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는 요들송의
밤
스키의 천국 인스부르크는 두 차례의 걸쳐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알프스의 심장이다. 남자의 우람한 가슴처럼 떡 벌어진 만년설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여성의 아늑한 골짜기처럼 인Inn강이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인스부르크는 120개의 스키장, 1,100개의 리프트, 총연장 3,500km의 슬로프가 있어 과연 겨울 스포츠의 천국답다.
강변
바로 옆에 있는 Jugendherberge Innsbruck 호스텔에 여장을 푼다. 이곳 호스텔은 규정이 다소 까다로워 오후 5시 이후에
체크인을 하고, 도미토리는 남녀가 따로 따로 구분되어 있다. 그래서 우린 할 수 없이 이산가족이 되어야 했다. 아내는 1층, 나는 2층으로
헤어지는 신세가 된다. 하루쯤 떨어져 자도 좋겠지. 보수적인 호스텔은 이렇게 남녀가 유별일 때가 있다. 프론트에 특별히 간청을 하여 아내에게는
1층 침대를 배정 받았으나, 나는 올라가기도 거북할 정도로 높은 2층 침대를 배정 받았다.
별 수 없는 일이지. 그렇다고 방값이
싼 것도 아니다. 일단 여장을 푼 우리는 호스텔 바로 앞에 있는 강변 산책에 나섰다. 11월의 인스부르크는 춥다. 강변을 바라보고 있는 카페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트라팔가Trafalgar'마크를 단 관광버스가 눈에 띤다.
“여보, 저거 트라팔가 여행사 버스
아닌가요?” “맞네.” “98년도에 우리가 탔던 버스와 똑 같아요. 어쩐지 정감이 가는군요.”
1998년도에 우린 다국적 여행사인 트라팔가 버스를 타고 첫
유럽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어쨌든 여기서 다시 그 버스를 보게 되니 반갑다. 마침 트라팔가 가이드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눈인사를 한다.
그들은 식사를 한 후에 알파인 쇼를 보러 간다고 한다. 알파인 쇼는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의 레스토랑에서 공연을 한단다.
“저녁에
심심한데 우리도 알파인 쇼나 좀 볼까?” “재미있을까요?” “23년 전 이곳 알파인 쇼에서 태극기를 꽂은 일이
있었거든.” “태극기를 꽂다니요?” “자, 가보면 알아요.”
나는 1983년에 인스부르크에서 멋진 알파인 쇼를 관람한
기억이 있어 아내에게도 정통 티롤 알파인 쇼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마지막에 각 나라의 대표 민요를 불러주는데, 그 때 나는 홀로 태극기를
휘날리며 아리랑을 불렀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가격을 물어보니 1인당 20유로다. 아내는 너무 비싸다고 그냥 가자고 했지만 나는 티켓을 이미
샀다. 공연장을 가득 매운 홀에 동양인은 우리 둘 뿐이다.
막이 올라가고, 남자들은 알프스 목동 같은 옷차림을, 여자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마리아 같은 치마를 입고 흥겹게 춤을 추며 요들송을 부르기 시작한다. 아코디언, 하모니카, 지터, 카우 벨, 망치, 톱 등
갖가지 악기들이 등장하며 알프스 목동들의 삶을 보여준다. 경쾌하고 담백한 멜로디가 청량제처럼 시원하게 가슴을 후빈다. 아니요 레리요, 아니요
레이요, 요리요리요리~~~
요들송 Yodel song은 새나 짐승들의 소리를 내며, 흩어진
양떼를 불러 모으거나, 눈사태가 많은 알프스에 재앙을 물리치는 주술적인 목적, 또는 신비로운 산에 대한 인간의 존경심을 나타내거나, 위험을
알리는 통신 수단 등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요들의 본 고장은 스위스이지만 이를 발전시키고 세계에 널리 알린 나라는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다. 그
중에서도 티롤지방의 요들은 세계화에 가장 큰 기여를 했고, 역시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들은 티롤지방의 요들이다.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 숲의 요들, 티롤이 눈앞에, 인스부르크 폴카, 카우 벨, 톱 악기 등 다채로운 공연이 소박하고 흥겹게 무대에서 전개될 때마다
관중들은 갈채를 아끼지 않는다. 서양인들의 관람 매너는 정말 우리가 배워야 할 갓 같다. 그들은 조그만 일에도 웃어주고 기뻐해주고 박수를 아끼지
않는 관중 매너를 가지고 있다.
