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스웨덴4-스톡홀름] 술취한 트롤, 딸기코 트롤

찰라777 2004. 6. 26. 12:00

◐ 멍청한 트롤에 얽힌 이야기




* 키루나에서 산 트롤인형. 더벅머리와 딸기코가 인상적이다.


■ 트롤의 꿈

키루나 역 6시 51분. 스톡홀름 행 코넥스(CONNEX) 급행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슬슬 내려오는 키루나가 멀어져 간다. 얼음호텔도, 오로라도 사라져 간다. 스웨덴의 최북단 키루나에서 스톡홀름까지는 무려 16시간이 넘게 걸린다. 큰 배낭을 두개를 하나의 쇠줄로 묶어서 열쇠를 채운 다음 포터 칸에 집어놓고 우리들의 좌석을 찾아갔다. 오늘 밤도 기차에서 노숙을 해야 되니 눈을 붙일 자리를 잡아야 한다.

물론 좌석은 배정되어 있지만 쿠셋이 아닌 자리는 1인당 두개의 빈 좌석을 확보해야 그나마 새우잠이라도 잘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따라 보따리 장사인 듯한 흑인들이 열차 안을 메우고 있다.

우리들의 좌석은 2등실, 18열차, 83번, 84번. 그 좌석을 찾아 갔더니 마침 앞자리 두 개가 비어 있다. 얼씨구~ 운이 좋네. 아내와 나는 그 두 개의 자리를 다 차지하고 마주앉았다. 좌석 주인이 올 때까지 만이라도 편하게 앉아서 갈 속셈으로…

그런데 다음 역에서 그 꿈은 접어야 했다. 바이킹의 후예처럼 덩치가 큰 두 거인이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왔기 때문. 술 냄새가 확 풍기는 두 거인은 자리를 비워주는 나를 보고 씩 웃으며 내려다본다. 동양의 이방인을 처음 보기라도 한 듯이…

“그 냥 앉아 계세요. 우리들은 잠간 다녀 올 때가 있으니.”

자신들의 배낭을 선반 위에 얹어 놓고 두 거인들은 어디론가 가 버렸다. 아마 술이 떨어진 모양. 기차가 한 시간 정도를 달려갔는데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아내는 오늘 산 트롤 인형을 손에 들고 어느 새 잠이 들어 있다. 그럼 나도 빈 의자에 가서 눈을 좀 붙여 볼까?

....갑자기 난쟁이가 되어버린 나는 어느 얼음 성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얼음 성 입구에 도착하니 어느 여인이 거대한 거인에게 겁탈을 당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그 여인은 아내를 닮아 보였다. 아니 아내였다.

“이 놈! 썩 물러나지 못할까?”
“넌 누구야. 죽고 싶지 않거든 물러나.”
서리의 거인처럼 생긴 그는 내 몰골이 우습다는 듯 깔깔거리더니 다시 그 여인한테 달려들었다.
“아, 안돼. 이 놈아!”
나는 가지고 있는 지팡이로 그 거인을 내려쳤다. 그러나 지팡이는 거인의 손에 잡혀 여지 없이 두 동강이가 나 분질러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거인의 손에 잡힌 채 공중회전을 몇 번 하다가 벽 쪽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아이고, 나 죽네!”


* 으리으리한 스톡홀름 역의 대합실 모습. 북유럽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도시답게 대합실도 휘황찬란하다.


■ 술 취한
두 거인


악을 쓰고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이거 별 꿈을 다 꾸는군. 잠시 후에 술 취한 두 거인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손에는 술병이 들려져 있었다. 아내는 여전히 의자에 누워 자고 있다. 나는 얼른 일어서서 자리를 그들에게 양보를 했다. 그들 자리니 양보도 아니다.

“이거... 미안합니다.”
“노노, 그냥 앉아도 돼요. 우린 다른 자리로 갈 테니. 히히.”

손에 든 보드카를 홀짝거리며 그들은 여전히 이상한 웃음을 웃어댔다. 그리고 우리들을 마치 어린아이 보듯 재미있어라 하며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마치 꿈에서 본 서리의 거인 같아 더럭 겁이 났다. 나는 무의식중에 세상없이 잠을 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당신들은 어디서 왔어요?”
“코리아에서…”
“와우! 코리아! 아이 라이크 코리언 풋볼!”

그들은 외모와는 달리 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게 사람을 함부로 의심을 해서는 안된다니까. 그들은 다시 낄낄 대며 술을 들이켰다. 그런데 정말 월드컵의 위력은 대단하다. 북유럽의 스웨덴도 축에 대한 열기는 뜨거운 모양. 월드컵 덕분에 코리아의 위상은 한층 올라간듯 하다. 그 화제를 올리면 모두 즐거워하니... 축구덕분에 나는 터키여행과 이집트여행도 매우 대접을 받으며 여행을 한적이 있었다. 아, 붉은 악마여! 영원하라...!!

“맥주 한잔 할 거야?”

