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조각 같은 도시, 클라겐푸르트
“정말 정원 같은
도시군요.” “꼭 퍼즐 조각으로 만든 예쁜 인형의 도시처럼 보여.”
어느 학교와 딸려있는 호스텔에서 우리는 새들의 울음소리에
잠을 깬다. 도시는 조용하고 평화스럽다. 한 주의 수도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어느 군청소재지를 연상케 하는 그런 고즈넉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다.
그러기에 브람스나 말러도 이 도시에 와서 작곡에 몰두를 했을까? 브람스는 도시에 인접해 있는 뵈르터 호수 Woterseed에 머물며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등 유명한 음악을 작곡했다.
이탈리아 국경과 슬로베니아 국경에 위치한 클라겐푸르트는 오스트리아 캐른튼
Kaernten주의 수도다. 인구 8만 7천의 작고 아담한 도시는 마치 정원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알프스 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캐른튼 주는
약 200여개의 호수가 있다. 남쪽에는 대부분 1천 미터 안쪽의 산들이 있지만, 북쪽에는 만년설로 덮여있는 알프스 산들이 우람하게 가로막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인 그로스글로크너는 해발 3,797미터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이곳 클라겐푸르트는
예로부터 켈트족, 로마인, 프랑스인, 슬라브족 들이 전쟁을 거듭하며 거쳐 간 삶의 현장이다. 도시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선명하고 분명한 자연색, 때는 가을이라 붉은 낙엽들로 이루어진 나무들이 도시를 감싸고 있다.
전설을 담은 호반의
도시
콜핑 호스텔에서 나온 우리는 타운 홀 쪽으로 걸어 나갔다. 한가하게 보이는 거리는 깨끗하지만 너무나 조용하여
다소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마 젊은이들이 오면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것 같다. 그러나 알프스의 줄기를 타고 내려온 구릉아래 올망졸망하게
들어선 작고 앙증맞은 집들은 예쁘기 보다는 차라리 귀엽다고 할까? 중세기에 지어진 집들은 수백 년 세월동안 보수되거나 덫 칠을 하여온 흔적이
보인다. 역사의 숨결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거리의 사람들은 조급해 보이지 않고 여유로워 보인다.
우리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보행자 전용도로를 따라 구 시가지를
걸어간다. 고작 3km 남짓한 구 시가지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 그리고 도시 사람들의 일상과 생활이 이곳에서 거의 이루어진다. 도시의 역사와
전설을 담고 있는 고딕, 로만 등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아름답게 모여 있다. 시청사, 교회, 궁전, 박물관, 시립극장, 예술인의 집, 광장,
영화관, 화랑, 레스토랑, 호텔, 서점, 주점, 음악학교, 카페, 시장, 기념품점…. 좁지만 여유로운 공간을 확보하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 쾌적하게 모여 있다. 그리고 건물 사이사이에는 이 도시가 생겨난 역사를 담은 상징물들이 전설을 담은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광장 앞에 있는 아이센터에서 도시의 지도와 여행 안내서를 받는다. 작은 도시 답지 않게 상세한 지도와 사진을 곁들여 꼼꼼히 챙겨
넣은 여행안내서가 딱 마음에 든다. 입체 식으로 퍼즐처럼 짜 맞추어 표시된 안내서는 정말이지 멋있다. 안내서를 들고 광장으로 나오니 용의 형상을
한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형상을 한 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클라겐푸르트는 ‘갯벌을 둘러싸고 탄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도시와 인접해 있는 뵈르터 호수에는 사람들을 먹어 삼키는 용을 닮은 괴물이 살고 있었는데, 해서 영주는 그 괴물을 죽이는 자에게 호수의
땅을 주겠다는 방을 붙였다. 동네의 용감한 청년들이 마침내 그 괴물을 때려죽이고 그 땅을 하사 받아 그 자리에 세운 도시가 바로
‘클라겐푸르트’라는 것.
