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카 곶-유럽대륙의 끝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거기, 파도가 육지로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해 절규하고 있는 언덕, 십자가를 떠받치고 있는 비석에는 포르투갈의 서사시인 까몽이스의 대표작 ‘우스 루지아다스(포르투갈 인을 지칭함)’에 나오는 시가 한 줄 새겨져 있다.
시비가 세워진 십자가 밑으로 육지는 더 이상 바다로 나가지 못해 절규하고, 시인의 노래처럼 육지가 끝난 절벽에는 대양의 파도가 침식된 바위틈으로 난 악마의 숨구멍을 핥으며 포효한다.
까몽이스(Luis vas de Camoes)는 포르투갈의 해양사 발달과 함께 국민시인으로 추모를 받는 대표시인이다. 그의 동상은 리스본 도처에서 볼 수 있으며 그가 죽은 날(1580. 6. 10)을 포르투갈 국민의 날로 지정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인의 죽음은 비참하다. 그는 여러 식민지를 전전하다가 가난과 기아 시달리며 죽어갔다.
로카 곶에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다. 웅대한 자연의 파노라마 앞에는 신대륙을 향한 십자가 하나가 우뚝 서 있고, 가장 높은 곳에는 대양을 항해하는 배를 위해 등대 하나가 외로이 설치되어 있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대서양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가 더 이상 갈 곳을 잃고 하얀 거품을 물고 부서지고 있을 뿐….
“이제, 우리들의 유럽여행도 오늘이 그 막바지에 달했구려.” “저 바다를 건너가면 아메리카 신대륙에 닿겠지요?” “그렇소. 내일이면 우린 남미대륙의 땅을 딛고 있겠지.”
유럽의 땅 끝. 나는 이 땅 끝에 서서 한국의 남녘에 있는 해남의 땅 끝을 생각한다.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 된다’는 카몽이스의 말처럼 우리는 유럽의 땅 끝에 서서 다가 올 우리들의 또 다른 여행 남미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로 집을 떠나 온지 벌써 45일째다. 서울을 출발하여 암스테르담에 도착, 북유럽을 거쳐,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그리고 동유럽을 거쳐 온 기나 긴 여정이 유럽의 땅 끝 로카 곶에서 끝나고 있다. 한 단원의 여행이 끝나고, 새로운 여행이 다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여정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우리로서는 차라리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곳 이베리아 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알려진 성지 순례자의 길이 있다. 무슬림의 신자는 적어도 생애 한 번은 메카로 순례를 떠나야 하지만, 기독교의 경우에도 그리스도 탄생이후 첫 천년동안 세 개의 신성한 성지 순례길이 존재했다.
순례자의 길
첫 번째는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의 무덤’으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의 상징은 십자가이고 베드로의 무덤으로 가는 자들을 '로마의 방랑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미 이 길을 다녀온 바 있다.
두 번째 길은 예루살렘의 예수의 성묘로 향하는 길이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수상가(手相家 Palmist)'라고 부른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을 했을 때 그를 맞이해준 이들이 흔들었다는 종려나무(잎 모양이 손바닥처럼 생겼음) 가지가 그 길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번이나 예수의 성묘를 참배하고자 했지만 아직 때가 이르지 못한 모양이다. 한 번은 터키의 안탈랴에서 넘어 가려고 했으나 전쟁이 발발하여 가지 못했고, 두 번째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에서 진입을 하려고 했지만 서울의 가정에 급한 사정이 생겨 귀국을 해야 했다.
마지막 세 번째 길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 묻힌 야고보의 성 유골에 이르는 길이다.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여 스페인의 땅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별들의 들판)에 이르는 길이다. 그곳은 어느 날 양치기가 들판 위에 빛나는 별을 봤다는 장소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예수그리스도가 죽은 후 성 야고보와 성모마리아가 복음서를 가지고 그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별들의 들판에는 오래지 않아 모든 기독교도 국가의 여행객들이 몰려들어 콤포스텔라라는 도시가 세워지게 되었고, 이 길을 따라 걷는 자들에게는 '순례자'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1123년 프랑스의 사제 에임리 피코가 순례를 다녀와 다섯 권의 책으로 안내서를 펴낸 이 후, 중세기의 샤를마뉴 대제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 가까이는 교황 요한 23세, 그리고 연금술사의 저자 파올로 코엘료에 이르기까지 이 길을 따라 순례의 길을 떠났다.
