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알프스를 넘다
벌써 11월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의 흐린 날씨는 말끔히 개이고
밝은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닭이 울면 해는 다시 뜨고, 모든 만물의 움직임은 태양계와 우주의 기운에 따라 움직인다. 어제 수첩을
잃어버렸던 것도 이미 지나간 과거다.
삶은 날씨와 같다. 비구름이 하늘을 덮어 흐린가 하면 어느새 개이고, 바람이 소리를 내어
윙윙 부는 가 무덤 속처럼 적막해 지기도 한다. 만날 무덤 속처럼 고요하다면 이 또 한 얼마나 지루한 삶이겠는가? 모든 것이 지은대로 돌아오며,
세상은 그 업(業)의 순리에 따라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 순리에 따라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여간, 아내와 나는 우주의 한 점이 되어 부다페스트 역으로 간다. 다시 동유럽 패스로 기차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오늘은 쾌 먼
장거리 기차여행이 될 것 같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한 여행자가 준 정보를 듣고 우리는 오스트리아의 알프스를 기차로 넘기로 했던 것. 지금
알프스 산은 단풍으로 불타고 있다고 그 여행자가 귀띔을 해 주었다. 우리는 그 여행자의 말 한마디에 기차로 알프스를 넘기로 결정을 했다.
그래서 오늘 여정은 부다페스트에서 슬로바키아를 지나 비엔나로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오스트리아 최남단에 있는
도시 클라겐푸르트까지 가는 것이다. 클라겐푸르트는 슬로바니아 국경과 이탈리아로 가는 기점에 있는 작은 도시다.
티켓부스의
여자직원이 좌석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그냥 타도된다고 한다. 기차에 오르니 좌석이 텅텅 비어있다. 친절한 역무원 아가씨 고맙다. 덕분에
예약비용을 아끼게 되었으니…
아침 9시 40분. 비엔나 행 기차는 부다페스트 델리 역을 스르르 출발한다. 유럽여행은 역시
기차여행이 그만이다. 유로버스도 타보고, 다국적 패키지로 럭셔리한 코치도 타 보았지만 기차여행만큼 여행의 묘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평행선으로
그어진 레일을 따라 일정한 리듬을 타며 달리는 기분은 오케스트라 연주 홀에서 있는 콘서트를 기분이 든다.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며 차창에 어리는 풍경, 도시와 마을, 농부와 숲,
들판, 강, 산, 그리고 단풍…. 이건, 대 자연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한편의 오케스트라다. 2등실 좌석 3개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 누워 지나가는
파란 가을 하늘을 본다. 차창 밖으로 하늘도 가고 구름도 간다. 낙엽이 기차 바람에 떨어지며 날더니 사정없이 떼굴떼굴 굴러간다. 아, 세월도
낙엽 따라 굴러간다. 모든 것이 기차바퀴처럼 굴러 간다.
2시간여를 달리니 기차는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안개 속에
갇힌 나그네는 어디로 가는가? 나그네 같은 인생, 발길 닿는 곳이 고향이고, 하루 밤 등을 대고 누워있는 곳이 집이다. 드디어 평행선으로 달리는
철길위에 안개가 걷힌다. 인생도 안개와 같은 것.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기차는 슬로바키아국경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엔나 역에 도착한다.
12시 30분이다. 우리는 여기서 빌라치(Villach)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비엔나는 이미 두 번이나 갔던 곳이기에 그냥 지나치기로
했던 것. 빌라치행 537번 기차를 놓칠세라 우린 뛰어서 플랫폼으로 갔다. 그러나 시간은 여유가 있다. 오후 1시 4분에 빌라치행 기차는 출발을
했다.
비엔나를 출발한지 1시간여가 지나자 기차는 헉헉 거린다. 드디어 알프스 산맥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산 산 산, 터널 터널
터널, 다리 다리 다리, 단풍 단풍 단풍…. 놀랍도록 멋진 풍경에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아내는 그저 와와! 감탄사만 연발한다. 비디오를
돌려요, 저기를 놓치지 말아요! 아내의 주문에 따라 비디오를 돌리다 보니 정작 사진은 별로 찍지를 못했다. 가을에 유럽여행을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꼭 이 코스를 권하고 싶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기차는 오후 3시 5분에 브룩크(Bruck)역에 도착한다. 한
데의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기차에 오른다. 긴 터널이 지나고 4시가 좀 지나가자 알프스는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이제 산을 다 넘었는지 기차는
속도를 낸다. 단풍구경도 다 끝나 심심한지 아내가 묻는다.
“그런데 클라겐푸르트는 어떤 도시지요?” “보고를 드리자면, 인구
십만도 채 안 되는 째끔한 도시군. 호수가 많고… 허지만 오스트리아 캐른튼 주의 수도라고 되어 있네.” “거긴 뭐가
있는데요.” “글쎄 가서보면 알겠지. ‘보석 같은 정원도시’라고 쓰여 있지만 대부분의 안내서는 과대 포장을 하니까. 다만 내가 이 도시에
흥미를 끄는 것은 시인 바이만의 고향이라는 곳이야.” “그런 시인도 있나요?” “글쎄 나도 잘 모르는 시인인데, 그의 ‘30세’라는
시 구절이 어렵게 느껴지기만한데.” “뭐라고 쓰여 있길 레요.”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해져간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게 시에요?” “글쎄, 산문인지 시인지 당 채 헷갈려. 시라면 소월의 시처럼 쉬워야 할 텐데
말이야.”
오후 5시 7분, 아내 와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기차는 드디어
목적지인 클라겐푸르트에 도착한다. 녹지가 많은 도시는 고요하고 아담하게 느껴진다. 우선 숙소를 정하기 위해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콜핑
유스호스텔로 걸어서 갔다. 그러나 생각보다 멀다.
호스텔에 도착을 하니 방값이 장난이 아니게 비싸다, 1인당 26유로를
달란다. 2인이면 52유로, 헉 시골 방값이 왜 이리 비싼가? 좀 더 싼 방은 없느냐고 했더니 몇 군데 이름을 대준다. 그곳은 1인당 15유로
정도면 될 거란다. 그러면 여기보다 22유로가 싸네? 여보, 그리로 가요?
그러나 우리는 허탕만 치고 다시 콜핑으로 돌아와야
했다. 싼 방은 이미 만원이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무슨 행사가 있어서 그렇단다. 울상을 하고 있는 아내를 달래며 지친 다리를 끌고 콜핑에
오니 여기도 조금만 늦었더라면 방이 없을 뻔했다.
멤버십 카드로 6유로를 할인하고 일단 방을 정했다. 방은 화장실도 있고 샤워
실도 있다. 유럽은 워낙 사람이 많이 끓는 곳이라 숙소에 신경을 써야 한다. 적어도 며칠 전에 방을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것이 고생을 덜 한다.
비싼 방이야 널려 있겠지만 장기여행자들이 그런 비싼 방에서 자다가는 금방 여행비가 거덜 나고 말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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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ll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