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인 성터에서 바라본 신트라. 바이런은 이곳을 '영광의 에덴동산'이라 노래했다.
유럽대륙의 종착역, 신트라
리스본 로시우 발 신트라행 기차. 복잡한 거리를 빠져나가자 곧 한가로운 교외의 풍경이 펼쳐진다. 푸른 하늘로 이어지는 넓은 들판은 말 그대로 전원 풍경이다. 어디선가 섹스 폰과 아코디언을 든 거리의 악사가 열차 안으로 들어온다. 흐느끼듯 불어대는 섹스 폰과 가슴을 파고드는 아코디언의 음율. 역시 파두음악이다!
가을 벌판을 달리는 열차에서 들려오는 파두의 음률에 그만 나그네의 마음은 다시 자지러지고…. 그들은 이어서 돌아오라 소렌토로, 엘 콘도 파사 등 마음을 어루 만져주는 곡들로 여행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거리의 악사가 벌려놓은 모자에 동전이 쌓인다. 달리는 기차의 창가에 기대 앉아 음악을 감상하던 아내도 작은 유로화를 모자에 집어넣는다.
▲ 1910년까지 포르투갈 왕실의 '여름별장'으로 사용했던 왕궁
열차안의 작은 음악회를 듣다보니 기차는 어느 새 신트라에 도착한다. 리스본에서 28km 떨어진 신트라Sintra. 일찍이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영광의 에덴동산’이라고 노래했던 곳이다. 여기서부터 기차는 더 이상 서쪽으로 가지 않는다. 유럽대륙의 끝 종착역이다. 기차에서 내려 바라보는 신트라의 풍경은 바이런의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전원도시다.
그래서 사람들은 로카 곶 보다는 이곳 신트라를 보기위해 리스본을 빠져 나온다. 화려하고 고운 옷을 차려 입은 아름다운 숲 속의 공주 같은 곳, 정말이지 신트라는 한 편의 동화 속 그림 같은 곳이다. 리스본에 가면 신트라를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파란 물감이 떨어질 듯 푸른 하늘아래 펼쳐진 숲 속의 전원도시를 걸어서 돌아보기로 했다. 금방이라도 손에 묻어 날 갓 같은 파스텔 톤의 건물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쨍 하게 눈이 부시도록 드리워진 파란 하늘이 그림 같은 왕궁의 건물 채도를 더욱 높여준다. 아름답다! 어쩌면 이런 데가 있을까?
그래서 포르투갈 왕실은 이 신트라의 왕궁을 500년 동안이나 왕실의 ‘여름별장’으로 사용했던가! 하얀 콘을 뒤집어 쓴 듯 원뿔형의 굴뚝을 달고 있는 왕궁은 그대로 하나의 ‘마법의 성’처럼 보인다. 왕궁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길옆에는 귀엽고 아름다운 조각들이 늘어서 있다. 과연 에덴동산으로 가는 길이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신트라역에서 왕궁으로 가는 산책로
왕실은 포르투갈 아줄레주(장식타일) 인테리어의 금자탑이다. 왕실의 실내에 들어서자 독특한 장식과 화려한 그림에 압도가 되고 만다. 매혹적이다.
다양한 색실로 그림을 그려 넣은 태피스트리, 가지가지 그림으로 짜 맞춰진 아줄레주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림 타일로 뒤덮인 식당, 모자이크 무늬로 장식된 예배당, 27마리의 백조가 천장을 장식한 백조실,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중국실, 높다란 천장을 가진 부엌… 모든 것이 너무나 독특하다.
마법의 성 같은 무어인의 성터
▲7~8세기에 세워진 무어인의 성터는 마치 바법의 성처럼 신비롭다.
마법의 성 같은 왕궁에서 나온 우리는 다시 산책로를 따라 무어인의 성터에 오른다. 11월이지만 유럽의 남단에 위치한 신트라의 날씨는 작열하는 태양 재킷을 벗기고 만다. 버스를 탈 수도 있지만 숲 속의 요정 같은 신기한 길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까워 걸어간다.
8세기에 무어인들이 쌓아 올렸던 성터는 두 개의 원추형 굴뚝이 하늘로 솟은 왕궁과 어울려 초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해 낸다. 옛 성터에 올라 신트라 시내 건너 멀리 바라보이는 대서양은 하늘과 바다가 분간을 못 할 정도로 푸르다. 뷰티풀! 원더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감탄의 소리다.
