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과 절망의 화가, 뭉크
“나는 두 명의 친구와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한줌의 우울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섰고, 너무나 피곤해서 난간에 기대었다. 흑청색의 피오르드와 도시 너머에는 불로 된 피와 혀가 걸려 있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었으나 나는 불안에 떨며 멈춰 섰다. 그리고 자연을 통해 울리는 커다랗고 끝이 없는 비명 소리를 들었다.”
에드바르트 뭉크. 그는 자신의 그림, ‘절규’를 그린 배경을 이처럼 토해냈다. 아마 뭉크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의 ‘절규’라는 이름은 기억하리라. 노르웨이에는 난센이나 아문젠 등 바이킹의 업을 잇는 탐험가들이 있는가 하면 뭉크, 비겔란 같은 천재화가나 조각가도 있다. 이들은 희곡작가 입센이나 음악가 그리그만큼이나 노르웨이의 이름을 빛낸 예술가들이다. 오슬로의 국립미 술관과 뭉크미술관을 차례로 찾은 나는 뭉크의 ‘절규’ 앞에서 한 가닥 전율을 느껴야 했다. 불로된 피와 혀가 걸려있는 흑청색의 피 오르드는 뭉크 자신의 불안과 공포, 아니 이 세상 인간들의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표현한 것이리라.
북구의 천재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는 1817년 12월 12일, 의사였던 아버지와 어지럼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에 감연 된 농부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뭉크의 나이 겨우 여섯 살 되던 해에 일곱 살의 형, 세살과 두 살, 11개월 된 어린 동생들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가 어린 나이에 최초로 경험했던 쓰라린 상처였다. 거기에다 부인을 잃은 그의 아버지는 이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했으나 신경질적인 광신자가 되어버린다. 거기에다가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꾸려오던 그의 누이 소피에 마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러한 집안 환경 속에서 자라난 그는 어린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의사가 되기를 바랐던 아 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유년시절의 어두운 기억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뭉크는 자신이 일 생동안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끊임없는 갈등에 사로잡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절망의 화가’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인간의 원초적인 생각 속에 내재해 있는 생명력과 절망 후에 예견되는 ‘희망’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뭉크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불안과 공포는 <절규>, <비명>, <흡혈귀>, <병상의 소녀>, <죽음의 소녀> 등에 상징적으로 표출되어 있다. 이런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공포의 지옥을 연상케 한다. 총기를 잃은 퀭한 사람들의 눈동자, 이글이글 타는 화탕지옥에서 막 건져 올린 듯 흐물흐물하고 뿌연 암모니아 속에 갇혀있는 모습처럼 모호한 형체. 캔버스의 분위기는 마치 북극권 하늘에 휘감 아 도는 오로라(극광)처럼 잡을 수 없는 환상들이 너울거린다. 척추가 없는 귀신들이 금방이라도 괴성을 지르며 캔버스에서 튀어 나올 것만 같은 느낌….
요람에서부터 죽음을 안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곤 했다는 뭉크! 그의 ‘절규’를 바라보다가 나는 갑자기 고흐의 그림 ‘까 마귀 나는 밀밭’(칼럼 11호-2004.1.31자)이 연상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한 세대를 절망으로 살아갔던 고독한 두 화가들의 그림속에서 나는 공통적인 그들의 마음의 파장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이 두 화가들의 우울한 감정들이 듯 나를 덮쳐 오는 듯하여 나는 덩달아 괜히 마음이 우울해졌다.
뭉크의 그림은 <마돈나>에서도 절망적으로 나타난다. 그의 마돈나는 더 이상 성녀 마리아가 아니다.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반쯤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약간 벌리고 있는 모습은 마치 성적인 엑스타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여인은 위로 치솟으며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적 황홀경에 빠져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고 있는 여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캔버스 가장자리를 돌고 있는 흐물 흐물한 선들과 좌측 아래편에 채 형성되지 않는 태아 같은 물체는 뭉크 자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것은 거대한 악마적 여성 앞에 위축되어 떨고 있는 남성과 무기력한 정자를 타내는 것. 즉, 사랑과 죽음은 서로 공존하여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이며, 여자는 남자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위험케 하는 죽음에 지배되는 동물이라는 것. 마치 뭉크의 이 화법은 의미는 다르겠지만 미켈란젤로가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에 공포에 질려있는 자신이 모습을 그려 넣은 기법과도 비슷하 다는 생각이 든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는 58점에 달하는 뭉크의 작품이 22 ․ 24번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뭉크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1963년에 세워진 뭉크미술관에는 1000여점이 넘는 그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뭉크의 죽음, 불안, 공포, 사랑… 그리고 정신분열에 대 한 두려움으로 표출된 그의 그림들은 그 자신의 ‘영혼의 고백’이다.
“답답해요. 이제 그만 나가요.”