▲유럽의 땅 끝 로카 곶에 세워진 등대 우리는 지금 장소는 조금 다르지만 야고보의 성 유골이 묻힌 유럽의 땅 끝에 서 있다. 이곳 포르투갈 땅에도 '파티마'라는 유명한 성지가 있다. 1917년 세 명의 어린 양치기들이 파티마의 성모인 ‘로자리오 성모’의 발현을 목격했다는 곳이다. 우리는 그 성지 가까이 왔으면서도 아직 때가 이르지 못했는지 그 성스러운 성지에 안타깝게 이르지 못하고 있다. 만약 다음에 이베리아 반도로 떠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두 곳의 순례 길을 꼭 다시 가보고 싶다.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8년 전에 부르고스까지 갔다가 여정이 여의치 못해 그냥 지나갔고, 이번 여행에서도 파티마 성지는 목전에 두고도 가보지 못할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유럽의 땅 끝 로카 곶까지 마치 순례자처럼 이르게 되었다.
우리들 인생의 시작은 어디이며 끝은 어디인가? 또 여행의 시작은 어디이며 그 끝은 어디인가? 우리들 인생 항로에 마침표는 정말 존재하는가? 알 수 없다. 허지만 나는 새로운 여행지의 기대감에 가슴이 설렌다. 비록 신항로를 개척했던 마젤란이나 바스코 다 가마처럼 기록에 남을만한 세계 일주는 아니더라도 순례자처럼 걷고 있는 세계 일주는 우리들의 인생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리라.
비록 순례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 로카 곶의 절벽에 서면 나름대로 인생의 시작과 끝, 그리고 다음 여행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 최초의 세계 일주를 단행했던 마젤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도 유럽의 땅 끝에 서서 이 대서양을 바라보며 신대륙으로 가는 꿈을 꾸었으리라. 까몽이스는 이러한 포르투갈의 해양영웅들에 대하여 그의 서사시에서 아래와 같이 노래했다.
“드높은 명성의 용사들이/루지따니아의 서해안으로부터/누구도 항해한 적 없었던 바다를 통해/따쁘로바나 너머까지 진격하여/인간의 한계를 넘는/위험과 전투를 극복하며/먼 이방의 세계에서/저토록 고귀한 새 왕국을 세웠도다.” (우스 루지아다스)
이번 우리들의 세계 일주는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한계를 넘는 위험의 극복이다. 당뇨병과 심장병, 갑상선 저하증 등 각종 질환을 심하게 않고 있는 아내에게는 전투나 다름없는 험한 여정이다. 비록 내가 나침반을 자처하고 안내자로 나서기는 했지만 나 역시 초로의 나이에 언어의 장벽과 각종 위험에 부딪치며 먼 이방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인간으 한계를 넘는 도전이다.
리스본에 웬 주현미 노래가?
▲리스본 엘레바도르 산타 주스타 전망대에서 바라본 리스본 밤 여경
“오늘은 우리들의 결혼 30주년 기념일인데.” “벌써 11월 11일인가요?”
여행을 하다보면 시간과 날짜 관념을 잃어버릴 때가 가끔 있다. 오늘이 11월 11일 우리들의 결혼기념일임을 잠시 잊고 있었으니 말이다. 버스를 타고 신트라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기차를 타고 리스본의 로시오 역에서 내려 바이샤 지역에 있는 어느 중국집에 들렸다. 결혼기념일 날 만큼은 입에 맞는 음식을 먹어보자는 생각에서다. 오랜만에 입에 녹는 음식을 시켜 먹는데 난데없이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이라는 노래가 나오질 않는가?
“어?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이네요?” “정말이네!”
유럽의 땅 끝 중국집에서 주현미의 노래가 나오다니 놀랍다. 마치 우리들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해 주듯 ‘신사동 그 사람’이 중국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현미의 노래를 들으며 포도주 한잔에 여독을 푼 우리는 로시우 거리로 나와 부적처럼 생긴 ‘행운의 닭’이란 작은 기념품을 샀다. 그리고 엘레바도르 산타 주스타 전망대에 올라 리스본의 화려한 야경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유럽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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