조금 체구가 적은 친구가 맥주 캔을 내밀며 나에게 술을 권한다.

“아니요. 고맙소. 지금 난 감기가 걸려서 술을 마실 수가 없소.”
“오~ 예! 노 프로블램! ”

그들은 다시 술을 마시며 어디론가 사져 가 버렸다. 사실 나는 몸살 기운이 있어서 아스피린 두 알을 먹고 잠이 들었던 것. 아스피린 효과에다가 그 놈의 꿈 때문에 내 온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으으.... 지금 몇 시지요?”
“밤 12시가 조금 넘었네.”
“이제야 겨우…”

아직도 10시간을 넘게 기차를 더 타야 한다. 아내의 손에 든 트롤이 앙증맞게 보인다. 아무리 보아도 이상하게 생긴 놈이다. 이 인형은 난쟁이 트롤 모습이다.



* 16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내리니 방향감각이 없네! 꼭 바보 얼뜨기 같은 촌 뜨기 트롤을 닮았지요?


■ 멍청한 트롤

그런데 트롤은 거대한 서리의 거인 모습을 가진 놈도 있고, 요술쟁이 같은 난쟁이도 있다고 한다. 긴 코를 가지고 있으며, 등에는 혹처럼 거대한 살덩이를 지고 있는 거대한 괴물 같은 모습도 있다. 트롤은 재생능력이 뛰어나 상처를 입어도 곧 회복되며, 잘려나간 몸도 달라붙는다고 한다. (그런 트롤을 닮으면 좋겠는데..헤헤)

마법을 부려 몸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있고, 불사신처럼 강한 재생력을 가진다는 것. 트롤은 입센의 서사시에서는 ‘페르귄트’에 몽상가적 존재로 등장한다. 한편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는 어두운 숲 속에서 겁 없이 살인을 하며 살아가는 멍청하고 무서운 괴물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이런 트롤은 닮으면 안돼겠네!) 그러나 이 괴물 트롤은 햇빛을 받으면 돌로 변해버리는 약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트롤이야기가 나온 김에 트롤에 얽힌 허무맹랑하나 재미있는 전설을 하나 더 해보자. 트롤은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시골의 마녀급 정도로 전락하면서 서리거인들도 몰락하여 트롤로 전락되고 말았다는데…

하여간... 언제부터인가 트롤은 이브의 감춘자식들이라는 허무맹랑한 설이 떠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이브에게 어느 날 하느님이 찾아왔다. 이브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자식들을 하느님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브에게는 부끄러운 아이들(이브가 외도(?)하여 낳은 자식이란 말도 있다)이 몇 명 더 있었다는 것.

하느님이 이브에게 눈앞에 있는 아이들이 전부냐고 묻자, 거짓말 선수인 여인 이브는 내친김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이브가 숨겨놓은 아이들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느님은 에덴동산에서 사과를 훔쳐 먹은 이브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행실을 꾸짖으면서 숨겨놓은 아이들을 언덕이나 바위 속에서 숨어살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 그래서 트롤들의 모습은 바위색깔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인형들의 몸둥이도 한결같이 거무티티한 바위색갈이다. 그러한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트롤은 신의 혈통을 받은 신성한 자손이면서도 하느님을 증오해, 십자가나 교회를 보면 갖은 욕설과 험담으로 엄청난 증오를 퍼붓는 다는 것...


헤헤. 허무맹랑하지요? 허지만 유럽의 일부 사람들과 일본의 사이비 연구가들은 이 설을 정설로 믿는다고 하니 어불성설 같은 이야기 같지만 하여간 그러기에 더 재미 있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리라.

스톡홀름 역에 내리니 다음날 오후 4시가 넘었다. 마지막으로 써 먹은 스칸 레일 패스. 정말 긴 여행이었다. 플레트 홈에 내리니 술 취한 그 두 거인들이 역무원과 뭔가 다투고 있다. 내용인즉 가방을 잊어 버렸다는 것. 저런! 괜히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그들에게 손을 들어 이별의 인사를 건 냈다. 그들도 역무원과 싱강이를 벌이다가 나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저 아들, 정말 멍청한 트롤들처럼 보이는군!…”
“허지만 괜히 미안해요. 자리를 내어주어 편하게 왔는데…"
“누가 아니랬나? 허지만 그렇게 밤새 술을 퍼 마셔댔으니 가방 아니라 불알까지 잊어버려도 모를거 아니야.”
“당신은…”

다시 역무원과 다투고 있는 그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북유럽의 베니스 스톡홀름의 휘황찬란한 대합실로 걸어 나왔다. 16시간 넘는 긴 기차여행을 하고 나니 몸의 중심이 흔들리고 도대체 방향감각이 없다. 하하, 나야 말로 정말 멍청한 트롤이 아닐까? 이렇게 힘든 여행을 하고 있으니....


▲북유럽 여행 여정도




♬~ 작은 아바:A-Teen의 [Upside D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