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으로 가는 완행열차
▲리스본 산타 아폴로니아 역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는 만원이다. 기차에 오르고 보니 아내와 좌석이 엇갈려 배정되어 있다. 아내는 그것도 확인을 하지 않고 표를 샀느냐고 투정을 부린다. 유럽 기차여행 중 어디서나 당연히 같은 자리에 나란히 좌석을 주었는데, 라틴풍의 문화는 여기서부터 다른가? 약간 제멋대로 식이며 고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없다. 나와 같이 앉은 스페인 여자승객에게 좌석을 좀 바꾸자고 예의를 갖추어 사정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노오”다. 바꾸어 줄만도 한데 한 마디로 거절한다. 차장에게 통사정을 하여 몇 정거장을 지난 뒤 겨우 같은 자석에 앉을 수 있었다. 콧수염을 기른 차장이 코를 킁킁 거리며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그래도 잊지 않고 기억을 해주어서 고맙다. 기차는 느리고 불편하다. ‘리스본 특급’인줄 알고 탔더니 이건 ‘리스본 행 거북이’다. 그 언젠가 서울에서 목포로 가는 완행열차를 탄 기분이다. 밖은 칠흑처럼 어둡다. 기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슬슬 기어간다. 버스를 타고 갈 걸 잘 못 선택한 것 같다. 알랭들롱과 까뜨린느 드느브 주연 ‘리스본 특급’이라는 오래된 영화가 떠오른다. 리스본 특급열차에서 펼쳐지는 교묘한 범죄와 알랭 들롱과 드느브와의 비밀의 사랑이 담긴 영화. 그러나 지금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는 영화에서 보았던 환상적인 기차분위기와는 영 딴판이다. 사랑은 커녕 지루하고 힘만 든다. 갑자기 비가 억수로 내린다. 거센 빗줄기가 차창을 때린다. 기차는 마치 물속을 달리는 것 같다. 승객들은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 있는 기차에 모두가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잠을 자고 있다. ▲기차에서 바라본 여명이 밝아오는 리스본 근처의 풍경 아침 7시. 먼동이 빗줄기를 헤집고 전 기줄 사이로 희미하게 밝아 온다. 칠흑 같은 빗속의 어두움도 여명의 밝음에는 견디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슬금슬금 물러가는 어두움은 빗줄기에 엉겨 붙어 아직은 여운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올리브 나무들이 어둠속에서 파마를 한 여자의 머리처럼 슬금슬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올리브 나무의 향기가 짙게 풍겨오는 풍경은 북유럽이나 동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자연도 사람도 나무도 가볍고 자유롭게 보인다. 이제 날이 훤히 밝았다. 갑자기 키 작은 포도나무 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아, 어둠이 걷히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기차도 갑자기 속력을 내다. 리스본 특급 본떼를 보여주려고 그러나? 기차는 밤새 달려 다음 날 아침 8시 15분에 리스본의 산타 아폴로니아역에 도착을 한다. 국제열차가 도착한 역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어는 시골의 간이역 같은 한적한 규모다. 알파마 지역 동쪽 끝의 떼주 강가에 자리 잡은 리스본 국제역은 유럽의 끝처럼 한가롭다. 아아, 무역풍이 불어온다!
드디어 우리는 유럽의 끝, 리스본 항구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가 리스본 국제역인가, 한국의 목포역인가? 국제열차가 도착하는 역치곤 너무 시골스럽고 한가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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