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노르웨이12] 오슬로 사냥3-북구의 로뎅 비겔란

찰라777 2004. 4. 27. 01:50

□ 북구의 로뎅, 구스타프 비겔란을 찾아서...




□ 환경과 예술의 완벽한 조화--비겔란 조각공원

국립미술관을 걸어 나오니 바로 오슬로 대학이 마치 어느 궁전의 건물처럼 다가왔다. 파란 눈을 한 북구의 남녀 학생들이 활기차게 대 학의 뜰을 거닐고 있었다. 오슬로 대학의 중앙에는 ‘아울라’ 강당이 있다. 우리는 국립극장 앞에서 비겔란 조각공원으로 가는 트램을 탔다. 트램을 타고 그림 같은 오슬로의 거리를 지나가는 데, 화려한 분수가 마치 한 폭의 공작 날개처럼 기지개를 펴고 눈에 확 들어왔다.

“어머! 저 분수… 너무 아름답군요.”
“저녁에 와 보면 더 아름답지 않겠소.”
“아하, 조명이 있을 테니까. 그럼 공원에 갔다 오는 길에 다시 들려요.”
“누구 말이라고 거역을 하오리오.”



프롱네르 공원 정문 앞에서 내린 우리는 우선 파란 잔디 밭 양옆에 도열 하듯 서 있는 온통 푸른 공원의 나무들에 감탄사가 나왔다. 이제 막 단풍이 들려고 하는 나무들 사이로 멀리 오벨리스크 하나가 어두운 하늘을 향하여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비겔란 조각공원은 10만평의 부지에 40년에 걸쳐 완성된 환경과 예술이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된 조각공원이다. 완성하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너무도 완벽하게 조성된 도심 속의 조각공원! 나는 일찍이 이처럼 환경과 예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원을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본 기억이 없다.

“공원 자체가 정말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보이는 군!”
“그러게 말이에요. 어쩌면 저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있을까요?”

북구의 짧은 해가 벌써 숨을 거두려고 하는 공원은 점차 석양노을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한 줄기 바람이 마치 뭉크의 그림 ‘절규’처 럼 얼굴을 훑으며 지나갔다. 구름이 점점 태양을 가리며 주위를 어둠 속으로 몰아갔다. 한적한 가을의 저녁나절은 공포감마저 들게 하 고 있었다. 북유럽의 잔디밭은 서리가 내리는데도 한 여름의 초원처럼 푸르다. 그 푸른 잔디밭을 한 참을 걸어가니 거울 같이 맑은 인 공호수가 주위의 풍경을 고요히 담은 체 나타났다.

그 인공호수 위로 ‘비겔란의 다리’가 있고, 비겔란의 조각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다리위에 세워진 조각들은 어른과 아이들이 여 러 가지 형태로 어울리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마치 도열하듯 다리의 양쪽에 서 있는 이상한 조각들을 바라보면서 아내도 알 수 없 는 야릇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포즈를 취했다.

다리를 지나니 광장 가운데 분수대가 나오고, 분수대의 중앙에는 6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벌거벗은 채로 불끈거리는 근육을 자랑하며 원형의 돌 접시를 떠 떠받치고 있다. 분수대에는 미로 같은 모자이크 무늬가 거미줄처럼 새겨져 있다. 분수대 전체가 하나 의 거대한 조각처럼 느껴진다.



□ 끝없는 윤회를 그리고자 했던 비겔란

분수대를 뒤로 하고 위쪽으로 올라가니 거대한 조각기둥이 검은 하늘위로 우뚝 나타났다. 비겔란의 영혼이 깃든 모놀리트(Monolith)다 ! 사각의 정상에 올라선 아내는 우선 그 돌기둥을 보고 놀라고,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아름다운 단풍 숲을 바라보며 다시 놀랐다. 이 모놀리트는 비겔란이 14년만에 심혈을 기우려 완성한 최대의 걸작품이다. 무게 260톤, 높이 17.3m의 거대한 화강암 기둥에는 121명의 남녀노소가 서로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모습을 좀 떨어져서 보면 마치 수많은 애벌레들이 정상을 향해 아귀다툼을 하며 기어오르는 모습과도 흡사하다. 밀치고, 끌어올리 는 모습, 절규하며 슬픈 표정을 짓고 얼굴, 화가 난 듯한 표정도 보인다. 비겔란은 이 화강암 기둥 하나에 인간의 욕망과 투쟁, 슬픔 과 고독을 녹여내듯 조각해 넣고자 했던 것. 이 돌기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인생살이 의 고달픔을 한눈에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모놀리트 주위에 사방 열두 줄로 조각군상들이 계단을 따라 둘러져 있는 데, 그 모습은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슬픔, 고독, 사랑, 희망, 고통과 번내… 갖가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누드조각들은 말을 걸면 대화를 할 것처럼 보이고, 만지면 체온이 느껴질 것만 같다. 우리는 그 조각들의 체온을 느껴 보기라도 하듯 만지고 조각들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적나라하게 조각을 할 수가 있을까요? 마치 돌 속에서 체온을 느낄 것만 같아요!”
“한 예술가의 집념이 이다지도 집요하게 돌 속에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네!"



우리는 맨살처럼 느껴지는 조각상에 기대어 사진을 찍었다. 공원의 맨 끝자락에는 일곱 명의 사람들이 몸을 앞과 뒤로 연결하며 둥글 게 원을 만들고 있다. 윤회의 굴레를 표현한 것일까? 인생의 끝없는 윤회! 비겔란은 입구의 난간에 탄생을 뜻하는 조각들에서부터 시 작하여 험한 세파를 헤쳐 나가는 인간의 다양한 군상, 그리고 죽음 다음에 오는 윤회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희로애락과 생로 병사를 이 넓은 공원에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의 윤회를 담은 조각품. 비겔란 조각공원을
거니노라면 마치 인생의 끝없는 윤회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보, 저기 그 할머니들이 보여요!”
“어디… 정말 둘리 자매네!”

어둠 속에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두 여인은 분명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만났던 둘리 자매였다. 스타킹처럼 꽉 조여진 바지를 입은 멋쟁이 언니 할머니와 머리가 하얀 동생 할머니도 우리를 보더니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 우리들의 어두운 여행길에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아르헨티나에서 온 천사들. 코펜하겐에서 밤중에 유스호스텔을 찾아 헤매고 있던 우리들에게 따뜻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던 그들을 우리는 이번 여행길에 만난 첫 번째의 천사라고 명명했던 것.

우리는 그들을 어찌한 인연으로 이곳에서 다시 만났을까? 인간의 윤회는 과거와 현재, 미래 삼세에 끝없이 이어지는 것일까? 둘리자매 와 우리들은 각각 지구의 반대편인 북반구에 와서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있으니…. 손을 흔들며 숲 속으로 사라져 가 는 둘리자매! 이제 둘리자매도 조각의 군상들도 공원의 화려한 단풍나무들도 점점 어둠 속에 묻혀가고 있었다. -찰라-


환경과 예술이 가장 완벽한 조형미를 이루고 있는 오슬로의 비겔란 조각공원
모놀리트의 오른쪽으로 사라져 가는 두 점은 코펜하겐에서 만났던 둘리자매다(2003.10.7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