그 전설을 말해주는 석조로 만든 괴물 용 Lindwurm이 신광장 한 가운데 서 있다. 그 맞은편에는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 게오르그’가 방망이 하나를 들고 용을 내려칠 듯한 기세로 서 있다. 그 용을 사이에 두고 시청 건물과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동상이 서 있다.
시청사 건너편에 있는 랜드하우스 빌딩 Landhaus로 들어가니 수백 개의
Coat-of-Arms(갑옷조각 같이 생긴 것에다 유명인들의 생애를 기록한 것)가 실내를 황금색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 건물은 중세기에 캐른튼
주에 최초로 세워진 성인데, 캐른튼 주에 공을 세운 재산가, 정치가, 성직자들의 이름과 생애를 간단하게 기록한 665개의 Arms가 벽과 천장을
장식하고 있다. 바둑판같은 바닥에 황금퍼즐처럼 걸어놓은 조형미가 황홀하다.
교회에서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땡그랑 하며 길게 울려 퍼진다.
평화롭다! 시청 건너편에 카페가 줄줄이 늘어 서 있는 곳으로 들어가 간단한 요기를 하고 밖으로 다시 나온다. 거리에는 정말 앙증맞게 생긴 작은
자동차들이 인형처럼 서 있다. 이 작은 도시에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 하나로 족하겠지만, 이 밀랍인형같은 자동차는 아무리 보아도 갖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 아이들 장난감 같은 자동차다!
우리는 마치 인형의 집들을 구경하듯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어떤
서점에서 어린조카들에게 보낼 귀여운 엽서와 학용품을 사서 서점의 모퉁이에 앉아 편지를 몇 자 적은 후에 역시 귀엽게 생긴 우체국에 들러 붙였다.
엽서를 보내고 나니 무언가 뿌듯한 생각이 든다. 애들아 엽서를 받거든 인형 같은 아름다운 꿈을 많이 꾸어라.
말러의
음악이 흐르는 뵈르터 호수
신광장Nuer Platz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시청을 중심으로 모든 버스가
출발과 도착을 하는데 어디를 가나 시청의 교통 센터로 오기 때문에 구태여 지도가 없어도 길을 염려가 없을 것 같다. 뵈르터 호수로 가는 버스를
타자 머지않아 버스는 도시 보다 훨씬 넓은 호수에 내려준다. “이곳이 그 괴물이 나온 호수라는 군.”, “괴물이 나올 법도 하군요.” 전설을
담은 호수는 잔잔하기 이르데 없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나무들을 그대로 반영하며 한 폭의 수채화를 드리우고 있다.
“말러 같은 명인들이 이곳에 와서 작곡을 할만도
해.” “말러라니요?” “응, 브람스도 이곳에 왔지만, 유난히도 소리에 민감한 오스트리아의 천재 음악가 말러가 이곳에 와서 작곡을
하곤 했대.” “아하!” "말러의 음악은 아무리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워. 그렇지만 그의 '부활'이라는 음악을 들으면 어쩐지 마음이
차분해 지거든. 물이 흘러 가듯 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이 들어. " "클래식이 다 그런거 아닌가요?" "음, 허지만 특히
말러의 음악을 듣다 보면 잘은 모르되 꼭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구스타브 말러의 별장이 호수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단풍이 곱게
물든 호수의 산책로, 이곳에는 도시로 연결되는 운하가 있다. 나무들이 무성한 산책로에는 별장들이 인형의 집들처럼 들어서 있고, 이어서 광활한
‘유럽공원Europapark'이 펼쳐진다. 유럽공원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올림픽공원에 크고 작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이곳 뵈르터
호수 옆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원에 전시된 조각품들은 그자체가 하나의 자연 갤러리를 연출하고 있다. 분수와 장미정원, 바닥에 그려진 장기판이
곳곳에 있고 사람들이 한가로이 앉아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이들은 새들에게 모이를 주거나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한다. 이곳의 어느
별장에서 말러나 브람스를 들으며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루만 머물기로 했던 이 도시에 반해서 우리는 하루를 더 연장하여
머물기로 했다. 다음날은 주변에 있는 성들을 둘러보기로 했는데, 크고 작은 성들이 나무에 둘러싸여 곳곳에 산재해있다. 우선 먼저 찾아간 곳은
빅트링 수도원 Monastery Viktring이다. ‘Viktring Artists'로 알려진 이 수도원은 숲으로 둘러 싸여있고, 수도원 안은
낙엽들로 채워져 태고를 숨 쉬고 있는 듯하다. 뮤직 스쿨인 짐내지엄이 수도 원내에 있어서인지 바이올린을 들고 다니는 학생들이 눈에 보인다.
