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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노이슈반슈타인 성-백조의 기사처럼 살고자 했던 왕의 최후

찰라777 2006. 9. 16. 10:1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이슈반슈타인 성-독일 퓌센

왕의 운명을 바꾼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도대체 그 왕은 어떤 사람이 길래 이렇게 아름다운 성을 지었을까?”
“백조의 기사처럼 살고자 했던 왕이 직접 설계하여 세운 성이라는군.”
“백조의 기사라…. 정말 저 성에 딱 어울리는 너무 멋진 말이군요.”


 

바이에른의 국왕 루드비히 2세.
그는 누구인가? ‘백조의 성’인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성을 직접 설계하고 지은 바이에른의 국왕 루드비히 2세와 바그너와의 관계를 자세히 알고 넘어가야만 한다.

 

그가 바그너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16세 되던 해에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관람한 뒤부터다. 이 한편의 오페라를 관람한 뒤부터 그는 바그너의 열성팬이 되고, 왕과 바그너의 인생에 숙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은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아 있기에 왕을 그토록 열광케 했을까? ‘로엔그린’은 10세기 전반 독일 앤트워프 부근 ‘성배의 기사’에 대한 전설을 담은 내용이다. 이야기가 좀 길어지지만 이 성을 짓도록 할만큼 왕을 매료시킨 전설을 담은 내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아는 만큼 느끼지 않는가?

 

오페라 로엔그린의 여자 주인공 브라반트의 왕녀 엘자는 영주의 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그 때 그녀가 꿈에서 보았던 ‘백조의 기사’가 나타나 그녀를 제소한 텔라문트 백작과 결투를 하여 백작을 물리치고 그녀를 구해낸다. 그리고 엘자는 백조의 기사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기사는 그녀에게 만약에 자신의 이름을 물으면 신통력을 잃게 되므로 절대로 자기의 이름을 묻지 말라는 주의를 준다.

 

그러나 그녀는  함정에 빠져 ‘금문의 맹세’를 어기고, 기사의 이름을 묻게되자 백조의 기사는 신통력을 잃고, 공주의 행복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다음 날 아침 신통력을 잃은 백조의 기사는 왕 앞에서 자신이 바로 성배의 수호장 파르치팔의 아들인 ‘로엔그린’이라고 고백하고 하늘나라로 사라진다. 로엔그린은 이처럼 성배의 기사와 백조의 기사에 대한 전설을 담은 내용이다.

바그너에 빠진 비운의 왕, 루트비히 2세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2세의 장남으로 태어난 루트비히 2세는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1864년 약관 18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백조의 기사에 대한 내용을 그린 ‘로엔그린’은 그가 왕에 오른 후에 본격적으로 왕의 인생과 음악가 바그너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체질적으로 정치에는 소질이 없던 그는 왕위에 오른 후 음악과 시와 미술세계에 더욱 빠져들기 시작하였고, 1866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뒤에는 그는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직접 설계하여 1869년부터 왕의 진두지휘 하에 공사를 시작하기에 이른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뛰어나고 시와 음악, 그리고 미술 등 예술분야에 심취하였으며, 건축에도 조예가 깊어 일찍이 건축공부를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나중에 이 성을 직접 설계하여 짓는 계기가 된다.

 

노이슈반슈탄인 성은 3개의 면에 ‘반발트 씨에’ ‘알펜지’ ‘호프낭제’ 등 세 개의 호수에 둘러싸여 있어 성의 모습을 하루 종일 세 곳에서 비쳐볼 수가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로엔그린’에 나오는 백조의 전설에서  영감을 받은 왕은 백조를 테마로 한 건물을 짓고자 했는데, 바로 성 주변을 싸고 있는 세 개의 호수에는 백조들이 많이 날아든다는 것. 왕은 이 천하 명당자리에 성을 지어 ‘로엔그린’의 주인공 백조의 기사나 ‘탄호이저’에 나오는 음유시인처럼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그너가 왕을 매혹시킨 것은 음악보다도 시인 바그너였다. 바그너는 격정적인 언어와 강렬한 시로 젊은 루드비히 2세를 사로잡았다. 바그너는 격렬한 어조와 음악으로 신비한 전설을 왕에게 들려주었고, 왕은 항상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그너의 ‘쉼표’가 없는 음악은 더욱 왕을 현란하게 사로잡았다. 그들이 주고받는 서신 역시 언제나 시와 음악처럼 격렬한 어조로 씌어졌다.

‘오, 은혜로 충만하신 왕이시여! 천상의 감동에서 솟아난 눈물을 당신께 바침으로써, 그리도 비천하고 애정에 굶주렸던 제 가련한 인생이 품고 있던 시적 경이감이 드디어 지고한 현실이 되었음을 당신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이 인생의 마지막 한 단어까지, 마지막 한 음계까지, 저의 인생은 당신께 속해 있습니다.’

