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노르웨이 21] 오로라를 위하여!- Bodo의 하늘 밑

찰라777 2004. 5. 24. 00:13


★ 오로라를 위하여 !






아내여! 아직,
잠자리에 들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피곤할지라도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별을 벗 삼아
달 빛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에 펼쳐지는
환희의 쇼를 보기 위해서는
우린 좀더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오로라!
듣기만해도 그만 오르가즘이 느껴질 것만 같은 환희의 단어다.
우리가 북구의 그 머나먼 길을 힘들여 찾아 온 것은 오직 오로라를 보기 위하여서였다. 그러나 보도의 하늘엔 아직 오로라가 출현하지 않고, 둥근 달만 희멀겋게 떠 있었다.

“여보, 추워요! 이제 그만 들어가지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얼어 죽겠어요.”

보도 역사와 붙어있는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고 한 참을 걸어서 간 보도의 항구. 아내와 나는 차가운 바닷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항구의 거리를 서성거렸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부두의 확 트인 공간이 적격이라는 호스텔 종업원의 말을 좇아 왔건만, 하늘엔 여전히 오로라의 국물도 보이지 않았다.
역무원의 말도, 유스호스텔 종업원의 말도, 보도의 거리에서 만난 어느 아가씨의 말도 오늘밤에 분명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오로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저기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 마시고 잠시만 더 기다려 보자고.”
“커피는 아까도 마셨는데요.”
“그렇다고 그냥 포기를 할 순 없잖소.”

밤이 깊어지자 추워진 항구에는 사람들도 뜸해졌다. 버스정류소에 붙어있는 카페 가까이 가보니 카페의 문은 이미 닫혀져 있었다. 출렁이는 파도에 불빛이 일렁이는 항구의 밤. 하는 수 없이 아내와 나는 쓸쓸한 거리를 걸어서 다시 역전에 있는 유스호스텔로 돌아왔다. 종일 기차를 타고 온 아내는 이제 피곤하고 지쳐서 샤워를 한 후 잠을 자겠다고 하며 공동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노르웨이 철도가 끝나는 도시 보도 Bodo. 북위 68도에 근접해 있는 보도는 북부관광의 주요 거점 도시다. ‘바위로 된 섬들의 녹지’ 란 뜻을 가진 이 도시는 인구 3만 5천명의 상업도시로 노르웨이 남북을 연결하는 요충지다. 오로라가 자주 출현하는 지역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를 양쪽에 차고 밖으로 나갔다. 거리엔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추위에 덜덜 떨며 자정이 넘도록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결국 허사였다.

“10월 이후에는 오로라는 이 지역의 어느 곳에나 자주 출현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전혀 나타자니 않을 때도 있지요. 그런 날은 억 세게 운이 없는 날이 되겠지만… 그럴 땐 여기보다 더 북쪽에 있는 로포튼 제도나 트럼세로 올라 가 보세요.”

보도로 오는 열차에서 역무원이 나에게 해 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호스텔의 종업원은 다른 곳으로 갈 필요도 없이 바로 호스텔 밖에서 보면 수시로 그 신비한 빛을 볼 수 있다고까지 했는데… 어쨌든, 아직 오로라의 신은 나타나지 않고 나를 애타게 하고 있었다.





★ ‘여명의 신’ 오로라!

오로라! 오로라란 무엇인가?
그저 사진만 바라보아도 오르가즘이 느껴질 것만 같은 오로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오로라 Aurora는 라틴어로 ‘새벽’이란 뜻이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여명의 신 ‘아우로라 (Aurora, 그리스 신화의 에오스)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우로라는 태양의 신인 아폴로의 누이동생이다. 오로라의 공식 명칭은 북반구에 나타나는 ‘오로라 보레알리스’(여명의 신을 닮은 북녘의 빛), 남반구에 나타나는 ‘오로라 오스트랄리스’(여명을 닮은 남녘의 빛)다.

극광(極光)이라고 부르는 오로라는 북반구에서는 노던 라이트 Northern Light 라고 부른다. 오로라는 왜 나타나는가? 오로라는 태양 표면에서 날아온 전기를 띤 입자가 지구 자기장의 상호작용에 의해 극지방 상층 대기에서 일어나는 대규모의 방전 현상이다.

지구는 거대한 자석으로 남북으로 자기장을 만들고, 태양은 양성자와 전자로 이루어진 입자(이온화 가스)를 방출한다. 입자는 자기장을 따라 북극과 남극으로 하강하는데, 주로 고도 100~500km 상공에서 대기와 충돌하면서 기체(원자와 분자)를 이온화 하는 과정에서 가시광선과 자외선 및 적외선의 빛을 낸다. 우리는 바로 이 가시광선 영역에서 오로라를 보게 된다는 것.