수도원의 넓은 뜰에는 낙엽들이 바람에 날려 제멋대로 굴러가고 있다.
우리는 수도원을 떠나 마리아 로레토 캐슬 Maria Loretto,
벅쇼트 캐슬 Buckshot 등 몇 개의 성을 더 돌아본 뒤 다시 시내로 들어와 구 광장 Alter Platz의 인형 같은 보행자 전용도로를
걸어 다녔다. 이 거리에는 곳곳에서 몰려든 거리의 악사들, 집시들, 음악 도들이 즉흥 연주회나 인형극을 펼치기도 한다. 아마추어 화가들이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직접 구어 만든 도자기를 가지고 나와서 파는 사람도 있다. 소박한 풍경들이 눈을 즐겁게 하여서인지 피곤한 줄도 별로
모르겠다. 곳곳에 나름대로 여유로운 문화생활을 하는 모습들이 마음을 쉬게 하여서 일게다.
이 도시의 문화행사 하이라이트는 오스트리아가 낳은 여류신인 잉게보르크
바흐만Ingedorg Bachmann의 문학상 행사라고 한다. 매년 6월말에서 7월 초 사이에 열리는 이 행사에는 전 세계의 독문학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초대되어, 미발표된 독일어 신작 작품들을 낭독하고, 열띤 평론과 토론을 거쳐 ‘바흐만 문학상’을 결정한다고 한다.
도시의 크로이츠 산 발치에는 바흐만의 생가가 아직도 남아있다. 대문의 빗장 두 개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간 채 그대로 남아있고,
집에서 뵈르터 호수로 이르는 길은 그녀의 중편 시집 ‘호수로 가는 세 갈래길’의 배경무대로 삼았던 길이라고 해서 ‘바흐만의 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한번 바흐만의 ‘30세’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는데, 산문인지 시인지 분간을 할 수 가 없고, 나 같은 둔재는
도대체 이해하기가 힘든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어렵푸시 난다.
하여간, 클라겐푸르트는 피곤하지 않는 도시로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알프스의 바람들조차도 쉬어 가는 그런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바쁘지 않는 사람들, 꽃, 정원, 중세기 풍의 편한 건물,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난 골목에 늘어선 카페와 상점들…. 호수로 연결된 운하와 산책로를 걷다보면 어느새 사색의 샘물로 빠져들어 가는 느낌이 든다.
지팡이를 짚고 중절모를 쓰고 여유롭게 걸어가는 노 신사의
모습에서, 바이올린을 들고 걸어가는 소녀의 모습에서, 커피 잔을 기울이며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전거를 타고 미소를 지으며
한가롭게 달려가는 주부의 모습에서, 손에 잡힐 듯이 작은 인형 같은 자동차의 모습에서… 나는 그저 고요함과 행복을 느낀다. 이 도시를 걸으면
사람들이 귀하게 느껴지고, 옆에 있는 아내가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사람들이 소중한 도시… 그런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
소음으로 득실거리는 서울의 도심과, 보다 큰 집, 큰 차, 강한 것,
복잡한 것, 스릴 넘치는 아슬아슬한 흥미를 추구하는 것, 지연과 학연, 부자와 가난한 자, 잘난 자와 못난 자, 너나 없이 너무 바빠서 벽 하나
사이에 둔 이웃사람이 죽어간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매 마른 도시의 창에 발버둥 치며 도대체 왜 살아가야 하는가?
▲클라겐푸르트의 교통 시스템. 인구 8만7천명의
소도시 버스노선은 시청사 앞 신광장에 허브가 있어 모든 노선이 편리하게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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