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노르웨이18] 아내여, 눈물을 거두어 다오!

찰라777 2004. 5. 6. 00:08

▣ 아내여, 눈물을 거두어 다오!


아케르스후스 성에서 내려온 우리들은 콘겐스 거리로 걸어 나갔다. 다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였다. 칼 요한 거리까지 걸어 나오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우리 저기 맥도날드 점으로 들어가요.”
“그럴까. 와, 그런데 빅 맥이 저렇게 싸나?”

오슬로 역 인근에 있는 맥도날드 점 간판에는 ‘빅 맥 1세트 13 크로네.’ 라고 쓰인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먹은 빅 맥은 하나에 30크로네였는데… 하여간 아직도 기차시간은 멀었고, 비는 오고, 배도 고프고 하니 저녁을 먹으며 쉴 곳이 필요했다.

그 맥도날드 집에서 커피 한잔과 13크로네(약 2천원)짜리 빅 맥을 시켜 저녁을 때운 우리는 한 참을 그 곳에서 쉬었다. 마침 맥도날드 집에는 사람들이 뜸했다. 아이들과 친구들에게 편지도 쓰면서…

그렇다고 그곳에 마냥 있을 수도 없고 하여 다시 오슬로 역으로 온 나는 PC방을 찾았다. 아내는 피곤하다며 그냥 프렛 홈의 의자에 앉아 있겠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도 서버로 전송도 하고, 메일도 체크할 겸, 나는 물어물어 PC방을 찾아 나섰다.

오슬로의 역사는 매우 크다. 그러나 PC방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물어 겨우 찾은 PC방은 아내가 앉아있는 바로 2층에 있었는데, 엉뚱하게 다른 곳을 찾아 헤매다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생각났다.

PC방으로 올라가며 내려다 보니 아내는 그 의자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나는 2층의 PC방으로 간다는 것을 알리려고 하다가 바로 밑에 있으니 별일 없겠지 생각하고 그냥 올라갔다. 그런데 나중에 그게 큰 화근이 될줄이야!

젊은 PC방주인은 매우 친절하게 내가 서버로 사진을 전송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내가 찾아간 유럽의 PC방들은 디지털 사진을 전송할 수 있도록 장치가 되어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오랜만에 사진을 전송하게 된 나는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을 전송하는데, 전송 속도가 너무나 느렸다.

좌우간 우리나라처럼 속도가 빠른 인터넷을 아직까지 찾아본적이 없다. 우리민족의 대명사가 '빨리빨리'가 아닌가! 하여간 빠른 데는 우리나라를 딸아올 나라가 없는 것 같다. IT산업이 꽤 발전한 노르웨에가 이 지경이니 동 유럽이나 남미는 어떨까? 눈에서 안질이 날것만 같았다.

나는 열차시간 출발 20분전까지 전송을 마치고 아내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20분이면 같은 역사건물에 있는 라커로 가서 배낭을 찾아와 충분히 차를 탈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그러나 있어야 할 아내는 그곳에 없었다.

‘어? 큰일 났네. 짐도 찾아야 하는데….’

그러나 아무리 이곳저곳을 찾아 다녀도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 갔다. 아내는 아이쇼핑을 하기를 좋아 하므로 혹 가까운 기념품 가게에 있나 하고 뛰어 다니며 가게들을 뒤져 보아도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이럴수록 침착 해야지. 음… 처음 아내가 누워있던 장소에서 기다려 보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아내가 누워 있었던 의자로 가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저쪽에서 아내가 역시 두리번거리며 놀란 토끼처럼 오고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10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열차는 11시 5분에 출발 한다.

“여보, 여기야!”

내가 소리를 지르자 아내는 나에게로 오더니 그만 울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내의 울음을 달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코인박스까지도 꽤 시간이 걸렸다. 거의 뛰다 시피 하여 라커로 달려간 우리는 허겁지겁 열쇠로 라커를 여는데, 왜 이리 열쇠가 잘 열리지 않는지…. 아내는 계속 울고...

큰 배낭을 꺼내 등에 매고 다시 트론드헤임으로 가는 프렛 홈을 찾아 뛰었다. 우리가 프렛 폼에 도착을 하니 트론드헤임으로 가는 기차는 이미 와 있었다. 기차가 바로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우리는 겨우 차에 오를 수 있었다. 휴우~ 숨 돌릴 사이도 없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으나 아내는 아직도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핸드 폰도 없고, 얼마나 막막하고 놀랬으면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자기 서름에 겨워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것처럼 소리없이 울어만 댈까? 하여간 그래도 기차는 탔고, 기차는 23시 05분 정시에 오슬로 역을 출발했다.

“여보, 미안 하오. 난 당신이 그 자리에 그냥 그대로 있을 줄 알고….”
“….”

아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내가 PC방 장소를 가르쳐 주기만 했더라면 피를 말리는 이런 헤프닝은 없었을 것을…. 아내는 열차시간 30분전부터 나를 찾아 다녔다고 하는데, 그만 서로 길을 엇갈리며 헷갈리게 찾아다녔던 것.

배낭여행자가 명심해야 할 일. 유럽의 대도시 역은 매우 크다. 그리고 대부분 국제간의 열차가 다니므로 매우 혼잡하다. 그러니 우리처럼 단 둘이 배낭여행을 할 경우에는 절대로 서로 헤어지지 말고 딱 붙어 다녀야 한다. 찰떡처럼... 앞으로 러시아와 동유럽도 계속 기차여행을 해야 할 판인데, 정신 바짝 차리자. 여차하면 이억만리 타국의 객지에서 국제미아가 되어 버릴 수도 있으니...

‘아내여, 눈물을 거두어 다오! 모든 게 다 내 탓이로소이다.’

기차는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둠 속을 뚫고 계속 북으로 북으로 달려만 가고 있었다. 어둠속으로 묻혀가는 오슬로여 안녕!


* 사진 설명
- 위 쪽 : 13크로네 짜리 빅맥을 먹었던 맥도날드 집 풍경
- 중 간 : 오슬로 역사의 PC 방 젊은 주인. 꼭 외계인를 방불케 한다.
- 아 래 : 맥도날드의 벽에 기대어 피로를 풀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