오로라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은 그만 해두자. 여명의 신이시여, 그만 잠에서 깨어나 나에게 당신의 빛을 보여주소서! 그러나 그렇게 갈구했던 오로라를 나는 아직 보지 못하고 북극권의 하늘아래 서성거리고 있었다 . 찬 서리를 털며 홀로 서성거리는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다시 풀 수 없는 화두가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나는 방황을 하고 있었다.

허지만 하늘의 쇼는 무한한 감동을 주어서 모든 고통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고 하는데…. 병이란 무엇인가? 아픔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치유 할 수 있는 길은 또 무엇인가? 병은 한 동안 고통을 잊어버릴 때 치유될 수도 있다고 한다. 혹 아는가? 하늘의 쇼를 정신 없이 보는 동안 심신의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면 아내의 병이 나아버릴 수도 있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지…

오로라 대신 차거운 하늘에 덩그러이 떠 있는 달만 실컷 바라보다가 호스텔로 들어오니 아내는 잠에 취해 있었다. 아내와 남편. 남자와 여자. 그리고 오로라! 그게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나는 잠자리에 들었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나는 겨우 눈을 붙일 수가 있었다. ‘여명의 신’ 아우로라는 아직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있었다.

강 건너 산 아래에 오로라가 휘황하게 빛을 발 하고 있었다. 무수한 환희가 쏟아지는 하늘! 그 하늘 아래에 백설 공주처럼 하얀 여인 이 양팔을 벌리며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하얀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황홀했다. 확실히 저건 ‘여명의 신 오로라야, 여명이 신이 날 부르고 있어.

나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가지 말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 속엔 여인들에게서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질투 같은 것이 엿보였다.

“강 건너에 오로라를 보러 가고 싶은데…”
“오로라는 여기서도 잘 보이는데요.”
“허지만 가까이 가서 보는 게 더 좋지 않겠소.”
“그럼 혼자 다녀오세요.”
“아니, 어찌 나 혼자 간단 말이요? 함께 가야지.”

나는 아내의 손을 붙잡고 강을 건너려고 안간 힘을 썼다. 그러나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내의 힘이 어찌나 센지 한 걸음도 앞으로 나 갈 수 없었다. 여명의 신은 여전히 하얀 미소를 지으며 그런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로라의 광채는 여러 가지 색깔로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파란색, 빨강색, 노랑색, 오렌지색, 초록색, 보라색… 마치 거대한 무지개가 하늘에서 용틀임을 하며 종횡무진을 하고 있는 모습과도 같았다. 여명의 신은 오로라의 빛깔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로 변하 며 여전히 요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 나는 가자, 아내는 가지말자, 가자, 가자말자...를 한 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나는 그만 발을 헛디뎌 차가운 물에 빠지고 말았다. 앗, 차가워! 고함을 지르고 눈을 떠 보니 꿈이었다.

“당신, 아침부터 웬 소리를 그렇게 질러대요.”
“응… 꿈에 오로라를 봤질 않겠소.”
“오로라에 완전히 반한 모양이구려.”
“………”





★ 오로라를 위하여

당신은 아직
여명의 신, 오로라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요.

당신은 아직
이 벅찬 환희의 빛을 감당하기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밤하늘에 펼쳐지는 환희의 쇼는
그렇게 아무나 쉽게 보는 게 아니라오.

허지만....
나, ‘여명의 신’ 오로라는
당신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겠소.

북극이던 남극이던
당신이 다시 찾아오는 날

당신의 친구인 별들과 함께
그대의 창가를 비추이리라.

여명의 신이시여!
경솔한 나를 마음껏 꾸짖어 주소서.

나는 아직 그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를 않소이다.

정화수로 몸을 씻고
천일의 기도를 한 후에
다시 그대, 여명의 신을 찾아오리다

오직, 오로라를 위하여....


여명의 여신은 아직 우리에게 오로라를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어찌 단 한번만의 방문으로 그녀가 펼치는 하늘의 쇼를 쉽게 보기를 원 한단 말인가? 다음을 기약하며 아내와 나는 나르빅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 짐을 챙겼다. -찰라-






☞ 노르웨이 여정도



* 빨간선 : 기 여행지(현재 트로다임을 지나 Bodo 로 가고 있슴)
* 파란선 : 앞으로 갈 여행지



* 사진: 오로라가 출현하지 않아 사진을 찍지 못한 대신, <오로라 사진 콘테스트> 2000~2003년 그랑프리 작품(northern-lights.no 참조)을 올립니다. 하기야 내가 사진을 찍었더라도 이만큼은 도저희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