“사진 한 장 찍어주시겠습니까?”
“오케이.”
성터의 정상에서 만난 두 청춘남녀가 웃으며 다가온다. 아름다운 한 쌍의 커플이다. 남아공에서 왔다는 여행자들의 모습에서 젊은 아름다움을 본다. 역시 젊음은 아름다워…
“정말 아름다운 날씨군요!”
“네에! 저희들 사진도 한 장 찍어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그들은 카메라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도난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풍경을 담을 수 없다는 것. 배우처럼 생긴 그들을 향해 사진을 찍으니 그대로 한 장의 엽서가 되고 만다.
부서진 수도원 터에 건축한 페나 궁전
▲ 페르디난도 2세가 1839년에 왕성시킨 페나 성. 마치 동화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 느낌을 받는다.
요술의 성 같은 무어인 성터를 오르내리다가 우린 또 다른 ‘마법의 성’을 발견한다. 정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동화책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다. 19세기 페르디난도 왕자가 낭만주의적 감성을 그대로 담아낸 페나 궁전. 무어인 성터의 봉우리에 올라 부서진 수도원 터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왕자는 그 자리에 왕실의 ‘여름 별궁’인 페나 궁전을 건축했다.
마누엘, 고딕, 르네상스, 이슬람 양식을 고루 갖추어진 여름별궁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독일 퓌센의 알프스 자락에 세워진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런데 이 성을 세운 페르디난도 왕자는 공교롭게도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건축한 루드비히 2세와 사촌지간이라는 것. 이들은 아마도 아름다운 성을 건축하기 위해 왕으로 태어난 사람들처럼 생각이 된다..
페나 성으로 다가가니 울뚝불뚝한 정문의 벽과 곡선이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이루며 우선 방문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성은 마치 파란 하늘에서 녹아내리듯 서 있다. 과히 매혹적인 자태다.
마귀처럼 산발한 머리, 인어모양의 비늘을 단 다리에 뱀의 형상을 두 발을 가진 노인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부조는 공포를 자아내게 한다. 지성보다는 감성을 추구한 건축과 장식은 상상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놀라운 모습이다. 오밀조밀한 초소와 전망대, 기이하게 생긴 테라스, 온 통 타일그림으로 장식된 하트모양의 문들은 어떤 질서와 조화의 균형을 거부한 채 자기만의 특별한 개성을 연출해 내고 있다.
왕정이 폐지되고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비 아멜리아가 사용했던 ‘아멜리아의 방’은 1910년에 왕비가 떠났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귀족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가구, 아름다운 그릇, 72개의 촛불을 밝혔던 샹들리에가 달린 무도회장은 화려함의 극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숲 속으로 길게 뻗어 나온 테라스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는 풍경이다. 대서양의 푸른 바다에서 해조음을 가득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스쳐 지나간다.
멀리 로카 곶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파두의 슬픈 곡조를 싣고 왕궁의 테라스를 맴 돌았으리라. 왕과 왕비, 그리고 귀족들이 기름진 음식과 호사스런 복장으로 72개의 촛불을 밝힌 샹들리에 불빛아래에서 춤을 출 때 늙은 노파는 대륙의 끝 백사장에 앉아 영영 돌아오지 못할 어부남편을 기다리며 슬픈 파두의 가락을 읊조렸으리라.
이제, 유럽의 끝 ‘로카 곶’ 해변의 절벽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를 보려가야지. 파두의 슬픈 가락을 부르며 남편을 기다리는 늙은 파디스타를 만나러 가야지.
☞신트라 가는 길
리시본 로시우 Rossio역에서 기차가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요금 1유로 40센트 45분 소요). 리스본 세테리오스 지하철역과 연결된 기차역에서 출발한다.
한나절에 다녀올 수 있기도 하지만 하루 밤 정도 묵으며 걸어다니면서 신트라를 충분히 보는 것이 좋다. 신트라 역에서 왕궁까지 버스가 다니고, 산 꼭대기의 무어인의 성터, 페나 성은 버스가 다니지만 시간이 충분하다면 천천히 걸어다니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는 것을 권한다.
신트라 시내에서 4km 떨어진 몬세라트 정원(입장료 3유로), 퀸타 다 레갈 레이라 저택(입장료 10유로, 미리 예약 필수 2219-106-650, 세계유산) 장난감 박물관(전세계 20,000종 장난감 소장) 들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 Copyright by cha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