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노르웨이9] 요정의집과 인형의 집-베르겐을 떠나며

찰라777 2004. 4. 19. 00:58
☞ 108일간의 세계일 주 배낭여행 여정도



그리그의 "요정의 집 Troldhaugen"
□ 요정의 집, 인형의 집

플뢰옌 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기차역 근처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갔다. 그리그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오슬로로 가는 버스시간은 아직 도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오슬로로 가는 19시 30분 버스표를 이미 구입을 해놓고 있었는데, 기차로 갈 것인가 버스로 갈 것 인가를 망설이다가 값이 싼 버스를 선택했던 것. 기차는 우리 두 사람에 1300크로네(약 21만원)이었고, 버스는 이보다 훨씬 싼 960크 로네(약 16만원)이었다. 그러나 기차는 7시간이 걸리고, 버스는 11시간정도가 걸린다. 어차피 밤을 새우기는 마찬가지이므로 5만원의 거금 을 절약하기 위해 우리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어느 교통수단을 이용하던지 우리는 스칸 레일 패스를 아끼기 위하여 티켓을 구입해야만 했다. 5일짜리 스칸 레일 패스는 코펜하겐에서 베르겐까지 오는데 벌써 이틀을 까먹어 버려, 오슬로에서 머나먼 노르웨이 북단 나르빅까지 갔다가, 다시 스웨덴의 스톡홀름까지 가려면 알토란같은 패스를 아껴야만 했다. 이곳 베르겐에서 오슬로로 가는 것이 나르빅까지 가는 것보다는 거리도 훨씬 가깝고 교통비용도 싸게 먹힌다.

아침에 무거운 짐은 코인로카에 맡겨놓은 상태였다. 비가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는 베르겐의 거리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마침 오늘 이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시내의 거리엔 자동차도 사람의 행보도 매우 뜸하게 보였다. 한자동맹시대의 중세기의 거리 모습, 그대로의 시대에 서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베르겐은 1년에 3백일이 넘게 비가 내린다고 하니 과연 비의 도시다. 구두 속으로 비가 더욱 많이 새어 들고 있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새 구두로 갈아 신어야 할 텐데, 노르웨이의 물가는 과히 살인적이어서 노르웨이를 떠날 때까지 꾹 참기로 했다.

어시장부근 카페에서
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이며
터미널에서 버스를 15분쯤 타고 가다가 운전수가 내려주며 손으로 가르쳐주는 언덕 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그리그의 집 ‘트롤하우겐 Troldhaugen’(요정의 집이란 뜻)이 나타났다. "트롤"은 보는 사람에 따라 선인이나 악인으로 변하는 숲 속의 요정이라고 한다. 그리그 는 42세가 되던 1885년에 이 풍광 좋은 언덕에 집을 짓고 그 집의 이름을 스스로 ‘트롤하우겐’이라고 불렀다.

입센의 ‘인형의 집’이 샘이 났던 것일까? 그러나 입센의 인형의 집은 주인공 노라가 아내이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려고 하는 새로 운 유형의 여인상을 그린 희곡이다. 자아를 찾아 가는 여성 ‘노라’의 일생. 어찌되었던 노르웨이의 문화는 입센의 ‘인형의 집’과 그리그의 ‘요정의 집’에 결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 집이 무슨 장난감처럼 보이네.’ 양지바른 언덕에 정사각형의 통나무 집으로 지어진 요정의 집은 꼭 인형의 집처럼 예쁘장하게 보였다.

그리그는 이 집에서 사촌 누이동생이자 부인인 니나와 함께 평생을 살면서 작곡에 몰두했다. 그녀는 그리그의 다정한 아내로서 뿐만 아니라 성악가로서 그리그의 가곡을 소개하는 우수한 안내자였다. 그리그의 오두막 작곡 실에는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피아 노, 의자들이 정겹게 놓여 있었다. 오두막 가까운 근처에는 작은 연주 홀인 ‘트롤 살롱’이 있는데, 그 집을 보는 순간, 그의 부드러 운 음악인 ‘아침Dawn"의 연주를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전원주택이라고 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걱정 말우. 이번 여행에서 귀국을 하면 이 보다 더 멋진 전원주택을 지어 줄 테니…”
“기대해 봐야겠네요. 호호호.”

