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유대인지구 게토(Ghetto)에서
그들은 더 이상 나비를 보지
못했다!
세상에 영원이라는
것은 없다. 나는 그 사실을 젓 비린내 나는 유아기를 지나 소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알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절망을 한 것은 아니었다.
벽촌에서 태어난 나는 오히려 그 사실을 일찍이 알았기 때문에 희망을 잃지 않고 저 언덕을 바라보며 살아올 수 있었다.
호사다마.
또한 세상엔 어떤 행복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못한다. 자신이 손안에
있는 행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고 바라는 순간부터 불행은 시작된다. 오히려 손안에 있는 행복도 놓아버릴 때, 그 순간에 행복은 다시 찾아온다.
그 ‘순간의 행복’은 적어도 영원하다고 생각이 된다.
인생은 순간의 연속이 아닌가? 비록 행복한 일순간은 지중해의 거품처럼 사라져
버릴지라도 그 일순간 만큼은 영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그 일순간의 행복을 끌어안고 싶다. 인생이 만일 그러한 ‘일순간의 영원’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빛이 나겠는가? 세상은 어둠의 순간에서 빛의 순간으로 바뀌어 지고 말리라.
프라하의 유대인지구
게토(Ghetto)에 가면 그 ‘일순간의 행복’을 나비처럼 비상하며 살다간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다. 게토는 유대인 강제거주지역이다.
프라하 게토에는 두 곳의 시너고그(유대교회당)가 있다. 핀카소바 시너고그와 클라우소바 시너고그가 그것이다.
클라우소바 시너고그에는
‘일순간의 행복’을 영원처럼 살다간 유대 어린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가득 차있다. 이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체 테레진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마루타(생체실험대상)로 희생된 아이들이다.
죽음의 행간에서 그린 봄과 꽃, 나비와 새들, 창공을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는
그림, 미래를 노래하는 그림,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그림…, 꿈 꿈 꿈, 희망 희망 희망… 이 그림들은 우리나라에도 ‘테레진, 희망의 노래’,
‘…더 이상 나비를 보지 못했다’란 제목으로 출간된바 있다.
나는 프라하에서 버스를
타고 테레진 수용소까지 가서 그들의 그림을 보기도 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을 느끼게 하는 그림들이다. 희망에 넘친 이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영원한 행복’이 그들의 손안에 있었으리라.
부모와 격리되어 찬 바람이 이는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어린 생명들.
그러나 그들이 그렸던 것은 절망이 아니라 ‘일순간의 행복’을 '영원한 행복'으로 이어주는 희망의 나비와 새들 이었다.
그 누가 이 어린아이들의 행복을 짓밟을 권리가 있겠는가?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의 고사리 손등에, 부드러운 미간에, 그 누가 폭탄과
황금의 총탄을 날릴 권리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총성이 횡행하는 전쟁의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아이들은 행복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며, 미래를 향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어린 날 벽촌에서 내가 희망의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클라우소바 시너고그와 연결된 핀카소바
시너고그(유대교회당) 내부 벽에는 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의 탄압으로 죽어간 유대인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7만 7천
297명. 전 세계 유대인들 중 체코 계 유대인들의 희생자 명단이다. 체코 계 유대인들은 나치에 의해 강제 연행되어 프라하에서 60km
떨어진 ‘테레진’ 게토에 수용되었다가 과학생체실험실로 보내져 마루타로 죽어갔거나 총살 등으로 끔찍하게 사형을 당했다.
유대
알파벳순서에 따라 정리된 이름들을 바라보는 눈이 어지럽다. 방문객들 중에는 어느 이름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조용히 흐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는
분명 죽어간 가족이거나 친척이리라. 그 누가 이들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할 권리가 있단 말인가? 반세기가 지난후에 3.8선을 넘어 처음으로
이산가족이 상봉하던 그날이 기억된다. 분단의 슬픔과 별리의 아픔!
▲ 프라하 유대인 공동묘지.
묘지하나에 10여구의 시체가 묻혀있다.
시너고그 바로 옆에는 유대인공동묘지가
자리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공동묘지에 서 있는 비석들이다. 아무렇게나 어지럽게 늘어서 있는 비석은 마치 죽어간 유대인들의 시체를 연상케 한다.
한 묘지에 평균 7~10구의 시신이 겹겹이 쌓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비석 또한 촘촘히 세울 수밖에 없었다.
프라하 시에 사는
유대인들은 이 게토 외의 다른 어떤 곳에도 묘지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약 10만 명 정도의 유대인이 잠들고 있다. 아무렇게나
비뚤어진 비석에는 그들의 직업을 나타내는 기호나 상징이 새겨져 있고, 유대 달력에 다른 사망일자가 적혀있다.
▲고급 쇼핑가로 변모된 프라하
유대인지구 게토
우리는 으스스한 묘지를 떠나 다시 파리즈스카 거리로
나왔다. 거리에는 BMW와 벤츠마크를 단 자동차들이 번쩍거리는 호화로운 쇼핑가 앞에 늘늘히 들어서 있다. 이제 이 게토는 고급브랜드를 파는 멋진
상점들로 가득한 부티 나는 동네로 탈바꿈을 했다.
거리에는 쇼핑을 하는 프라하의 부자들과 외국인들로 붐비고 있다. 프라하의
신흥부자들은 멋진 차를 몰고 와 값비싼 개들을 데리고 늦은 ‘잉글리시 블랙퍼스트’와 ‘라떼’로 여유 있게 ‘브런치’를 즐긴 후 한가로운 쇼핑을
하고 있다. 이들은 무거운 배낭과 지도를 들고 다니는 우리네 배낭 족과는 철저하게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그러나 행복지수는 누가 높은지 가늠하기란 어렵다.
부자들에게도 행복은 영원하지가 않을 것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유대인 지구 게토. 음지와 양지가 함께 병존하는 프라하
유대인지구는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또 다른 게토인 ‘테레진’을 방문하기 위해 플로렌츠 버스 터미널에서 테레진행
버스를 탔다.
‘…더 이상 나비를 보지 못한’ 고사리
손들의 그림이 전시된 또 하나의 희망을 보기 위해서…
* Copyright by
ch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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