뭉크의 공포와 절망어린 그림에 질린 듯 아내는 뭉크의 방을 빨리 나가자고 했다. 미술관을 나온 우리는 노르웨이의 또 다른 천재 예술 가 비겔란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는 프롱네르 공원으로 향했다. -찰라-
*그림1-화실의 Advard Munch(1863-1944)
*그림2-절규
*그림3-흡혈귀
*그림4-마돈나
“나는 두 명의 친구와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한줌의 우울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섰고, 너무나 피곤해서 난간에 기대었다. 흑청색의 피오르드와 도시 너머에는 불로 된 피와 혀가 걸려 있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었으나 나는 불안에 떨며 멈춰 섰다. 그리고 자연을 통해 울리는 커다랗고 끝이 없는 비명 소리를 들었다.”
에드바르트 뭉크. 그는 자신의 그림, ‘절규’를 그린 배경을 이처럼 토해냈다. 아마 뭉크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의 ‘절규’라는 이름은 기억하리라. 노르웨이에는 난센이나 아문젠 등 바이킹의 업을 잇는 탐험가들이 있는가 하면 뭉크, 비겔란 같은 천재화가나 조각가도 있다. 이들은 희곡작가 입센이나 음악가 그리그만큼이나 노르웨이의 이름을 빛낸 예술가들이다. 오슬로의 국립미 술관과 뭉크미술관을 차례로 찾은 나는 뭉크의 ‘절규’ 앞에서 한 가닥 전율을 느껴야 했다. 불로된 피와 혀가 걸려있는 흑청색의 피 오르드는 뭉크 자신의 불안과 공포, 아니 이 세상 인간들의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표현한 것이리라.
북구의 천재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는 1817년 12월 12일, 의사였던 아버지와 어지럼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에 감연 된 농부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뭉크의 나이 겨우 여섯 살 되던 해에 일곱 살의 형, 세살과 두 살, 11개월 된 어린 동생들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가 어린 나이에 최초로 경험했던 쓰라린 상처였다. 거기에다 부인을 잃은 그의 아버지는 이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했으나 신경질적인 광신자가 되어버린다. 거기에다가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꾸려오던 그의 누이 소피에 마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러한 집안 환경 속에서 자라난 그는 어린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의사가 되기를 바랐던 아 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유년시절의 어두운 기억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뭉크는 자신이 일 생동안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끊임없는 갈등에 사로잡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절망의 화가’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인간의 원초적인 생각 속에 내재해 있는 생명력과 절망 후에 예견되는 ‘희망’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뭉크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불안과 공포는 <절규>, <비명>, <흡혈귀>, <병상의 소녀>, <죽음의 소녀> 등에 상징적으로 표출되어 있다. 이런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공포의 지옥을 연상케 한다. 총기를 잃은 퀭한 사람들의 눈동자, 이글이글 타는 화탕지옥에서 막 건져 올린 듯 흐물흐물하고 뿌연 암모니아 속에 갇혀있는 모습처럼 모호한 형체. 캔버스의 분위기는 마치 북극권 하늘에 휘감 아 도는 오로라(극광)처럼 잡을 수 없는 환상들이 너울거린다. 척추가 없는 귀신들이 금방이라도 괴성을 지르며 캔버스에서 튀어 나올 것만 같은 느낌….
요람에서부터 죽음을 안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곤 했다는 뭉크! 그의 ‘절규’를 바라보다가 나는 갑자기 고흐의 그림 ‘까 마귀 나는 밀밭’(칼럼 11호-2004.1.31자)이 연상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한 세대를 절망으로 살아갔던 고독한 두 화가들의 그림속에서 나는 공통적인 그들의 마음의 파장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이 두 화가들의 우울한 감정들이 듯 나를 덮쳐 오는 듯하여 나는 덩달아 괜히 마음이 우울해졌다.
뭉크의 그림은 <마돈나>에서도 절망적으로 나타난다. 그의 마돈나는 더 이상 성녀 마리아가 아니다.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반쯤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약간 벌리고 있는 모습은 마치 성적인 엑스타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여인은 위로 치솟으며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적 황홀경에 빠져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고 있는 여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캔버스 가장자리를 돌고 있는 흐물 흐물한 선들과 좌측 아래편에 채 형성되지 않는 태아 같은 물체는 뭉크 자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것은 거대한 악마적 여성 앞에 위축되어 떨고 있는 남성과 무기력한 정자를 타내는 것. 즉, 사랑과 죽음은 서로 공존하여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이며, 여자는 남자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위험케 하는 죽음에 지배되는 동물이라는 것. 마치 뭉크의 이 화법은 의미는 다르겠지만 미켈란젤로가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에 공포에 질려있는 자신이 모습을 그려 넣은 기법과도 비슷하 다는 생각이 든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는 58점에 달하는 뭉크의 작품이 22 ․ 24번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뭉크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1963년에 세워진 뭉크미술관에는 1000여점이 넘는 그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뭉크의 죽음, 불안, 공포, 사랑… 그리고 정신분열에 대 한 두려움으로 표출된 그의 그림들은 그 자신의 ‘영혼의 고백’이다.
“답답해요. 이제 그만 나가요.”
뭉크의 공포와 절망어린 그림에 질린 듯 아내는 뭉크의 방을 빨리 나가자고 했다. 미술관을 나온 우리는 노르웨이의 또 다른 천재 예술 가 비겔란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는 프롱네르 공원으로 향했다. -찰라-
*그림1-화실의 Advard Munch(1863-1944)
*그림2-절규
*그림3-흡혈귀
*그림4-마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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