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come again!-
테레진 유태인 강제수용소를
가다!
“우리가 마치 유태인 수용소로 끌려가는
기분이에요.”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길인데.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버스를 타고 테레진(Terezin)으로 간다. 스산한 늦가을 풍경이 만감을 교차하게 한다.
그 때 그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이 길을 끌려갔을까? 프라하의 플로렌스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자 1시간 여 만에 우리는 테레진에 도착한다.
하늘이 울 듯한 표정으로 흐려있다.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길, 죽음의 길….
프라하에서 베를린 방향으로 60km 지점에 테레진
이라는 도시가 있다. 원래 이 도시는 18세기 합스부르크왕가가 북쪽의 프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하여 건설한 도시였는데, 1941년부터 나치가
유태인을 수용하는 유태지구(Jewish ghetto)로 바꾸어 놓은 곳이다.
테레진은 중부유럽 각지에서 체포한 유태인들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는 전 단계 캠프역할을 하던 유태인 주둔지다. 테레진은 도시 전체가 요새화 된 곳으로 18세기에 이미 건설된 감옥시설이
있었고, 프라하와 드레스덴 구간의 철도가 가까이 있다는 점을 들어 나치 사령부는 테레진 전체를 유태인 지구화 할 것을 명령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까지 약 14만 명의 유태인, 체코인, 슬로바키아의 레지스탕스를 테레진 수용소에 강제 억류했으며, 그 중에
약 36,000명을 아우슈비츠나 비르케나우로 보내어져 학살을 했다.
우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여행객중에는 이스라엘에서 유태인
청년 필이 있었다. 역사학을 전공하는 그는 유럽 각지에 있는 유태인 수용소를 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오레Ohre강을
따라 걸어서 수용소에 도착했다.
수용소 정면에는 나치에 의해 희생된 2만 9천
172명을 추모하는 국립묘지가 펼쳐져 있다. 묘지 중앙에는 십자가 하나가 외롭게 묘지를 지키고 있다. 유태인 청년 필이 사진을 찍다말고 멍하니
묘지를 응시하고 있다.
“필, 당신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지요?” “… 전 지금 영문도 모른 체 그림을 그리다 죽어간
어린이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아…!”
이 수용소에는 14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15,000명이 넘게 수용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살아 돌아온 어린이는 불과 100여명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어린 넋들도 이곳에 묻혀 있다. 묘지에는 고유 넘버와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밑에는 사망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오레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검정색과
하얀색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수용소의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통과하는 기분이 어쩐지 으스스하다. 어디선가 나치의 군인들이 총구를
겨누고 다가오는 환상이 떠오른다. 수용소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가지 개방되어 있는데, 현지인 가이드가 상주 하고 있다.
벽돌로
지어진 요새는 차가운 기운이 감돌지만 아름답다. 평탄한 평지에 균형 감각이 잘 이루어진 요새다. 수용소에는 영화에서 보았던 대로 집단 샤워실과
가스실, 독방들이 있고, 교수대도 있다. 수용소는 1번부터 34번가지 번호를 붙여두고 차례로 견학을 하게 되어 있다.
“이곳을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Never come again!
가이드가 가르치는 곳으로 들어가는 어둡다. 긴 통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중간 중간에 빛이
스며드는 창문이 있다. 이 통로는 적의 공습에 대한 대피소 역하라도 하지만, 누군가를 총살을 할 때 이 통로를 통해 총살 장으로 데리고 간다고
한다.
이윽고 어두운 통로가 끝이나니 꾀 광장이 나온다. 여기가 27번 벽이라고 한다. 이곳 27번 벽에서는 7000명 이상의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요새 내에 박물관에 들어가니 체코와 독일과의 전쟁에 대한 산진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쟁전, 전쟁중, 전쟁후로 잘 정리된 것을 보고 있노라니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체코는 역사상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본적이 없다.
“필, 지금은 독일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나요?” “우리는 그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나타내지는 않고 있지만, 그들의 잔혹한 행위를 결코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수용소를 떠나 테레진 시내에 있는 박물관으로 가면서
필과 나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일제의 잔혹한 행위. 이는 동 시대에 일어났던 아픈 전쟁의 역사였다. 내가
일재의 통치하에 있었던 아픈 역사를 그에게 이야기를 하자 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1945년 5월 구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테레진
수용소에는 후퇴하던 독일군이 이미 처리를 하지 못했던 어린이들의 그림 4,000여 점이 발견되어 프라하 유태인지구와 이곳 테레진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희망의 그림을 그리고 있을 고사리 손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 하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명목으로 이 어린아이들의
부드러운 미간에 총탄을 겨누었을까? 자유? 정의? 평화? 그 어떤 이름으로도 이들을 마루타의 대상으로 희생을 시킬 명분이 없다.
지나간 역사라고 해서 그 누가 이 잔혹한 학살을 저질렀던 인간들을 용서를 한단 말인가? 오, 신이여! 만약 하늘에 신이 계시다면 올바른 심판을
내려주소서!
☞테레진
가는 방법
-프라하 플로렌츠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소요 -버스는 테레진 중심부에 하차하므로 걸어서 10여분 정도 되돌아 가야한다.
-테레진 입장료 : 180Kc(Small
Fortress & Ghetto Museum)
-테레진 오픈시간 :10월~3월
08:00~16.30/4월~9월 08:00~18.00
* Copyright by
ch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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