역시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각 나라의 대표 민요를 부르는 것이다. 무대에서 민요를 부르는 국가의
국기를 들고 연주를 하기 시작하면 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은 모두 일어서서 합창을 한다. 드디어 한국의 태극기가 무대에서 휘날리고 아리랑이
연주된다.
아내와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아리랑을 큰 소리로 열창한다. 밖에 나오면
애국심이 절로 난다고 했던가. 아리랑을 부르는 순간 괜히 가슴에 뜨거운 전류가 흐르고 가슴이 찡해진다.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갈채가 우리를
더욱 흥분 시킨다. 동양인은 우리 둘 뿐이어서 그런지 관중들의 박수갈채가 더 뜨겁게 느껴진다. 태극기가 단상에 있는 탁자에 꽂아진다. 아마
25개 정도의 국기가 무대에 꽂혀진 것 같다.
“어때? 기분이.” “좋아요!” “알프스의 하이디라도 된
느낌이 들어?” “내 나이가 몇인데, 어찌 하이디가....” “나이가 무슨상관? 저 태극기를 23년 전에 내가 무대에 올라 들고
흔들었지.” “정말?” “정말이야, 그 땐 동양인은 나 혼자뿐이었는데, 젊은 혈기에 너무 흥분된 나머지 무대로 뛰어
올라갔거든.” “알만해요.” “그리고 태극기를 직접 저 무대에 꽂은 거야.” “맙소사!” “지금도 흥분이 되는데…
소년처럼….” “누가 말려요.” “간접적이긴 허지만 오늘밤도 우린 태극기를 무대에 꽂고 국위선양을 한 거라.” “그야…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
한껏 기분이 고조되어 우리는 호스텔로 돌아온다. 그러나 우리는 1층과 2층으로 이산가족이 되어 헤어진다. 이
고조된 기분을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 나는 높은 2층 침대로 조심스럽게 올라가 잠을 청한다. 포도주를 몇 잔 마셔서 그런지 곧 잠이 든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다음 날 새벽 요기가 있어 화장실을 가려고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나는 그만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만다. 아이쿠,
요리요리요리~, 저리저리저리~, 아니요 레이요, 아니요 레이요, 이거 이층침대가 사람 잡네!
아침에 케이블카를 타고 하펠레칼슈피츠 꼭대기를 올라가려고 했으나
오늘따라 케이블카가 운행하지 않는다는 안내센터직원의 말이다. 새벽에 2층 침대에서 떨어져 다친 허리가 욱신거리며 아프다. 우리는 하루 밤 더
자기로 했던 인스부르크를 떠나기로 했다. 호스텔에서 미리 지불한 하루분의 방값을 환불을 받고, 인스부르크 역으로 갔다. 뮌헨 행 열차는 10시
34분에 있었다. 티켓은 여유가 있단다.
역사로 가는 도중에 우리 는 잠시 인스부르크 구시가지에 있는 황금지붕과 헬블링하우스,
왕궁들을 돌아보았다. 2657개의 동판에 금을 입힌 황금지붕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우리는 이미 6년 전에 이곳을 배회 한 적이 있었다.
구시가지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아치형으로 생긴 쇼핑가다. 이 쇼핑가를 거닐다 보면 마치 중세기의 어느 시장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구시가지를 거닐다 뮌헨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위해 중앙역으로 간다.
51유로를 지불하고 두 장의 티켓을 챙긴 뒤 플렛트 홈으로 나가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뼈만 앙상히 남은 중년의 어떤 남자가 두 여인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걸어온다. 바람이 훅 불면 검불처럼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가냘픈 몸이다.
우리가 앉아 있던 벤치를 양보하자 그는
앉기도 힘이 든 듯 두 여인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앉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담배를 꺼내들고 성냥불을 그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지 않는가? 담배연기를 한 모금 깊숙이 들어 마신 그는 파란 허공을 응시하더니 한숨과 함께 길게 담배 연기를 품어낸다. 세상의 삶을
초월한 듯 한 그의 표정과 담배피우기를 말리는 것을 체념한 듯 한 두 여인의 시선이 묘하게 교차되어 온다. 죽어도 피우고 싶은 게 담배라면
말리지 말아야겠지. 인생은 허공에 흩어지는 담배연기 같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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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ll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