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두어진 네프스키 대로. 러시아의 밤거리에선
갱이나 '스킨헤드'족을 조심해야
한다.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아요.
페테르부르크의 겨울 해는 매우 짧다.
3시인데도 벌써 거리가 어두워진다. 거리는 갑자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란 소설무대처럼 음침해진다. 러시아 인형을 산 뒤부터 우리 뒤를
따라다니는 가죽잠바 차림의 청년들이 몇 명 있었다. 그 중의 한 명이 내 배낭의 뒤를 손대는 것을 아내도 나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여보, 조심해요!” “알고 있어. 자, 상관 말고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으로 들어가자고.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이럴 때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갱들은 뒤를 돌아 얼굴을 보면 행패를 부리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엔 힘없는
아시아인들을 골라 폭력을 휘드르는 "스킨헤드"(극우 파시스트)드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들은 폭력을 행사하고도 경찰의 제지를 받지도 않는다는
것. 우리는 그들을 모른 척하고 우리는 잰 걸음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네프스키 프로스팩트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지하철
역에는 마침 퇴근길에 있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오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다다르자 그들은 입구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휴~ 한숨 돌리자. 러시아엔 대낮에도 갱들이 많다. 특히 동양인을 노리고 있으니 주위를 해야 한다.
우린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지나 센나야 역에서 내렸다. 센나야 역에는 ‘죄와 벌’의 주인공인 리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죄를 속죄하며 대지에 입을 맞춘 센나야 광장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곳에서 가까운 운하근처 노란색 건물 하숙방에서 3년간 머무르며 ‘죄와 벌’을 썼다고 한다.
혁명적인
사상을 가진 그는 프랑스 혁명가의 기록을 분석하는 서클회원이 된 그는 1849년 러시아 정부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총살
10분전에 황제의 칙명으로 징역형으로 감형 된 그는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4년간의 옥고를 치른다.
▲ 러시아
문학박물관 앞에서. 푸슈킨을 비롯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 러사아 문학가들의 초상화, 사진, 창작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그 후 그는 존속살해를 주제로 한 신과 인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대결시킨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탈고 한지 몇 달 뒤 세상을 떠난다. 그의 묘비에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중심사상이 된 다음의 성경구절이
새겨져 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도스토예프스키는 죽는 날까지 신에 대한 믿음을 추구한 삶을 살아갔다. 즉, 사람마다
자기 마음에 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는 육체적 생활을 거부하고 진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범으로 몰려
사형직전까지 갔었고, 가난한 소설가로 간질병 등 각종 병고에 시달리던 그는 죽어서 러시아의 거장 예술가들이 묻혀있는 네프스키 대로 끝에 있는
‘타프빈 묘지’에 작곡가인 차이코프스키, 무소르크스키, 문학가인 주코프스키, 가람진 등과 함께 평화롭게 쉬고 있다.
갱을
따돌리려고 하다가 우연히 ‘죄와 벌’의 무대에 서게 된 우리는 센나야 광장을 서성이다가 다시 지하철을 타고 네프스키 대로로 갔다. 위험을 느끼긴
했지만 여전히 네프스키 거리는 매혹적이다.
▲ 밤이 되면 추위와 함께 음산해지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네바강
다시 찾고 싶은 거리요, 오래도록 서성이고 싶은 거리다.
이는 아름다운 운하와 다리, 고풍스런 건물이 운치를 더해 주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예술이 숨쉬고 있기 때문이리라.
더욱이 우리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푸슈킨스카야’, ‘도스토예프스키스카야’ 같은 지하철역이 있는가 하면,
‘무소르크스키 극장’ 등 예술인들의 이름을 딴 지명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예술가들의 동상 앞에는 어김없이 꽃다발로 둘러
싸여 있다는 것 또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꽃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푸슈킨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숨결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도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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