세대 여성한테 못할 소리가 없군요.”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청춘아닌가?”
"마음이사..."
유유히 흐르는 볼타바
강 위에 세워진 유서 깊은 카를 교를 걷다가 보면 누구나 로맨티스트가 되고 만다. 다리 위의 풍경이 그렇게 만든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이상한 음악상자를 밀고 다니는 노인…
그 모든 풍경이 정감이 간다. 파리 센
강변의 다리, 루체른의 카펠 교보다 나는 프라하의 카를교가 훨씬 마음에 든다. 인간적인 냄새가 묻어나기 때문이다.
“자, 여기를 만져 보세요. 이 청동조각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 .” “정말요?” “그럼, 그러나 그 소원은 절대로 남에게 말을 해서는 안 된대.” “우와~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반질반질하군요.”
기독교 성인 30인의 성인상중 유독 사람들이
몰려있는 동상이 있다.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으로 카를4세의 주교를 지낸 성인인데 왕의 비리를 알게 되어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그 동상 바로
밑에는 청동조각이 있는데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반질반질하다.
“여보, 영화 한 컷을 찍고 싶지
않소?” “영화라니요?” “저기, 저 아래 토머스와 테레사가 서 있던 자리에서… "
"여기도 좋은데 하필이면 다리
밑까지..."
"우리들의 여행을 다리 밑에서 스케치 해보자는
거야.” “스케치?”
"인생은 스케치와 같대."
나는 아내를
억지로 다리 밑으로 끌고 내려갔다. 그리고 다리위에서 멀거니 블타바 강을 내려다보고 젊은 친구를 불렀다. 그는 기꺼이 우리들의 촬영 스텝이
되어준다. 어이, 고마워! 사진을 찍어주고 다시 다리위로 올라가는 프라하의 젊은이에게 손을 흔드니 그도 싱겁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카를교는 영화 ‘007 시리즈’를 비롯하여 각종영화와 CF촬영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너무 더러워요. 여기 더 있고 싶지 않아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요.”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거짓의 삶과 더러운
애정행각을 벌이는 프라하에 증오를 느끼며 우리의 여주인공 테레사는 안개낀 볼타바 강에서 토마스의 품에서 울먹인다.
불량품 같은 바람둥이 남편,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토머스를 바라보며 안개
낀 카를교 밑에 서서 테레사는 오열한다. 오오, 나의 테레사 울지 말아요.
“나는 바람둥이 토머스가 싫어요.” “그래도 그는
오이디푸스 정신을 이어 받은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아닌가?” “잘도 둘러 부치는 군요.” “오이디푸스처럼 체코의 공산당원들도 눈을
뽑고 회개해야한다는 잡지사의 글을 끝까지 철회 하지 않았던 뼈대 있는 사람 아니요.” “오이디푸스나 누구라도 하여간 바람둥이는 싫어요.”
여자는 누구나 참을 수 없는 남자들의 가벼움을 싫어한다. 그러나
토머스는 이 다리에서 테레사의 복받치는 오열의 표정을 보고 자신의 삶을 참회한다. 그리고 마침내 테레사의 소망을 좇아 보헤미아 지방 시골로
내려간다.
농사를 지으며 오랜만에 인간다운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토마스와 테레사. 그러나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토머스와 테레사는
함께 살던 농부들과 읍내로 가서 춤을 추고 놀다가 다음 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즉사를 한다.
밀란 쿤데라는 말한다. 인생은 스케치와 같은
것이라고… 어떤 결단이 올바른 것인가를 절대적으로 검토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들의 인생은 어떤 비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체험한다. 최초로, 준비 없이 체험한다.
이는 연습도 해보지 않고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와 같다. 하지만 삶을
위한 최초의 시연이 이미 삶 자체라면, 삶은 어떤 가치가 있을 수 있는가? 이러한 근거에서 삶은 언제나 스케치와 같다.
쿤데라는
다시 말한다. ‘스케치’ 또한 맞는 말이 아니라는 것. 스케치는 언제나 어떤 것에 대한 초안, 어떤 그림의 준비인 데 반하여 우리들 삶의
스케치는 무(無)에 대한 스케치로 그림 없는 초안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밀란 쿤데라의 이 생각 옳다는 것을 실감한다.
우리들의 여행도 준비가 없는 스케치와 같다. 아내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어찌 배낭하나 걸머지고 지구촌을 전전하리라고 미리 스케치를 했겠는가?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마치 여행이 우리의 삶처럼 밑도 끝도 없는 스케치를 하며
다니고 있다. 그러나 이 여행에 대한 스케치는 없었다.
* Copyright by
ch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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