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선물
지구상의 최남단 땅 끝 “푼타 산타 아나”해변에 끝없이 피어있는
이름모를 야생화단지에서(칠레 파타고니아 지방)
지구 땅끝에 피어난 들꽃
아, 그대여!
누구를 위하여
그토록
처절하게 피어 있는가?
나 그대 가슴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
이렇게 피어 있어요.
남극의 짧은 여름 날
태양의 손을 꼬옥 잡고
여름에 내리는 눈을 맞으며
나 그대 가슴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
이렇게 피어 있어요.
그대 가슴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
그대 가슴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
(지구상의 남쪽 끝, 칠레 푼타아레나스에서)
지구상의 최남단 땅 끝 “푼타 산타 아나”해변에 끝없이 피어있는 이름모를 야생화
파타고니아 지방의 여름은 짧다. 아니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봄 보다 추운 날씨다. 강풍이 끊임없이 불어대는 파타고니아는 여름날에도 눈이 내린다. 여름에 내리는 눈... 지구의 땅끝에 찾어온 짧은 여름...
파타고니아 지방엔 강풍에 견뎌내는 너도밤나무가 밀림을 이루고 있다. 열매를 먹으면 "다시 파타고니아로 돌아 온다"는 전설을 가진 칼라파테 나무엔 노란색 꽃이 피어있고, 이름모를 작은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더욱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름도 모를 야생화들이 끝없이 피어 있다는 것. 온 갖 들꽃들이 일시에 피어나 나를 좀 봐 주라는 듯 고개를 쳐들고 있다.
처절하에 피어있는 들꽃들은 말한다.
"나를 꼬옥 끌어 안아주세요. 나 그대 품에 영원히 안기고 싶소"
짧은 여름 해를 부여잡고 들꽃들은 이처럼 말한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 피어난 들꽃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들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누군가를 끝없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 땅끝에는 강풍이 여전히 쉴 새없이 불고 있다. 간혹 가다가 구름이 태양을 가리면 여름 날인데도 눈이 내린다. 그러나 들꽃들은 여름에 내리는 차가운 눈을 맞으면서도 태양을 향해 한 껏 손짓을 하며 피어 있다. 그 모진 강풍을 견디어 내면서....
아, 이 들꽃처럼 세상을 강하게 살아가야 한다. 들꽃처럼 강하게....
남위 53도38분15에 위치한 지구상의 최남단 땅 끝, 칠레 “푼타 산타 아나”해변
작년 12월 24일, 아내와 나는 지구상의 끝 동네인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에 머물고 있었다. 지구의 최북단 노르웨이에서 시작한 우리들의 세계일주는 칠레의 남단 푼타아레나스까지 날아와 때 묻지 않은 파타고니아 지방의 자연 경관 속에서 크리스마스마스 이브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
노르웨이의 북극도시 나르빅은 긴긴 밤이 시작되는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는데, 칠레의 남극도시 푼타아레나스는 이와는 정반대로 여름철의 백야현상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서로 상치되는 극과 극의 세상이 전개되고 있었다.
푼타아레나스 아르마스 광장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는 아주머니들. 그 뒤에 보이는 발은 원주민에 의해 떠받들여진 마젤란의 동상이다. 이 마젤란의 다리를 만지면 무사하게 항해를 끝낼수 있다는 이야기에 모든 사람이 다리를 만져 발가락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다.(2003.12.23 칠레, 푼타아레나스)
하늘에서 맞이한 크리마스 이브
이곳 남극의 도시에도 예외 없이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축제분위기에 뜰 떠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호주의 시드니로 날아가야 했다. 세계일주 항공권으로 여행을 하는 우리는 값싼 비행기표 때문에 마음대로 일정을 변경하기가 무척 어려웠던 것.
좌석을 겨우 잡은 우리는 호주로 가기 위해 산티아고 행 란칠레 항공에 탑승하였다. 산티아고에서 무려 6시간을 기다린 후, 우린 다시 시드니로 날아가는 란칠레 항공으로 갈아탔다. 결국, 하늘에서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된 샘.
기내의 모니터에는 각국의 크리스마스 표정이 중개되고 있었고, 비록 비행기 안이지만 승객들은 크리스마스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항공사 측에서는 저녁 식사에 디저트로 산타할아버지 모형을 한 깜찍한 초콜릿을 서비스하기도 했다.
지구상의 최남단 땅 끝 “푼타 산타 아나”해변, 바람과 빗물에 밀려온 고목 앞에서
(칠레 파타고니아 지방. 2003.12.23 촬영)
우리들 옆 좌석에는 젊은 신혼부부가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산티아고에서 비행기에 오르면서부터 서로 부둥켜안고 키스세례를 퍼붓고 있었다. 이윽고 하늘에도 밤은 오고, 비행기는 태평양상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옆 좌석에 앉은 신부가 가방에서 작은 초를 꺼내어 테이블에 놓고 불을 켰다. 그리곤 정성들여 포장한 상자 하나를 꺼내어 신랑에게 건네주었다. 신랑이 포장을 풀자 상자 안에는 작은 볼펜이 한 개가 들어 있었다. 볼펜을 받은 신랑은 싱글벙글하며 신부를 껴안고 땡큐를 연발하며 키스를 퍼부어 댔다.
긴 키스신이 끝난 후, 이번에는 신랑이 주머니에서 곱게 포장한 선물을 꺼내어 신부에게 건네주었다. 신부가 조심스레 포장을 풀자, 그곳에는 예쁜 겨울모자가 하나 들어있었다. 그 모자를 둘러 쓴 신부는 반대로 신랑을 끌어 않고 원더풀을 연발하며 키스세례를 퍼부었다. 작은 선물을 주고 받으며 한껏 기뻐하는 그들의 사랑스러운 모습! 그러나 나는 아내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보, 난 당신에게 뭘 주지?”
“이미 당신은 내 일생에 가장 값진 선물을 나에게 주었는데요.”
“뭘 말이요….”
“내 평생소원인 세계일주의 꿈을 당신이 이루어 주고 있잖아요!”
나를 바라보며 마냥 행복해하는 아내를 바라보다가 나는 그만 아내를 와락 끌어않고 볼에 키스를 하고 말았다. 화들짝 놀라며 얼굴이 빨개진 아내는 내 품에서 살짝 빠져 나갔다.
내가 아내에게 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선물은 ‘아내의 볼에 키스를 퍼붓는 일’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남극의 파타고니아에 피어난 들꽃처럼 언제나 싱싱하고 새로운 사랑의 키스를... 이게... 내가 아픈 아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아닐까? 내가 아내에게 줄 수 있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크리마스 선물'.... 사랑이라는 묘약... 그렇다! 사랑은 이 지구상의 모든 아픈 것들을 치료하고 말리라!
12월 26일 아침 7시. 이윽고 우리는 호주의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하늘에서 이틀 동안이나 일생에 두 번 다시 맞이하기 어려운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었다. 실로 하늘에서 맞이한 긴긴 크리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 날이었다.