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스웨덴6] '스톡홀름 신드롬'

찰라777 2004. 7. 16. 11:22

◐ 스톡홀름 신드롬

스톡홀름 게스트하우스의 잠못이루는 밤...



르네상스 양식 걸작으로 손 꼽히는 시청사.
매년 노벨상 수상식 후 축하 파티가 열리는 곳

물위의 도시 스톡홀름!
북유럽 수도 중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도시 중에서도 가고 싶은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멋진 도시다. 완벽한 복지제도, 인간중심의 도시환경, 스톡홀름의 상징인 시청사와 조약돌이 깔려 있는 구시가의 명소들, 그리고 돛단배가 미끄러져 들어가는 황혼녘 항구의 자태는 과연 ‘북유럽의 베니스’라고 불리 울만 하다.

발틱해와 마라렌 호수가 만나는 곳에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스톡홀름은 물위에 있기 때문에 '물위의 아름다움'이란 이름이 늘 따라다닌다. 자연환경이 깨끗해서 도시 한가운데서도 수영하고 낚시를 즐길 수 있으며, 주변에 2만4천개나 되는 아름다운 섬들이 있다.

나는 유르고덴 섬으로 가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 박물관인 스칸센(Skansen)공원의 낙엽 지는 길을 산책하고, 출항한지 불과 10분만에 침몰한 비운의 바사호에 대한 비밀을 캐물어 볼 것이다. 유서 깊은 감라스탄 지구로 가서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으며 중세기 바이킹의 역사에 묻혀 보고,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세르겔 지구와 르네상스 양식의 걸작품인 시청사의 화려한 황금모자이크로 뒤덮인 ‘황금의 방’(Gyllene Salen)으로 가서 18만 6000개의 모자이크와 대화를 나누워 볼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붙어 있느냐고…

그러나… 어두운 '4 No' 게스트 하우스의 밤은 길다. 누에코치처럼 사각의 2층 침대에서 잠을 청했으나 눈이 감겨지지 않고 자꾸만 잡념이 몰려온다. 완벽한 복지제도가 갖추어진 나라에 와서 지하실의 어두운 호스텔에, 그것도 남녀 20여명이 헝클어져 뒹구는 혼돈의 방에 누워있으니 자꾸만 이상한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더벅머리에 구레나룻 수염을 기른 영국에서 온 청년은 험상궂은 범죄자처럼 보이는가 하면, 조그마한 등을 켜고 책을 아까부터 책을 읽고 있는 이태리에서 왔다는 아가씨는 인형처럼 예쁘게 보인다.

그 터프한 털보와 책을 읽는 아가씨를 보자 문득 1970년대에 이곳 스톡홀름으로부터 전파되었던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신조어가 섬뜩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저 털보가 저 예쁜 아가씨를 인질로 잡았을 때 과연 제2의 스톡홀름 신드롬이 성립이 될 수 있을까? 또 부질없는 생각...

발틱해와 마라렌 호수가 만나는 위치에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북유럽의 베니스' 스톡홀름 감라스텐 지구.
‘스톡홀름 신드롬’의 내용은 이렇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서 강도사건이 발생 했다. 이 강도 사건에서 인질로 잡힌 여자는 오히려 인질범에게 애정을 느껴 그녀는 약혼을 했던 약혼자와 파혼까지 하는 사태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스톡홀름 신드롬’ 즉,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말이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처하면 나름대로 그 상황에 적응하려는 반사작용이 발생한다. 인질로 잡히는 것은 매우 갑작스럽고 강력한 스트레스다. 게다가 인질이나 경찰은 그 상황을 통제할 만한 힘도 없다. 그런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질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이런 경우에 첫째, 인질들은 자신들의 생사를 가늠할 수 있는 극한 상황에서 인질범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것을 고마워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온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둘째, 인질들은 자칫 잘못하면 더욱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들을 구출하려고 시도하는 경찰들에게 오히려 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셋째, 인질범들도 그들의 인질에게 동질적인 감정을 느낀다. 결국 인질과 인질범들은 모두 함께 고립되어 두려움을 같이 하는 ‘우리’라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것이 이른바 ‘스톡홀름 증후군’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나는 역마살이 낀 혼백처럼 지구촌을
방랑하는 넋 빠진 무전 나그네다...
여러분은 이 사람을 기억는가? 지강헌이란 인물을… 아마 없을 게다. 이미 지하에 묻힌지 10년도 넘었으니... 그러나 그 이름은 몰라도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란 말은 들어 보았으리라!

때는 1988년 10월, 올림픽의 열기가 한창이던 때다. 교도소 이감 중 탈주한 12명의 탈주범이 9일간이나 서울 전역을 누비다가 북가좌동 한 가정집에서 가족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하게 되는 데, 지강헌이란 인물이 이 인질범들의 두목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살 직전에 팝그룹 비지스의 ‘Holiday'를 틀어 달라고 청하고는 비지스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기 목을 그으며 권총자살로 죽어간다. 그가 죽어가며 목이 메도록 소리친 외마디!

“유전무죄 무전유죄(돈 있으면 죄가 없고, 돈 없으면 죄가 있다)!”

나는 MBC 수사반장을 통해서 그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 때 시인 지망생이기도 했다는 그가 우연히 대마초에 손을 댄 것이 계기가 되어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가 탈주한 원인은 10년의 형량이 20년으로 늘어나는 과중한 형량이었다는 것. 지강헌에게 잡혀 있었던 인질들도 그에 대해 차츰 인간적인 연민과 매력을 느꼈음을 실토했다. 이게 바로 한국판 ‘스톡홀름 신드롬’의 일종이다.

그 당시 ‘지강헌 사건’을 다루었던 MBC ‘수사반장’의 장면들이 허공을 스치고 지나간다. 너무나 리얼하게 클로즈 업 되었던 장면들이었기에 지금도 애틋한 장면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 '서머타임 킬러'도 뮤즈의 현란한 노래 '스톡홀름 신드롬'도 모두 이 중후군에서 파생된 같은 장르의 영화와 노래다.

‘무전 게스트 하우스, 유전 호화 호텔…' 하하, 지금 내 신세는 이렇다. 하필이면 북구의 아름다운 베니스 스톡홀름까지 와서 썰렁한 수사반장 극 장면을 떠올린담. 아이고, 내 신세야, 저 털보 때문에 스톡홀름의 첫 날밤이 갑자기 추워지는 구나. 에이, 잠이나 자자. 그런데 왜 이리 잠이 않오지.... '여행신드롬'에 걸려있는 아내는 잘도 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