 

바그너가 왕에게 보낸 서신의 한 단면이다. 그는 왕을 만니기 전 오페라 탄호이저'의 흥행실패로 부채에 시달리며 여기저기를 도망다니며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 때 루트비히 2세가 혜성처럼 나타나 바그너의 모든 부채를 탕감해주고 그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바그너는 왕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고 이처럼 현란한 문체로 감사의 편지를 보내곤 하였다.

 

어린이다운 천진한 면이 있는 왕은 바그너를 조언자이자 친구로 대했으며 마치 그를 아버지처럼 부성에 넘치는 애정을 베풀 정도였다. 덩치는 크나 여성스러운 면이 있는 왕은 호탕한 성격의 바그너에게 더욱 깊이 빠지게 된다. 마침내 바그너는 왕에게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면서 왕과 함께 공동으로 왕국을 다스린다는 소문까지 돌게 되었다.

 

'백조의 기사'처럼 살고자 했던 왕의 최후

 

그러나 알프스의 험한 자락에 성을 짓는 공사는 난공사와 더불어 많은 돈이 필요하여 공사를 시작한지 무려 17년이 지났지만 3분의 2밖에 완성하지 못했다. 루드비히 2세는 자신의 개인 재산까지 몽땅 털어 공사비에 충당을 하였으며, 심지어는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기까지 하였다. 

허지만 정작 루드비히 2세가 이 성에서 살았던 기간은 겨우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성이 완전히 완성되지도 못한 상황에서 루드비히 2세는 어느 날 정적에 납치되어 요양소에 갇힌 지 사흘 만에 슈탄베르크 호수에서 자신의 주치의인 구텐박사와 함께 물에 빠진 채 변사체로 발견된다. 정사를 돌보지 않고  성을 짓는데만 국가재정을 탕진한 왕에 대한 정적들의 반감이 날로 커졌던 결과가 가져온 재앙이었다.

 

이 죽음은 아직까지도 의문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1미터 90센티의 큰 키를 가진 그는 어릴 때부터 수영선수에 버금가는 수영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의 죽음은 두 가지로 추정되고 있다.

 

그 한 가지는 성을 짓는 데 국비를 몽땅 탕진하는 왕의 행위를 보다 못한 정적들에 의해 살해되었을 가능성, 다른 하나는 요양소에 강제로 연금된 것을 비관하여 자살을 시도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그가 자살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의 나이 불과 41세. 비운의 왕 루드비히 2세는 평생 동안 그의 예술세계와 바그너의 음악에 미처 성만 짓다가 죽어간 왕이라고 할까?

루드비히 2세는 일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죽었다. 한 때 그의 사촌 누이이자 오스트리아 공주인 소피 샤를로트와 약혼을 하였으나 결혼식을 하기 직전에 파혼을 하게 된다. 소피는 왕이 백조를 너무나 좋아 하자 백조모양의 커다란 화병까지 선물한다. 이 화병은 아직도 성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1867년 10월 12일로 결혼날짜까지 정해놓고 황금마차와 기념주화까지 마련해 놓았지만 결혼식을 앞둔 10월 10일 갑자기 파혼이 선언되고 만다. 

 

세상의 여자들은 자신만을 사랑해 줄

'백조의 기사'를 기다린다.

 

사람들은 이 갑작스러운 파혼도 왕과 바그너와의 관계가 너무나 밀접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을 한다. 바그너를 워낙 좋아하여 그는 바그너와 동성연애를 한다는 소문까지 나돌게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바그너는 여성편력이 심한 사람이라 그와 동성연애를 한다는 것은 괜한 소문일 것이라는 설도 있다.

 

하여간 바그너는 루트비히 2세의 정신세계와 예술세계에 지대한 여행을 미치게 되었고, 왕은  바그너의 음악과 시, 정신세계에 영감을 받아 그의 예술혼에 불을 당겨 이처럼 아름다운 성을 직접 설계하여 지은 뒤, 때로는 백조의 기사처럼, 때로는 음유시인처럼 살아 가고자하였다.

 

비록 정사를 돌보지 않고 성을 짓는데만 국비를 탕진한다는 원성으로 정적의 손에 납치되어 백조들이 날아드는 호수에 익사체로 발견되는 비운의 왕이었지만,  지금 퓌센에는 매년 1백 20만명의 관광객이  왕의 예술혼이 전률하는 아름다운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보기 위해 찾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미친 왕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왕이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아내는 마치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공주라도 된 듯 의기 양양해 하며 낙엽이 뒹구는 길을 오른다. 세상의 여자들은 누구나 자신만을 사랑해 줄 '백조의 기사'가 나타나기를 영원히 기다리는 것일까?


 

* Copyright by cha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