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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13]오슬로 사냥4 - 윤회의 조각가 비겔란!

찰라777 2004. 4. 28. 06:11

□ 오직 조각가의 외길을 걸어간 비겔란을 그리며...


나는 비겔란 조각공원에서 일순간 한 발자욱도 옮기지 못하고, 그 무엇엔가에 홀려 정지된듯 그냥 머물고 있습니다. 마치 윤회의 굴레 를 벗어나지 못하듯 비겔란의 손끝에 이끌려 공원의 한 귀퉁이에 서서 조각군상들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과연 '나는 어디로 와 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이 화두의 물음에 나는 항상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습니다. 한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개미 체바퀴 돌 듯 울안에 갇혀 버리는 이 마음.... 평생을 끌과 돌과 함께 보낸 비겔란은 이 어리석은 중생의 마음을 알아줄까요?


끌 하나를 들고 평생을 돌을 쪼아 댔을 그를 생각하노라니 왠지 지금도 망치를 든 그가 저만치서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 지고 있습니다. 그와 나는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길래 나의 생각을 이토록 묶어 놓고 있을까요?

그의 영혼은 지금쯤 어디에서 떠돌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는 다시 태어나서 이 세상 어디에선가 또 다시 끌과 망치를 들고 돌을 쪼아대고 있을까요? 내가 태어 나기전 몇 해 전에 그는 금생을 마감하고 또 다른 윤회의 굴레로 들어갔지만, 그의 체온이 느껴질듯한 돌 조각 앞에 서 있는 나는 그가 남처럼 느껴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대한 칼럼을 한번이라도 더 쓰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비겔란 조각공원의 하일라이트
인간 군탑 모놀리트>

피오르드의 나라 노르웨이. 험한 자연과 기후를 헤쳐 나가기 위하여 배를 만들고 넓은 바다로 진출해야만 했던 바이킹의 후손들! 그러 나 내가 지금 가고 있는 노르웨이는 험상궂은 바이킹의 나라로만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 결코 잘못 된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그리그의 고향 베르겐에서부터 시작된 노르웨이 여행은 ‘인형의 집’으로 여성 해방을 부르짖은 입센이라는 입지전적인 극작가가 있 었고, 이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독, 절망을 화폭에 담았던 뭉크가 있었으며,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일생을 끌로 조각을 해왔던 비겔란 이라는 숨겨진 보석 같은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노르웨이를 방문하기 전에는 미처 자세히 알지 못했던 일들이었습니다.


구스타프 비겔란! 그는 일생을 끌 하나로 대역사를 이루었던 오로지 한길을 걸어간 조각가입니다. 그는 1884년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조각가 B.버그슬리엔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조각수업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정부의 장학금으로 코펜하겐에서 조각 공부를 한 그는 노르웨이로 돌아와 어렵고 힘든 예술가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는 입센, 그리그 등 초상을 제작하는 등 인물조각에도 남달리 뛰어난 감각을 발휘합니다. 그는 <아벨기념상> 모형콘테스트에서는 상을 받지 못하였지만, 많은 지지자의 도움으로 대작을 완성하기도 합니다.


오슬로에서 활동을 하던중 중, 그는 1905년 노르웨이가 독립을 선포한 직후 국가의 부름을 받습니다. 그는 1906년부터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무려 40년간이나 오슬로에 있는 프로그너 공원에 조각 군을 제작하는데 모든 힘을 쏟아 붓습니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10만평 의 부지에 오늘날 1년에 무려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비겔란 조각공원을 조성하는 대역사를 완성합니다. 그는 실로 전 생애에 걸쳐 조각 하나에만 몰두한 예술가였습니다.


"I was a sculptor before I was born. I was driven and lashed onward by powerful forces outside myself. There was no other path, and no matter how hard I might have tried to find one, I would have been forced back again."
-Gustav Vigeland-

그 자신이 말한바와 같이 그는 태어나기 전서부터 조각가였고, 자신을 밖으로 내몰아 오직 한길로만 스스로 채찍질하며 걸어갔습니다. 그 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오직 조각이라는 경지를 터득하기 위하여 온 힘을 기울였던 그는 마침내 121명의 인간군 탑-모놀리 트를 중심으로 한 비겔란 조각공원이라는 대업을 완성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나는 중세 르네상스 시대 신의 경지에서 조각을 하였다는 이탈리아의 천재조각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다비드> 상이나, <생각하 는 사람>등으로 명성을 날린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의 작품도 익히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비겔란 의 윤회사상을 담은 조각 군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이상으로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 제인 증오, 질투, 고독, 투쟁, 생로병사 등을 테마로 윤회하는 인간군의 모든 모습을 이 넓은 공원의 공간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넓은 공원에 펼쳐져 있어 마치 갇힌 인간의 마음을 들과 하늘로 훨훨 날아가게 하는 것 같아서, 명성이라는 것 때문에 실내에만 갇혀 있는 다른 조각가들의 작품보다 훨씬 야성적이고 자유로운 느낌을 받게 되어 더욱 감명이 깊습니다. 또한 비겔란 조각 공원의 모든 길은 역동과 공상,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간군 탑의 모노리트로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조각품이 누드로 된 작품들이지만 전혀 로맨틱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오직 한길을 걸어온 천재조각가의 놀라운 감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각가의 외길을 걸어온 비겔란!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는 생각을 하며 나그네는 북구의 로댕, 비겔란의 인간군 탑을 떠나 또 다른 길을 갑니다. 이미 금생의 껍질을 벗고 다른 윤회의 길을 가고 있을 그를 생각하며, 그의 영혼이 담긴 조각들을 아래에 담아 보 았습니다.
- 찰라 -




















<나는 일순간 무엇엔가 홀린듯 한 발자욱도 옮기지 못하고
비겔란의 영혼과 체온이 느껴지는 조각군들 앞에 꼼짝없이 서
있어야만 했다. - 오슬로의 비겔란 조각공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