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스트로이카! 그 이후 카츄사의
후예들은…
▲ 크렘린의 붉은 벽은 높기만
하다
크고 둥근 지붕, 붉은 깃발!
크렘린은 세계 공산주의 상징이 아니던가. 미국의 상징이 ‘화이트 하우스’, 즉 백악관이라면 소련의 상징은 ‘붉은 광장’과 ‘크렘린 궁전’이다.
‘크렘린’은 원래 ‘성벽’을 의미하는 러시아어다. 모스크바의 크렘린은 서서히 확대되어 차르(황제)의 성으로 번영하여 막강한 권력의 상징으로
변모되어왔다.
“드디어… 크렘린 궁까지 왔군!” “와, 그런데 성벽이 왜 그리 높아요?” “그러니까
크렘린이지.” “왠지 으스스 해요.”
페레스트로이카! 1985년 고르바초프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온 이 한마디가 공산주의를
무너뜨리는 힘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세계를 진동시킨 페레스트로이카의 열풍과 자유를 갈망하는 러시아인들의 염원은 붉은 철의 장막을 걷어
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동토凍土의 세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차디찬 침묵의 성으로만 각인되어 있는 모스크바의
크렘린은 이제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어두운 밤이 새고 나면 해가 떠오르듯 붉은 광장의 장막은 거두어졌건만 아직도 얼음 같은 분위기의 잔해는
여기 저기 남아있다.
톨스토이의 카츄사가 네프류토프를 애타게 기다리던 무대 모스크바. 유행가의 가사처럼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 가버린’ 카츄사의 첫사랑 네프류토프를 기다리던 무대는 이제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몸살을 하고 있다.
개혁의
지도자 고르바초프와 자유의 투사 솔제니친이 떠난 자리엔 천만 인구의 생존경쟁이 치열하게만 느껴진다. 카츄사의 후예들은 머나먼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블디보스톡까지 와서 다시 배를 타고 빵을 찾아 이곳 대한민국 부산 땅까지 물밀 듯이 오고 있지 않는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20년이 지난 러시아의 평민들은 오히려 먹고 살기가 힘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자유와 개혁을 갈구했던 러시아 서민의 대다수가 개혁의 주인공인
고르바초프를 싫어한다고 하니 아이러니컬하기만 하다.
▲ 여기가
크렘린으로 들어가는 입구래요!
모스크바 강가에 오각형으로 둘러쳐진 붉은 성벽은
높다. 성벽 밑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속이 훤히 드려다 보이는 미국의 백악관과는 퍽 대조적이다. 말없이 비밀에 싸인 듯한 사람을 두고
크렘린이라고 하는 별명을 붙일 만도 하다.
성벽을 따라 크타파야 탑 아래 있는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들고 탑 아래에 있는 수하물
보관소에서 120루블을 주고 소형배낭까지 맡겼다. 크렘린 안으로는 작은 가방도 들고 갈 수 없기 때문. 즉 무장 해제다. 크렘린 궁전으로 가는
길은 육중하고 길다. 트로이츠카야 탑을 지나니 마침내 둥근 지붕위에 붉은 러시아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이거,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군요."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
(계속)
▲크렘린 내부. 멀리 보이는 것은 트로이츠카야
탑이다.
* Copyright by challa
http://cafe.daum.net/skyearthtou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