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저 노인들처럼 한번 포옹을 해볼까? 하하.”
“어휴,
아서욧! 대낮에… 정신 나갔어요?”
대낮에 안겨줄 사람이 따로 있지.ㅎㅎ... 우리는 다시 미로처럼 생긴 고성의 산책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서쪽 정문을 통해 프라하 성으로 진입한다. 푸른 제복을 입은 근위병들이 밀랍인현처럼 서있다. 푸른 제복은 영화 ‘아마데우스’
의상 디자이너가 디자인 한 것이란다. 아마데우스의 상당부분을 프라하에서 로케를 했는데, 하벨 대통령이 아마데우스 의상 디자이너를 특별 초청하여
체코 군인들의 정복을 디자인하게 했다는 것.
“성문 위 저 조각상이 섬뜩하군요.”
“아마 죄진 거
있나보지.”
▲프라하 성 정문 입구. 문 위의 석조상이 위협적이다.
성문 양쪽에는 칼과 몽둥이로 사람을 찌르고
후려치는 석조 조각상 두개가 몸서리칠 정도로 위협적이다. 저항하는 두 청년을 향해 사정없이 내려치고 찔러 죽이는 조각상은 그리스 신화 타이탄
상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는데, 합스부르크 왕조가 체코를 지배하면서 반란을 일으키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조각이라고 한다.
성안에 진입을 하니 많은 관광객이 붐비고 있다. 프라하 성은 세계 최대의 성으로 기네스 북에 올라 있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길이
570미터, 넓이 128미터로 그 안에 왕궁과 성당이 들어서 있다. 인구 120만 명의 도시에 한해 수천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프라하는
소매치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이문이 대통령 궁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니...
성의 일부는 대통령 관저로 이용하고 있어 정문을 위시하여 근위병들이 마네킹처럼 서 있는데, 매시 정각마다 근위병 교대식을 볼 수
있어 심심치 않는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성 한 쪽에 체코 국기를 달아 놓은 곳이 대통령 집무실로 볼품이 없다. 삼엄한
경계와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다른 나라 대통령 궁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개방적이고 국민과 가까이 하려는 모습이 놀랍다.
대통령관저 왼쪽에 있는 마티스의 문으로 들어가니 제2궁정으로 이어지고, 바로크 양식의 분수대가 나온다. 광장 왼쪽에 위치한 건물은
‘프라하 성 회화전시관’으로 유럽 바로크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데 따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오른 쪽에는 ‘신성 십자가 예배당’으로 각종 기념품
등을 판다.
▲ 과연 [百塔의 도시]답게 프라하의 스카이라인을 찌르고 있는 성 비트성당의 웅장한
첨탑
“히야! 저 탑 좀
봐요!”
"이래서 프라하는
'백탑의 도시'라고 하는군."
하늘을 찌르는 탑이 백 개, 천 개라는 프라하. 제3궁정에 들어서니 거대한 첨탑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프라하 성의 하이라이트인 성 비트 성당(Katedrala sv. Vita)이다. 14세기에 카를 4세의 명령으로 착공하여
20세기(1929년)에 와서야 비로소 완공한 세기의 건물이다. 창공에 빛나는 첨탑이 말없이 성당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발 딛을 틈이 없이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마치 로마 바티칸에 있는 베드로 성당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와! 천정이 엄청 높아요!”
“거대한 창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신비롭군!”
프랑스 고딕 양식의 웅장하고 화려한 이 성당은 신비감을 자아내게 하기 위해 천정을 높게 하였다는데, 20세기 초에 체코
미술 거장들이 제작했다는 스테인드글라스의 긴 창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천장이 실내를 압도하고 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실내 장식과 높은 천장은 신비감을
자아내고...
우리는 다리도 쉴 겸 성당 아예 주저앉았다.
어디선가 성가가 들려온다. 성가는 높은 천장에 부딪치며 실내를 휘감아 돈다. 소프라노의 높은 음성이 천장을 나는 듯 가늘게 울려 퍼지더니,
바리톤의 굵은 음성이 바닥에 길게 깔리며 성당 가득히 휘감아 돈다. 천상의 소리가 이럴까?
눈을 지그시 감고 성가 소리에 취한 듯 앉아 있으니 슬슬
졸음이 온다. 그냥 앉아서 몽상이나 했으면 좋겠는데. 카프카도 이곳에 앉아서 몽상을 했을까? 프라하 성은 카프카의 소설무대라고
하는데... 카프카는 이 성의 어느곳에서 졸면서 그의 소설 '성(城)'을 구상했을까? 몽상가인 그였으니 틀린말은 아니렸다. 모든 글과
동화는 판타지 같은 몽상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아무데서나 앉으면 자는 것이 나의 버릇이다.
좋은 버릇이자 아내에게 핀잔을 받는 나쁜 버릇이기도 하다.
▲성당 바닥에 앉아 성가를 듣고 있자니 졸음이 실실 오려고
하네...
“당신 또 잠들려고 그러지요. 그만 일어나요.”
날 좀 한 숨자게 내버려 두지. 그러나 아마 내버려 두면 난 정말로 잠들고 말거다. 이를 지레 짐작한 아내가 팔을
잡아끈다. 우리는 성당을 나와 구왕궁을 거쳐 황금소로로 이어지는 뒷골목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