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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23]붉은 광장의 붉은 영혼들

찰라777 2005. 10. 13. 07:42

붉은 광장의 붉은 영혼들

 

▲양파머리를 한 바실리성당의 아름다운 모습


잿빛 구름이 하늘…. 대통령관저 앞에 서있는 러시아 병사의 모습이 슬프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 건너편에는 우스펜스키 대성당 등 옛 러시아 제국의 대성당이 줄줄이 서 있다. 황금 빛나는 지붕은 양파를 잘 다듬어 놓은 듯 잿빛 하늘에 빛나고 있다. 신도는 보이지 않고 입장권을 확인하는 문지기만 있는 성당…. 재미없는 곳이다.

 

 

▲러시아 황제들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우스펜스키 사원

 

20세기 음모의 대명사로 불리던 크렘린 궁은 원래 목조로 만들어졌으나, 1363년 하얀 돌로 재건축되었다가 1872년에 나폴레옹의 침입으로 소실된 후 다시 개축된 것이다. 또 크렘린 궁 안에는 한번도 울려 본적이 없다는 무게 202톤의 세계 최대 깨진 종이 있고, 한번도 발사된 적이 없다는 세계최대 황제의 대포가 있다. 나라만 크고 가방만 크면 무슨 소용인가? 안에 있는 내용이 충실해야지…

그러나 이곳에는 구한말 우리의 슬픈 흔적도 있다. 1896년 우스펜스키 사원에서 니콜라이 2세 황제가 대관식 때 억지 우국사절로 대한제국의 민영환, 윤치호 일행이 이곳에 왔으나 대관식을 거행하는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야기인 즉 갓을 벗어야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들은 갓을 벗기를 거부하자 입장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꼿꼿한 그들의 영혼을 우스펜스키 대성당에서 보는 것 같다.

 

▲붉은 영혼이 감도는 무명용사 비 앞에서

 

성당을 나와 붉은 광장으로 간다. 붉은 광장으로 가기 전에 망토 같은 긴 코트를 입고 집총을 한 러시아 군인들이 무언가 행사를 하고 있다. 무명용사들의 영혼을 지키는 근위병들의 교대식이란다. 얼마나 많은 젊은 영혼들이 전쟁의 산물로 사라져 갔을까? 그러나 무명용사들은 성밖에 형체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

붉은 광장의 레님 묘가 있는 지역은 입장객수를 제한하고 있었다. 더욱이나 카메라 등 일체의 소지품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생각 끝에 내가 먼저 입장을 하고 돌아 나오면 아내가 그 다음에 들어가기로 했다. 카메라를 아내에게 맡기고 홀로 들어간다. 붉은 광장의 이별….

‘붉은’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크라스나야’라는 러시아 고어는 원래 ‘아름답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데, 왜 ‘붉은 광장’이라고 했을까? 이곳에 붉은 색을 띄고 있는 건물은 크렘린 성벽과 국립역사 박물관, 성 바실리 성당의 벽 외에는 없다.

그런데도 붉은 광장이라고 불리는 데는 구소련 시절, 5월 1일 노동절이나 혁명 기념일에는 붉은 색 현수막이 광장에 걸려 졌고, 러시아 사람들은 손에 손에 붉은 깃발을 들고 다닌 데서 유래된다.

광장 멀리 양파 머리를 이고 있는 성 바실리 성당과 종루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평화롭기 그지없어 알라 딘의 동화 속 같은 램프에 들어온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마치 백랍인형처럼 어두운 지하에 방부처리 된 채 누워있는 레닌의 시체를 본 순간 왠지 소름이 끼쳐 온다. 어두운 밀실에 유독 레닌의 시체 쪽에만 조명이 비추이는 시신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곳에는 스탈린과 역대 당서기장들도 잠들어 있고, 전나무 심어진 벽 아래는 10월 혁명의 순국한 노동자, 병사들의 묘도 있어 방문객으로 하여금 격동의 러시아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야심에 찬 나폴레옹이 불타는 크렘린을 등지고 철수하던 모습에서부터 페레스트로이카의 주역인 고르바초프, 대주가인 옐친, 그리고 KGB 출신인 현재의 푸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암투와 민중이 흘린 피는 결코 동화의 세계가 아니다.

 


 

잰 걸음으로 광장을 한바퀴 돈 후 아내에게 바통을 이어주고 나는 성 바실리 성당 출구 쪽에서 아내를 기다리기로 했다. 크렘린 궁 맞은편에 있는 ‘굼’ 백화점 앞길을 걸어가며 레닌

묘 쪽을 바라보니 황급히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궁둥이를 빼고 거의 달려가다시피 하는 아내의 모습에 절로 쿡쿡 웃음이나온다.

성 바실리 성당에서 다시 재회(?)를 한 우리는 성 바실리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름다운 바실리 성당… 8개의 둥근 지붕이 금빛 중앙 돔을 감사고 있는 불균형의 조화는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모든 아름 것은 그 이면에 슬픔이 숨어 있는 것일까? 완성된 성당의 아름다움에 너무 놀란 이반 4세는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건축가 포스토닉과 바르마의 두 눈을 뽑아버렸다고 하니 천재와 미인은 이래저래 박명의 운을 타고 났을까? 눈을 뽑아버리라고 명령하는 이반의 얼굴을 상상하니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끼친다.



▲붉은 광장

 

붉은 광장을 나온 우리는 성벽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붉은 벽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모스크바 강은 말이 없다. 이 모스크바 강은 S자 형으로 모스크바 시내를 관통하다가 ‘러시아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볼가 강으로 흘러간다.

한국의 10월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랗고 맑을 텐데… 잿빛 하늘에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하는 모스크바의 날씨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바람에 뒹구는 낙엽을 밟으며 우린 다시 예의 ‘비브리오테카 이메니 레니니 볼로비츠카야’라는 긴 이름의 역에서 레닌그라드 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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