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노르웨이14]오슬로 사냥5 - 거리의 방랑자

찰라777 2004. 4. 30. 07:14

□ 칼 요한 거리의 방랑자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아팠다. 유스호스텔의 방에 스팀을 넣어주지 않아 춥게 잤더니 감기가 오려고 하는 모양. 여행 중에 몸이 아프 면 끝장이다. 건강해야 여행도 다닐 것이 아닌가? 서울에서 준비해간 아스피린 두 알을 먹고 감기가 잠재워지기를 기도했다.

그래도 유스호스텔의 아침은 단풍으로 물든 숲 속에서 노래하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있어서 좋았다. 오늘은 모든 짐을 챙겨들고 나가야 한다. 장기여행을 떠난 자는 짐을 풀고 싸는 데 도사가 되고 만다. 우리도 어느 듯 짐을 싸는데 도사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오늘밤 ‘오로라’를 보기 위하여 북쪽으로 가는 긴 기차여행을 해야 한다.

트램을 타고 오슬로 역으로 간 우리는 큰 배낭을 코인박스에 맡겨두고 보도(Bodo)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했다. 우리의 최종 종착지는 오로라가 가장 많이 출현한다는 “북의 파리”라고 알려진 트롬세(Tromso)까지 가는 것이지만, 노르웨이 철도는 일단 보도에서 끊어진 다. 그 위로는 워낙 지형이 험해서 철도를 개설하지 못하고 있다.

보도까지 가는데도 직행열차는 없다고 역무원이 말했다. 일단 트론다임(Trondheim)으로 가서 다시 보도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 한단 다. 나는 23시 05분에 출발하는 트론다임 행 열차와 트론다임에서 다시 보도로 가는 열차를 예약했다. 스칸레일 패스를 사용하는데도 예약비 82크로네를 지불해야 했다. 저녁 7시 이후에 출발하는 열차를 이용하면 다음날 24시까지 풀로 패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호랑이 어금니 이빨 아끼듯 아껴온 패스를 오늘 밤 한번 사용하고자 한 것.

표를 예약하고 우리는 오슬로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기가 막히다는 둘리자매의 말을 듣고 그 곳으로 걸어갔으나, 오르간 연 주는 매주 수요일만 열린다고 하여 허탕만 치고 돌아섰다. 또한 둘리자매의 정보에 의하면, 높이 588m에 이르는 TV타워에 올라가 오슬로 시를 바라보면 경치가 죽여준다고 하여 오슬로 역에서 지하철 4번을 타고 다시 1번을 갈아타고 오슬로 교외에 있는 전망대로 갔다.

메트로의 1번철도 변에 있는 단풍잎은 지금까지 보아온 노르웨이 단풍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웠다. 그러나 전망대로 가는 메트로 역에 내리니 비가 억수로 쏟아져 우리는 전망대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오늘은 이래저래 헤매는 날인가 보다. 다시 전철을 타고 되돌아 온 우리는 국립극장 역에서 내렸다. 밖으로 나오니 다행히 빗방울이 가늘어져 있었다. 거리에는 예의 공작 분수가 날개를 편 듯 아름답게 뿜어 나오고 있었다.

공작새 분수를 바라보며 우리는 칼 요한 거리를 따라 왕궁으로 갔다. 왕궁의 넓은 들에는 말을 탄 칼 요한이 근엄한 자세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왕궁 뒤에는 왕궁공원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매일 1시가 되면 근위병 교대식이 이곳 왕궁 앞에서 행해진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왕궁의 거리는 한적하고 쓸쓸했다. 다시 칼 요한거리로 나온 우리는 현대 예술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어느 아트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비도 피할 겸 다리도 쉴 겸.

전시장으로 들어가니 그야말로 의미를 알 수 없는 현대 조각과 미술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더욱이 전시장 홀에는 천장에 둥그런 원을 그리며 5개의 채널로 된 모니터가 무언가 상영을 하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 천정 밑에는 히피 머리를 한 남녀 젊은이 들이 벽에 기대거나 아예 바닥에 누워서 TV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마치 외계에서 온 인간들처럼.

아내와 나도 전시장을 돌아보다가 그 모니터 화면 밑에 앉았다. 처음에는 벽에 기대서 보다가 졸음이 슬슬 오자 그만 바닥에 눕고 말 았다. 화면에서도 역시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장면들이 상영되고 있었다. 이 거리의 방랑자는 그만 피곤이 겹쳐 잠이 들고 말았던 것. 한참을 지났을까? 아내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일어나 보니 사람들은 여전히 바닥에 누워있었다.

“노벨 평화상 시상식 장소는 안 가볼 거예요?”
“아, 오슬로 시청? 비가 멎었나?”

한잠을 자고 나니 한결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목은 아팠다. 저녁 11시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밖 으로 나오니 비가 다행히 멎어 있었다. 거리의 방랑자가 된 우리는 다시 칼 요한 거리를 지나 오슬로 시청이 있는 바닷가로 걸어 나갔 다.

* 사진설명
- 국립극장 근처의 공작분수
- 칼 요한거리(뭉크의 그림)
- 오슬로 역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