Lake Lille Lungegardsvann
주변의 비오는 거리를 거닐며....
아내는 내가 말하는 의미를 알고 있었고, 나는 아내가 웃는 의미를 알고 있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나는 아내가 좋다고 하는 곳에 전원 주택을 지워주곤 했으니까…. 우리들의 전원주택은 스위스 티티시 호수변의 숲 속과 루체른의 카펠 교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로렐 라이 언덕이 바라보이는 라인강변에, 스코틀랜드의 인버네스 운하 호수 주변에,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로키마운틴의 그랜드 티톤 국립 공원의 숲 속에…. 가는 곳마다 아내를 위한 전원주택을 하나씩 지어 주었으니, 아내는 나의 말을 알아듣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아내를 위하여 정말로 눈앞에 보이는 그리그의 집보다 열배정도 적은 전원주택을 지어 줄 수 는 있을 지….

사실 우리가 여행을 떠날수록 우리들의 서울 집은 작아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벌이는 시원치 않은데, 여행중독증에 걸린 속알머리 없는 부부가 매년 여행을 떠나다 보니 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울의 집이 마무리 작이지더라도 우리들의 여행은 중단될 수 없을 것 같다. 만일 여행이 중단된다면 아내는 다시 아파 병원에 눕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런 추세로 가다간 마지막에는 남쪽나라 어느 언덕에 황토흙으로 집이나 한칸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여간 그 걱정은 나중에 할일이다.

트롤 살롱 서쪽 창문 너머 절벽에는 그리그 부부가 잠들어 있는 묘가 있다. 1907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4개월 동안 무려 30번이 넘 는 연주회를 강행 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베르겐으로 급히 귀환 하였으나, 그해 9월 4일 64세를 일기로 그이 음악의 생애를 마감하고 만다. 음악에 살다 음악에 간 그의 죽음이 거룩하게만 느껴진다.

죽은 자는 무덤 속에서 말이 없지만 지금 그리그의 집에서는 그의 마음과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시공을 초월한 공간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 그리그의 "요정의 집"이 아닐까? 아마 그리그는 그의 부인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모양이다. 부부애의 지극한 마 음까지도 노르웨이 국민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리그의 집을 떠나가는 이 우매한 중생의 눈에 는 그의 음악이나 생애보다도 기가 막히도록 아름다운 "요정의 집"이 더 마음에 가고 있으니, 석두는 어디를 가나 속물근 성을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다시 베르겐 역의 버스터미널로 돌아왔으나 아직도 시간이 2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춥고 피곤했다. 그러나 버스표를 사놓은 마당에 2시 간은 참으로 어정쩡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어시장 근처에 있는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찬비에 몸이 언 우리들은 따끈한 커피 한잔에 몸도 녹일겸, 준비한 빵으로 저녁을 해결하고자 함이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카페에도 손님이 거의 없었다. 앳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아가씨가 혼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카페의 분위기는 매우 작고 소박했다.

Lake Lille Lungegardsvann 분수
촛불을 켜 놓은 카페에는 벽 중간 사각형의 액자 속에 걸어놓은 그림들이 한층 카페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가방 속에서 준비해온 빵을 꺼내들고 뜨거운 커피를 조금씩 마시며 빵을 잘근 잘근 씹어 먹었다. 벽에 기대어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기다 보니 한결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그러나 버스시간을 받아놓은 기다림은 시간이 매우 더디게 갔다. 6시가 되니 카페의 주인은 웃으며 미안한 듯 말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었단다. 그러나 자기가 카페를 정돈할 때까지는 있어도 좋다고 했다. 돈을 더 벌기 보다는 자기네 생활을 즐기는 그들의 생활습관을 보는듯 하여 우리네 습관하고는 퍽 대조적인 모습을 실감하게되는 순간이었다.

카페의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밖이 그리 어둡지가 않았다. 우리는 Lake Lille Lungegardsvann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호 수 중앙에는 분수가 힘차게 뻗어 나오고 있었다. 또한 호수 주변에는 City Art Collection 등 아트 컬렉션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 는데 들어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이내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는 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19시 30분, 드디어 오슬로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루가 매우 길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오슬로에는 내일 아침 6시에 도착을 한다니 새우잠을 자면서 9시간 정도는 달려야 할 것 같았다. 우리들의 달리는 숙소, 버스에 등거리를 기대고 있다보니 베르겐 시가지를 체 빠져나가기도 전에 눈이 감겨왔다. 꿈속에 서나마 요정의 집을 지어볼까, 인현의 집을 지어볼까 ? 아디오! 베르겐이여!



[음악] Grieg, Edvard:Da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